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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두 얼굴

06/28/16       한준희 목사

인간의 두 얼굴


오래전 한국 TV EBS 교육방송 다큐프라임에서 인간의 두얼굴이란 제목으로 사람의 심리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직접 실험해 보는 장면이 있었다. 이 프로에서 이런 내용이 나온다. 실험실에서 미리 각본을 짠 6명의 학생을 앉혀 놓고 전혀 각본과는 상관없는 다른 한명의 학생을 실험실에 동참시키게 된다. 그리고 문제를 그려 놓습니다. A B C 위에 A는 3인치, B는 5인치, C는 10인치 막대그래프를 그려 놓고 또다른 칠판 위에 같은 모양의 A B C 위에 3, 5, 10인치 막대그래표를 그려 놓았습니다. 두개의 칠판에 똑같은 그래표가 그려져 있는 겁니다. 그리고는 한쪽 칠판에 X=5인치라고 써 놓고 문제를 냅니다. “X와 길이가 같은 막대그래표는 어떤 것입니까?” 첫번째 학생이 대답합니다. “정답은 A입니다.” 물론 틀린 답입니다. 정답은 당연히 B입니다. 미리 짜고 틀린 답을 말하는 겁니다. 두 번째 학생도 동일하게 틀린 답을 말합니다. “정답은 A입니다.” 세 번째 학생도 틀린 답을 말합니다. “정답은 A입니다.”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다 틀린 답을 말합니다. 마지막 이 사실을 모르는 일곱 번째 학생의 답은 어떻게 나올까요  
당연히 정답은 B입니다. 그런데 일곱 번째 학생도 정답을 알면서도 틀린 답인 A라고 대답합니다.

이 실험에서 인간은 아무리 자신이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상황이 다수에 의해 결정될 때는 자신의 확고한 지식을 묵살해 버리고 다수를 따라 간다는 인간의 모순된 두얼굴의 모습을 보여준 실례라고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현실 속에서 나는 이런 모습을 가끔씩 볼 때가 많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는 목사님들과 함께 공을 찰때가 많습니다. 상대방 팀은 물론 일반인들로 구성된 팀입니다. 게임을 하다보면 과격해지고 승부욕이 발동하면서 목사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소리소리치는 목사님들이 눈에 띨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다 상대방이 목사님을 발로 차고도 미안하다는 소리없이 오히려 욕을 해댈 때는 즉시 싸움이 일어나곤 합니다.

한번은 상대팀의 실수로 우리팀 목사님의 얼굴에 상처를 내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게임은 중단되고 목사님들이 하나같이 과격하게 발을 높이 든 상대팀의 잘못을 지적하고 거칠게 게임을 한 그분을 몰아 부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모두를 진정시키기 위해 목사로써의 본질을 잃지 말자고 말리는 나는 완전히 목사님들과 적이 되어버리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으로 나타났다는 현실입니다. 그런 흥분된 상황 속에서 모두가 흥분된 상황으로 만들어져 가야지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배제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상황이 함께 몰아갈 때 우리는 내가 원치 않는 실수를 하기 쉽고 나쁜 줄 알면서도 범죄하기 쉽다는 뜻입니다.      
   
상황이 현실을 몰아가는 이 시대에 과연 어떻게 해야 올바른 길로 갈 수 있겠는가가 숙제입니다.
교협은 이번 회기에 개혁을 외치고 첫출발을 하였습니다.
그 개혁에 첫 과제가 수 십 년 동안 한번도 정리되지 아니한 주소록 정리가 개혁에 첫 단추였습니다.
그래서 20년 가까이 주소록에 이름만 올라와 있고 교회 자체가 사라진 교회와 6-7년동안 회비한번 내지 않고 교협 행사에도 참석하지 아니한 교협 회원교회를 제명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기에 이 주소록을 정리해야겠다고 일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행위원회에서 이 안건을 부결시켜버린 것입니다.
그때 그 실행위원회의 모습이 어떤 상황으로 전개되었는지 분석을 해보면 40여명의 목사님들이 상황에 그냥 끌려가 버렸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안건은 실행위원들이 한번도 생각도 해보지 않은 안건이었다는 겁니다. 목사님들은 그날 참석하고 나서야 주소록을 정리한다는 사실을 안 것이 전부였습니다.
둘째 어떤 목사님의 호소력 있는 주장이 목사님들을 동정하게 하였다고 보아집니다.
그 주장은 이렇습니다. 주소록은 그냥 주소록이다 교회가 뉴욕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차원에서 그냥 놔두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그분의 주장이었습니다.
이런 비합리적인 주장이 당시 상황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 비합리적인 주장대로 주소록은 그냥 놔두어야 한다는 호소력 있는 상황을 뒤엎을 목사님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상황이 만들어졌을까요 그 이유는 또 다른데서 발견하게 됩니다.
당시 1부 순서에 예배를 드렸는데 설교를 한 목사님께서 예수님께서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해 오셨으니 교협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설교를 하셨고 그 설교를 하신 목사님이 주소록을 그냥 놔두자고 발언을 하였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형성되었고 참석했던 모든 분들은 그 상황에 지배를 받게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주소록을 정리해야 한다는 타당성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에 지배를 받는 두 얼굴의 많은 분들은 그 상황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고 그냥 침묵하면서 회의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 결과는 개혁에 첫 단추는 끼어지지 못한 채 부활절 연합예배, 할렐루야 대회 등 개혁은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으로 보여진다.    

누가 상황을 뒤바꿀 수 있는가?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표로 삼는 목사님들은 두얼굴의 모순에서 벗어나야 할 분들이 아니겠는가.  현실의 상황을 뛰어 넘어 진리와 원칙에 입각하여 서 있어야 할 분들이 이 시대의 목사님들 아닐는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3:2-3)

한준희 목사(뉴욕성원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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