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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의 아름다움

08/01/15       김금옥 목사

인내의 아름다움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화가 나고 억울하지만 어쩔수 없이 인내를 해야 할 때가 참 많다. 그 모습을 인내심이 많다 라고 말한다. 인내를 잘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정말 인내를 잘해서 어찌 그렇게 잘 참느냐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듣기도 한다. 한국의 드라마에는 약자와 강자의 관게에 대한 드라마가 많다. 드라마의 내용은 경상태제, 사회적지위, 가정적으로 약자의 상태에 있으며 무시를 당하면서도 잘 참는 장면들을 본다. 오랜 참음과 노력 끝에 드디어 그들이 추구하던 일에서 성공을 하고 강자가 되어 당당하게 강자였던 대상들 앞에 서는 것을 본다. 거짓으로 죄를 만들려고 노력해도 만들어지지 않던 세상에 가장 약자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불법 법정에 섰었다. 거기서 십자가 처형을 언도받고 십자가에 못박혔다. 인류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법정에 서신 예수님은 자신을 방어하는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셨다. 그것이 참음이다.

참아야될 때 참지못하고 문제를 일으킨 유명한 사람들이 있다. 마라의 쓴 물 때문에 보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다 마라의 쓴물 스토리는 출애굽기15장 22-29절에 있다. 여호와께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간 애굽의 종사리를 하면서 고생하며 학대받는 것과 그들의 부르짖음과 눈물을 보시고 그들의 조상아버지들과 약속한 것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동족을 죽이고 애굽에서 도망가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이던 모세를 불렀다. 그를 지도자로 삼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출애굽시켰다 기적으로 홍해를 건넜더니 광야의 더위와 배고픔, 목마름이 있었다. 목이 말라서 물을 먹으려고 했는데 써서 물을 마실수가 없었다.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인들은 감격해서 춤을 추고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사흘을 걸었다. 더운 사막을 3일이나 걸어서 마라까지 왔다. 그때까지도 마실 물은 얻지 못했는데 마시던 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홍해를 건넌 후 첫 장막을 쳤다. 이 지역의 물은 악취가 나고 맛이 짜서 마실수가 없었다.

홍해를 건넌 것이 사흘 전이라면 출애굽한 기적과 감사와 감격, 찬양의 기억이 아직 남아있을 것이었다. 그 감격 때문에 좀 참았어야 했다. 하나님의 역사와 그들을 이끌었던 모세를 믿었던 믿음과는 달리 환경이 사막이 되고 피곤해지고 목도 마르고 몸이 쉬지를 못하니까 짜증을 내고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밤새 자지도 않고 화를 내고 떠들고 소리지르고 불평했다. 

하나님의 출애굽의 기적과 모세의 지도력을 인정했다면 그의 말을 들었어야 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목마름, 사막이라는 역경에 부딧치는 순간 모든 믿음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비난하고 불평했다. 

이것이 인간의 악한 점이다. 간교하고 변덕스러운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힘들 때가 있지만 참을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기적을 경험했다면 도와주시기를 기도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불평에는 한 마음이 된 이들은 자신들이 기적의 산물인 것을 잊었다. 모세가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한 나무가지를 통하여 물을 먹게끔 해서 갈증을 해소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챙겨주시는 분인 주님께서 목이 마르라고 가만 놓아두지 않았을 것이다.

춥고 더울까봐, 길을 일을까봐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먼저 준비시킨 분이 그들을 잊어버렸겠는가? 이것은 믿음의 문제로 주님이 하시는 것을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 신실하지 못한 주의 백성들에게 주님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신실한 마음을 가지고 다가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일들을 기억하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생각할 수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현재의 목마름에 대한 불평과 불만 때문에 미래의 희망을 볼 수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여호와께서 준비한 오아시스 엘림이 며칠이나 몇달이 아닌 두어시간만 더 참고 걸어가면 곧 나타날 것이었다. 인간에게 필요한 인내는 조금만 참으면 곧 다가올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어느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생하며 학대받는 것과 그들의 부르짖음과 눈물을 보시고 “내가 듣고 보았다” 며 과거 그들의 조상들과 한 약속을 생각했다.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이던 모세를 부르고 출애굽시켰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홍해는 건넜는데 광야와 배고픔, 목마름이 기다리고 있었다. 덥고, 목마르고 배고프고 쉴 장소도 없는 광야, 이때마다 주님이 모든 것을 채워주셨다. 주님의 목적은 가나안까지 들어가는 것이다.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하여는 인내와 역경에 싸워나갈 수있는 힘과 주님이 자신들을 인도하고 감찰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했다. 그러기 위하여는 고난의 통과와 주님의 말을 믿고 따르는 인내와 순종이 필요했다. 참고 기다리는 훈련도 필요한 연단 중의 중요한 하나였기 때문이다.

