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욕기독교방송 (대표 문석진목사)의 인솔로 켄터키 주의 애즈베리 대학교와 노아의 방주, 창조박물관을 다녀왔다. 뉴욕에서 12시간을 운전해야 갈 수있는 먼 곳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연륜이 많은 참가자들은 피곤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다녀온 것이 감동이었다. 필자의 눈에 비친 이들은 신앙의 연륜이 깊고 말하는 모습이나 이번의 탐사 여행을 대하는 태도가 성숙하고 진지하여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번 탐사여행을 통하여 참가자들에게 관심과 감동을 준 것은 당연히 금년 봄 “에즈 베리 부흥 2023” 이 일어난 부흥의 현장을 방문한 것이었다. 인구 6천명의 소도시인 윌모어 소재의 애즈베리 대학교가 금년 2월 정기 채플이 끝난 휴즈 오디토리움에서 20명 남짓한 소수의 학생들이 기도를 계속했다. 그후 기도회는 2주 동안 지도자 없이 24시간 쉼없이 계속됐다. 찬양과 기도, 회개 등으로 부흥이 일어났는데 하루에 1만 5천명이 예배에 참가했고, 유튜브, 신문 등 뉴스 미디어를 통하여 미국 전역과 전 세계에 알려져 방문자로 학교가 찼다. 이때 예배 참석자들은 고등학교 학생 부터 25세 이하의 청년들인 Z세대였다.
참가자들은 부흥의 현장을 방문하기를 원했다. 사실은 당시 학교의 여건상 채플 방문이 힘들었는데 교수 중에 한인 교수들이 있어 잠시나마 방문이 가능했고 그들에게서 그간의 설명을 듣고 기도를 드릴 수 있었음을 감사 드린다. 회원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는데 그렇게들 감동 속에서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 귀가하는 버스 속에서 한 분 장로님이 “마치 불덩어리 같이 뜨거운 가마솥이 옆에 있는 것 같이 느꼈다” 라고 말하다가 결국 말을 계속하지 못하고 흐느끼며 눈물을 닦았다. 회원들은 그날 방문의 감동과 감격을 오랫동안 느꼈다.
필자는 오래 전에 로스안젤스에 있는 '아주사 거리'의 한 장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곳에서 '아주사 거리 부흥 1906'이 1915년까지 계속되었는데 후에 미국 오순절 펜타코스트 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필자가 NYTS 뉴욕신학교 신대원 학생 시절 아주사 거리 부흥의 신문기사를 모은 'Like As of Fire'를 학교 도서관에서 보고 구매했다. 필자는 뉴잉글랜드 지역의 '1,2,3차 대각성 운동' 이 일어난 역사적 장소를 방문하는 비젼트립에 동참하려고 한다.
탐사 여행의 첫 번째 방문 후에 곧 이어 노아의 방주와 창조 박물관을 방문했다. 성경이 말해주는 노아의 방주 방문은 새로운 감격과 느낌을 주었다. 안내 목사님이 노아의 방주의 모습과 어떻게 그들이 방주 속에서 어떻게 살아낼 수있었는지를 과학적 증명과 이유를 말해 주었는데 이해가 가도록 상세히 잘 해주었다. 성경의 말씀이므로 믿음으로 믿고, 믿어졌다가 아니고 과학적인 설명을 듣고보니 그렇구나, 그럴 수있다로 집약되었고, 그랬었구나로 정리되었다. 만들어진 노아의 방주는 축구장 한 개 반 길이에 너비는 약간 좁은 크기인데 방주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복잡하고 많은 방들이 있었고 이 많은 방 속에 각 가지 크고 작은 동식물들이 살았었구나, 들어있었구나, 그랬었구나 이해했다.
창조 박물관은 말씀대로 어둡고 아무 움직임도 없던 곳에 “빛이 있으라” 는 말로 시작한 하나님의 창조 첫날부터의 모습들이 잘 표현되어 있었다. 첫째날 부터 여섯째 날까지 계속하여 모든 창조까지 마치고 쉬시는 날까지 하나님의 창조는 아름다웠다는 말이 실감되었다. 그러나 홍수 후의 세상은 완전히 달라져 더 이상 아름다운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의 파괴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원래 모습으로 회복 되기에는 요원하지만 그래도 계속하여 예전의 “보기에 좋았더라” 말하시던 모습을 찾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고통 중에 하나님을 만난 한 분이 세상이 참 아름다운 것임을 이제야 알았다고 말하면서 모퉁이의 한 포기 풀도 그렇게 예쁘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창조된 세계의 원래 모습을 생각하면서 회복 후의 세계를 상상했다.
LA의 '아주사 거리 부흥1906' 이후에 전세계와 중국 등 아시아에 선교사들이 퍼졌다. 대한민국은 미국 부흥운동의 최대 수혜국으로 1900년을 전후로 감리교와 미국 북장로교에서 젊은 자원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왔고 그들이 뿌린 희생과 헌신이 오늘날 한국기독교의 근간이 되었다. 이번 탐사여행으로 새로운 신앙의 경험을 했다. 독자들은 1903년의 원산 대부흥운동과 1907년의 평양 대부흥 운동을 기억할 것이다. 120년 전 미국의 북장로교와 남감리교에서 파견된 두 여성 선교사가 시작한 기도회가 원산에 큰 부흥을 일으켰고, 이어 그 불길이 평양장대현교회 에서 시작하여 평양대부흥의 기원이 된 것을 기념하면서 이번 여행에 참가하도록 기회를 준 기독교 방송국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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