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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손가락

09/08/23       이계자

아픈 손가락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라는 속담이 있다. 몇 명의 자녀들 두었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자녀에게 차별 없이 똑 같다는 의미이다. 정말 그럴까? 

연예인의 사생활이라 그런지 여러 해 전부터 연예가 뉴스에 수시로 올라오고 있는 예능 프로 진행자 박 모씨의 본가(本家) 이야기를 들으면 – 그 가정의 사생활에 대해 깊이 아는 바는 없지만 –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해서 엄청난 경제적 유익을 준 아들은 차남인 박씨인데, 부모는 시종일관 장남 편이어서 차남인 그가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걸 보면 이 속담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자식이 둘이든 셋이든 골고루 다 잘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는 것이 모든 부모들의 바람일 것이다. 그런데 인간만사가 어디 우리 뜻대로 되던가? 같은 아버지와 같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도 자녀들은 각기 다르다.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재능도 다르고, 지력도 다르다. 여러분 가정의 자녀들은 어떠한가? 각 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서로를 비교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면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문제는 커질 수 있다.  

필자의 경우에도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여러 면에서 다르다. 생김새부터 시작해서 기질, 성격, 재능, 관심사 등이 많이 다르다. 큰 아들은 활달한 성격에 매사에 적극성을 띤 주도형이지만, 작은 아들은 예민하고 찬찬하여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차분한 타입이다. 형은 동생이 답답하다고 하지만, 동생은 형이 너무 서두른다고 한다. 그나마 부모 입장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동생(작은 아들)이 형(큰 아들)때문에 의기소침하거나 형을 이겨 먹으려고 밀치고 올라오는 – 그래서 형제간에 긴장이 감도는 – 불편한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 해 전,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온 지인이 필자에게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쌍둥이 아들을 키웠다. 어려서부터 똑똑해서 자기 할 일을 잘 해내는 큰 아들이 너무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러다 보니 여러 면에서 형보다는 부족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 작은 아들에게 마음이 갔고, 작은 아들에게 신경 써 줄 일이 많았다고 한다. 아들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각 자 직장을 잡았는데 작은 아들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직장을 얻어 집에 계속 머물게 되었지만, 큰 아들은 전공과 관련된 직장을 찾아가느라 집을 떠나서 지금까지 10년 넘게 타 주에서 지내게 되었다.  

큰 아들은 말 수가 적어 속 마음을 알 수 없었는데 언젠가 서운한 마음을 엄마에게 표현했다고 한다. 자기가 어릴 때부터 엄마는 동생에게만 신경을 써 주었지, 자신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큰 아들의 그 말에 엄마는 너무도 큰 상처를 입었다. “내 속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너는 뭐든 지 알아서 잘 하니까 미더웠고, 고마웠고, 자랑스러웠는데….그래서 부족한 네 동생에게 신경 쓸 수 밖에 없었던 건데…..너에게는 그게 상처로 남았구나.” 엄마는 그 일로 상심이 컸다.   

자랄 때부터 똑똑한 동생 때문에 늘 주눅이 들어 있던 형이 있었다. 형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갔지만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다 보니 번번이 직장을 옮겨 다녀야 했다. 그러다 보니 반복된 부적응과 실패로 ‘학습된 무기력(Learned Hopelessness)’ 상태가 되었고, 결국에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가 되고 말았다. 자수성가해서 가정을 일구어 낸 아버지에게 작은 아들은 너무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지만, 큰 아들의 이런 모습은 화가 나서 그대로 놔둘 수가 없었다. “이놈아! 아버지는 이 나이에도 일을 해서 돈을 버는 데 젊은 놈이 제 앞가림도 못해?” 동생은 좋은 학교도 나왔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자리에 올라 자기 몫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 형이라는 녀석은 늘 부모의 근심거리가 되어 있으니 좋은 말이 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아버지의 호통으로 큰 아들이 벌떡 일어나 제 자리로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일까?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부모(가정)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삭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형과는 여러 면에서 많이 달랐던 동생, 어머니 옆에서 늘 살갑게 굴었던 동생은 결국 어머니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야비하게 형이 받을 복을 빼앗지 않았던가? 이후 펼쳐지는 형제 간의 갈등, 외삼촌 집으로 도망간 야곱의 험난한 인생,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부러지기까지 하나님과 씨름해야 했던 야곱. 모든 이야기의 전개가 ‘하나님의 약속(구원)을 이루어가는 여정’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 역시, 두 아들에게 공평할 수 없었던,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피할 수 없었던 부모임에는 틀림없다.   

이 지점에서 부모인 우리는 ‘백기(白旗)’ 를 들 수 밖에 없다. 고의적은 아니었을지라도 자녀가 상처를 받았다고 하면 그건 상처를 준 거다. 변명하거나 합리화하려고 애쓰지 말자. 자녀의 아픈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미안하다고 백 번, 천 번 사과하자. 결핍된 환경 만이 상처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풍부한 환경에서도 상처는 생긴다. 이 세상에 상처 없이 자라고, 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두 세 손가락(두 세 명의 자녀를 두는 요즘이므로)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는지 점검해 보고, 지금 여러분의 가정이 폭풍 속에 있다면 용기를 내어 십자가 앞으로 나오자. 그리고 전문가의 도움도 청하자. 옥신각신 자기 주장만 하다가 더 큰 상처 남기지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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