우리들 크리스천들은 늘 기도를 드린다. 그렇다고 여러분의 기도가 모두 응답이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너무 이르다. 기도가 응답받기까지 어쩌면 엘림이라는 오아시스를 만나기 전에 도저히 마실 수없다고 생각되는 쓴물이 있는 마라, 오직 주님만이 달게하고 마실 수있게 하는 마라를 통과해야 한다. 물이 써서 못먹겠다고 불평하고 화를 낼 것이 아니다.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사는 이곳은 물과 그늘과 먹을 것이 풍부한 오아시스가 아닌 광야이다. 이곳저곳에 크고 작은 전쟁이 있고, 미움과 증오가 있고, 사랑하지 못할 많은 것들이 눈앞에 있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도저히 마실수없는 마라의 물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의 막대기 십자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지만 그래도 인생의 많은 날들을 가족과 내게 맡겨진 주의 백성을 데리고 가나안에 도착할 때까지 또다시 터벅터벅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려움과 어려운 환경에 직면하거나 삶에 지치면 참지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한다.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도와주고 살아왔는지 각자가 속한 상황 속에서 어떤 주님의 섭리가 있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인들은 그들을 앞서가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기억해야 하고, 만나와 메추라기 고기를 매일같이 먹고, 입은 옷이 한번도 헤어지거나 신발을 갈아 신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부족한 것만 기억하고 화를 낼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것들로 채워주었음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인생의 여정에 엘림이라는 오아시스를 가끔 만난다. 여기서 먹고 마시고, 쉬임을 얻고 힘을 얻어 떠나는 것이다. 인내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통과 불평불만이 될수있는 요지들을 참고 넘기며 인내라는 단어를 확고히 다지는 것이다. 주님이 원하는 인내는 앞으로 삶의 여정에 필요한 것이 불만과 불평이 아닌 인내이기 때문이다. 인내는 쉽게 포기하면 안되는 단어이다.

고생 중에 있는 사람들은 당장 눈앞의 어려움만 보려고한다. 조금만 더 참고 걸으면 곧 나타날 오아시스가 있는 것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않는다. 주의 사람들은 곧 도착할 오아시스가 있음을 알고 또 볼 수있어야 한다. 지금은 쓴물만 있는 마라를 지나지만 멀지않아 물샘과 종려나무가 있는 오아시스에 도착한다고 말해줘야 한다. 엘림까지는 걸어서 약 2, 3시간 거리라고 한다

우리 삶의 여정 곳곳에 마라의 쓴 물이 숨어 있다. 우리들 크리스천들은 출애굽에 성공한 후 광야를 지내고 있는 분들이다. 각자가 불평을 말하고 불만 속에서 흩어지지 않고 마음을 합하면 마라의 쓴 물도 따가운 햇볕도 극복하고 나갈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똑바로 갔다면 얼마 안 걸리는 여정을 40년씩이나 광야에서 헤맨 것은 그들의 불만과 불순종과 믿음없는 행동때문이었다.

주님이 각자 인생에게 주신 여정이 힘들다고 목마르고 괴롭다고 볕이 따갑다고 불평할 필요는 없다. 주님이 어딘가에 먹고 입을 것과 마시고 쉴 곳들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조금 먼곳에 아니면 곧 바로 엘림의 오아시스가 나타날 것이다. 주님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여러분의 돕는자가 된 것 같이 서로 돕는자들이 되어야 한다. “돕는자”란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힘들고 어려웠을 때 도와주신 하나님을 말한다. 여호와는 우리의 돕는자인 것이다. 인간에게 생명을 주신 그분은 우리가 어렵고 힘들때 지켜주고 도와주신다.

서로 지켜주고 도우면 어떠한 광야도, 마라의 쓴물도 가볍게 지날수있다. 주님께서 각자에게 삶의 한 마당을 펼쳐주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멋지게 펼쳐보여야 한다. 각자에게 펼처진 삶의 한마당은 각자의 것이다. 어떠한 삶의 모습을 펼쳐보이던지 각 개인과 주님의 것이고,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삶의 여정에 나타나는 마라의 쓴곳과 엘림의 오아시스를 기억하면 주님이 원하는 인내는 그래서 가치가 있고 필요한 것이다. 삶의 여정에서 인내가 없으면 그것은 재난의 길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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