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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 팔레스타인(4)

07/17/15       정연호 목사

블레셋, 팔레스타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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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336년 부왕 필립의 사후(암살됨) 마게도니아의 왕으로 추대된 알렉산더는 2년 후 소아시아–오늘날의 터키 - 를 지배하고 있던 페르샤에게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던 그에게 있어서 페르샤 원정은 동방의 군사정복을 넘어서 헬레니즘 전파의 첫 걸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라니쿠스 강(River of Granicus) 전투에서 페르샤 군대를 궤멸시킨 것을 필두로, 그는 소아시아 전역에서 페르샤의 다리오 군대를 압도하게 된다. 주전 333년에는 사도 바울의 고향인 다소(Tarsus)에서 멀지 않은 잇수스(Issus) 전투에서 도주하는 다리오 3세를 추격하는 대신 그는 남쪽으로 기병대의 기수를 돌린다. 이수스 남쪽에는 페르샤에 충성하던 페니키아의 도시국가들 - 아라도스, 비블로스, 시돈과 두로 - 이 위치해 있었는데, 알렉산더는 이들을 먼저 정복함으로써 이들이 페르샤의 다리오와 연합할 가능성을 차단함과 아울러, 이집트 정복의 길을 트고자 했던 것이다.
 
알렉산더가 이 지역으로 진격하자 이들 국가들은 알렉산더의 위력 앞에 스스로 굴복했지만, 페니키아의 두로와 블레셋의 가자(가사)만은 끝까지 알렉산더에 저항했다. 주전 332년 두로가 7개월 만에 함락되자 악고, 스트라토 망대(가이사라의 전신)를 비롯하여 블레셋의 도시국가들인 아스도(아스돗), 아스칼론(아쉬켈론) 등이 줄줄이 알렉산더 앞에 자진 항복하였다. 블레셋 도시국가 중에서 끝까지 항전하였던 국가는 가자(가사)였다. 아라비아로부터 수입된 향료를 서방으로 수출하는 최대 중계무역 항구도시였던 가자(가사)는 무역 판로를 잃지 않기 위해 결사 항전했지만, 2개월만에 점령당하고 만다.
 
블레셋이 지구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된 이유는 알렉산더의 헬라화 정책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국가라는 외적 형태가 외세에 정복을 당하더라도 민족이란 내적 실체가 존재한다면 국가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블레셋은 알렉산더 이후 헬라화 정책에 완전 동화되어 블레셋 족속이란 내적 실체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지리적으로 쉐펠라를 사이에 두고 으르렁대던 블레셋과 유대의 운명은 헬레니즘으로 인해 완전히 갈리게 된다. 둘 다 같은 시기에 알렉산더에 의해 정복당하고 그 이후 헬라의 프톨레미 왕조와 셀류시드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지만 전자는 완전히 동화되어 사라진 반면에, 후자는 ‘유대아’(Judea)로 지속된다. 후자는 ‘유대이즘’이란 민족 혼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강대국이었던 아시리아, 바벨론, 페르샤 제국 하에서도 독립을 유지했던 블레셋이 알렉산더 이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이유는 알렉산더 군대에 패한 것 이상으로 헬라의 헬레니즘에 정복당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이들이 야벳의 후손으로서 헬라인들과 민족적 뿌리가 동일했던 것도 헬레니즘에 완전 동화돼 버린 한 이유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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