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리!
바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타이밍이 맞아 떨어진다는 뜻도 있고, 퍼즐 조각처럼 딱들어 맞았다는 의미인데 우리나라 국어사전에도 없는 일본말이다.
오래전 뉴저지에서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계셨던 목사님과 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당돌하게 그 목사님께 질문을 던졌었다, “어떻게 어려운 이민 목회를 이렇게 큰 교회로 성장시킨 비결이 뭔지 한 말씀해 주세요” 그 목사님,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답변을 했는데 “성도들과 아다리가 잘 맞아서 된 것같아”
아다리란 말이 바둑에만 사용했던 나는 성도들과 아다리가 맞는다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게 되었다. 어쩌면 그 말이 진리인 것같다. 난 뭐가 그렇게 안 맞는지 30년 가까이 목회를 했는데도 성도들과 아다리가 잘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든다.
교회 이전 문제를 놓고도 성도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했던 것도 아다리가 안 맞았지만, 성도들과도 뭐가 그렇게 안 맞는지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내면서 좀 맞는가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웃음의 소리로 설교 예화 한마디 한 것 가지고 시비를 걸고 교회를 등졌다.
이게 바로 아다리가 안 맞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박사학위 수준의 고차원적인 설교를 하면 감동감화를 받아야 하는데 설교가 끝나도 은혜 받았다는 성도가 한 명도 없다. 초등학교 수준의 성도들과 대학 교수 수준의 나와 아다리가 맞을 리가 없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언젠가는 내 설교와 아다리가 딱 맞는 성도가 올 것이라는 망상에 젖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요즘 중남미 선교에 관심이 많아 은퇴 후에 마지막 삶을 중남미 오지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서 생을 마감하겠다는 의지가 점점 강하게 나를 사로잡고 있는데 뭔가 아다리가 안 맞는게 많다.
40대 때 이미 신학교 동기들은 중남미 선교사로 자리를 굳히면서 복음에 영역을 넓혀가고 있을 때, 나에게 선교에 불을 붙이려고 몇 번이나 찾아왔건만 난 선교에 꿈도 꾸지 않았다. 그들과 아다리가 안 맞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목회 말년에 선교에 헌신해 보겠다고 나서고 보니 중남미 선교사 동기 한명은 세상을 떠났고, 또 한명은 선교를 은퇴하고 한국으로 가버렸고 또 한분은 이미 선교 영역이 일반 선교의 영역을 떠나 국가적 차원에서 선교사역을 주관하고 있어서 인지 나 같은 단기 선교에 사명자는 별로 달갑지 않은 수준이 되었다고 보니 이번에는 내가 아다리가 안 맞는 수준이 된 것이다.
인생에 여정이 다 아다리가 맞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젊었을 때는 시간이 없어 해외여행 한번 못하고 죽도록 일만 했다가 이제 돈도 있고 시간적 여유도 생겨 해외여행 좀 해 보려 했더니 나이가 들어서 인지 몸이 말을 안 듣는다. 건강이 해외여행을 할 만큼 따라주지를 못하는 것 역시 아다리가 안 맞는 것 아니겠는가, 누구는 건강도 있고 시간도 있는데 돈이 없고, 어떤 분은 돈도 있고 건강도 있고 열정도 있는데 목회에 매여서, 집안 식구들에게 매여서 시간을 낼 수 없어 아무 것도 못하는 분도 있다. 다 아다리가 안 맞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 아닌가,
나는 특별한 달란트라고 할까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업의 방향과 전략, 기획같은 전문분야에 안목을 가지고 큰 일들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내었던 전력이 있다. 그런 내가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는데 도대체 전략도 기획도 방향도 딱 들어 맞는 게 하나도 없다. 한마디로 아다리가 안 맞는 것이다.
뉴욕에 있는 교회협의회란 단체에서 잠깐 일을 해 보니 교협의 방향과 목적이 뭔지, 어떤 전략으로 전개해야 올바르게 교계를 갱신할 수 있는지 한눈에 다 보인다. 그런데 그런 달란트를 사용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감당할 힘은 있는데 그 힘을 사용할 기회가 오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교계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목적이 뭔지,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목사들이 기회를 잡아 교계를 움직인다, 한마디로 기회는 주어졌는데 감당할 능력이 안 되는 것이다. 아다리가 안 맞는 것이다. 능력은 있는데 기회가 없으니 그 능력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고 기회는 왔는데 능력이 없으니 그 기회 역시 무용지물이 아니던가,
아다리가 안 맞으면 모든 것이 허공을 치는 격이다.
언젠가 딸을 픽업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묘한 일이 일어났다. 집까지 오면서 신호등이 20개는 더 될텐데 이상하게도 빨간불에 단 한번도 안 걸리고 계속 파란불만 들어온다, 차가 신호등 앞에까지 가까이 가면 예외 없이 파란불로 바뀐다, 이런 신기한 일이 있나, 집까지 한번도 빨간불에 안 걸리고 달린 것이다.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를 기한 현상이다.
인생에는 영원히 아다리가 안 맞는 세상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 예라고 생각된다. 맞다.
칼을 갈고 있으면 반드시 칼을 쓸 기회가 온다는 것, 인생에 아다리가 딱 들어맞는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것, 이걸 잊지 말자는 것이다.
세상 말로 재수 더럽게 없는 인생이 아니라 시간도 생기고 건강도 있고 물질적 여유도 생기고 또 열정도 있는 그야말로 딱 들어맞는 아다리 삶은 누구나 온다는 것, 그 아다리 인생을 위해 포기하지 말고 내공을 쌓아 놓자, 내 인생에 영광의 날이 오고 있다는 희망을 잃지 말고 끝까지 참고 기다리자,
반드시 온다. 영광의 아다리, 그날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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