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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죽었어!

10/21/16       한준희 목사

너는 죽었어!


나는 오랫동안 직장생활 속에서 책 만드는 일과 행정 사무직을 맡아서 일을 해왔다. 그래서인지 나의 성격이 나도 모르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쪽으로 많이 발달되어져 있다는 것을 나는 어느 정도 인정한다. 왜냐하면 남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거의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리적인 설명이 상대방에게 잘 설득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때는  당연히 언성이 높아지고 말이 많아진다. 그래서 말이 많은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 사람이었다.

가끔씩 부부싸움을 할 때면 아내보다 내가 더 말을 많이 한다. 논리적인 설명을 끊임없이 말하다보면 내 아내는 결국 침묵하면서 나의 말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아내는 나를 매우 꼼꼼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아주 피곤한 사람으로 나를 보고 지냈던 사람이다. 말이 많다보니 남의 말을 깊이 있게 듣지 않는다. 항상 남의 말을 듣다가 조금만 이치에 안 맞으면 중간에 상대방의 말을 가로채어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설명하기에 바쁜 말 많은 사람이 나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목회가 계속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급기야 경제적인 압박을 받다보니 나의 온 신경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고,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되다보니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는 식물인간이 되어졌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단돈 1불이 없다보니 어디 나갈 수도 없다. 친구 목사가 점심을 사겠다고 나오라 해도 자동차 가스는 다 떨어졌고 개스비는 없고 어디 나가려해도 나갈 수도 없는 식물인간이 된 것이다. 게다가 렌트비 독촉, 전기세, 전화비, 보험료 등 기본적인 재정이 충당이 안 되다보니 거의 집에서만 있을 수밖에 없고, 사회와 단절된 죽은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어느 날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하는데 기도 중 비몽사몽간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게 되었다. 그 예수님 모습이 나의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 아닌가, 처참하게 죽은 예수가 아니라 내가 죽은 모습이 분명했다. 그 순간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다. “너는 나와 함께 죽었어!”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죽었다. 그리스도와 함께... 그렇게 설교하고 그렇게 믿어 왔던 그 함께 죽었다는 말씀이

철저하게 실감되어지는 현장이었다. 아! 내가 죽은 인간이구나 그걸 깨닫는 순간 내안에 용솟음치는 기쁨이 몰려오는 것 아닌가

 그날 주님의 음성이 생생하게 들려졌던 그“너는 죽었어” 라는 말씀이 나를 변화시킨 것이었다. 그 변화에 첫 징조가 그렇게도 많은 말을 했던 내 입을 다물게 만든 것이었다.

 왜 말이 없어졌을까 그 이유는 내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죽은 사람은 어떤 말을 들어도 반응하지 않는다. 욕을 당해도 반응이 없다. 반응이 없어야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지난 과거 왜 나는 그렇게 많은 말을 해야 했던가, 바로 나를 증명하려고 내 논리적 정당성을 말로 증명하고 내 똑똑함을 증명하려고 그 숱한 말들을 쏟아내지 않았던가!

 어느 날 모 목사님이 나를 불러서 자신이 목회하면서 당했던 이야기를 3시간을 토해내는 것이었다. 그 3시간동안 난 단 몇마디“그렇군요” “맞습니다.” “아 예!” 그것 외에 한 말이 없었다. 3시간을 그 목사님을 말을 들어준 것이었다. 들어주니까 그 목사님 얼굴에 화색이 달라졌다. 자신의 말을 그 어느 누구도 지금까지 들어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목사님 마음에 상처가 치유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내와도 삶이 달라졌다, 아내는 늘 말을 한다. 나는 끊임없는 말을 들어줌으로써 싸움이 없는 우리 집에 평화가 찾아왔다. 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어지면서 나의 삶도 달라졌다. 새벽기도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늘 뉴스를 듣던 내가 그 뉴스가 하나도 귀에 들려오지 않는다. 들어도 의미도 없고 나와 상관이 없다고 여겨진다. 그렇게 잘 보던 TV드라마도 눈에 안 들어온다. 아무 의미기 없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이 뉴스나 드라마가 귀에 들려 올 리 없지 않은가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축구를 하다보면 목사님들이 격해져서 아래 위도 없이 막말을 한다. 자신이 실수해 놓고도 네가 그랬다고 소리 지르게 되면서 꼭 싸움이 되고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죽었는데 무슨 말이 있겠는가. 말이 없어지니까 싸움도 없다.

 말이 없어도 목사이기에 설교는 해야 되지 않는가 그래서 입을 열어 설교를 했다, 그런데 그 설교에 모든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말씀이란다. 난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똑같이 설교 준비를 하고 동일한 설교를 했는데 성도들은 설교가 달라졌다고 한다. 내가 죽어 내말이 사라지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다는 사실이 네 심령 속에서 느껴진다.

 나는 말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의 그 많은 말 속에 당신의 교만함이 그대로 들어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는 없는가? 왜 당신은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힘이 없는가?  아직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의 죽음이라는 이 절대 진리를 망각하고 있기 때문 아닐른지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골3:3)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의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야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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