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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16       이규섭 목사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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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는 종교개혁(1517년)으로 탄생하였습니다. 그 개혁교회는 신조와 함께 세워지고 발전해 왔습니다. 개혁자들은 성경의 지침을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신앙생활을 할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지침들인 '교리'를 신조 혹은 신앙고백서의 형식으로 만들어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나타난 경건주의는 '교리보다는 삶'이라고 주창하며 교리를 삶의 질을 위축시키는 원인으로 공격하였습니다. 18세기 들어서는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19세기에는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그리고 20세기에는 신복음주의자들에 의해 교리는 지루하고 딱딱한 것으로 취급받으며 ‘구원만 받으면 된다’는 식의 싸구려 복음이 활개를 쳤습니다. 신조 및 신앙고백서 즉, 교리에 대한 거부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21세기의 미국과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정통의 길에서 너무나 멀리 벗어나 있습니다. 그나마 개혁주의의 길을 걷는 몇몇 교회들을 제외하곤 대다수 교회들이 너도 나도 원칙도 없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입각한 교리가 아니라 종교적 감정을 더 강조한 결과, 오히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들로 채워진 거대한 숲을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의 생명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기초합니다. 교회가 하나님 말씀을 떠나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교리는 성경이라는 원재료에서 추출한 영양식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바른 교리의 보존과 계승을 위해 위대한 선물들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습니다.

교리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른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칼빈(Calvin)은 하나님의 교회는 교리교육이 없이 유지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도적 신앙과 종교개혁 신앙의 전통은 성경에 입각한 신조를 지킴으로 유지됩니다. 그럴 때 어떤 이단들의 공격도 막을 수 있습니다. 역사 가운데 성경을 왜곡한 수많은 이단들이 출현했어도 그때마다 올바른 교리에 든든히 선 교회는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대부분 성도들이 교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리는 딱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인들은 교리 없는 현란한 말솜씨에 웃고 짜릿한 감동의 순간을 즐기기 위해 교회당을 찾습니다. 이런 청중들에게 교리설교 혹은 강해설교라도 하면 모두가 하품을 하고 맙니다. 과연 그들이 이단들의 유혹을 견뎌낼 능력이 있을까요? 그들이 과연 이 위험하고 힘든 고난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신앙은 재미가 아닙니다. 신앙은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가까운 이때에 교리와 신조의 중요성이 회복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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