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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흔한 인사말 가운데 하나는 “바쁘시죠?“입니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바쁘다는 말을 힘들다고 하면서도 어딘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일정표가 가득 차 있으면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고, 쉴 틈 없이 살아가면 성실하게 살고 있다는 자기만의 안도감을 느낍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해야 할 일이 많았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쁜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나만의 우상 시리즈>를 준비하고 묵상하다가 제 마음속에 숨어 있는 의외의 우상을 또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주제가 바로 “바쁨”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바쁜 것이 아니라 바쁨을 통해 제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저를 찾고, 맡겨진 일이 많고, 해야 할 일정이 끊이지 않을 때 비로소 제가 필요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반대로 특별한 일정이 없거나 생산적인 결과를 내지 못하는 날에는 이유 없는 불안이 찾아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문제는 일이 아니라 정체성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안에서 제 가치를 확인하기보다 성과와 역할 속에서 제 가치를 확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세상은 이런 마음을 더욱 부추깁니다. 작은 모임이라도 걸치고 있고 세미나도 다니고 배워야하고,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쉬면 뒤처진다고 말합니다. 생산성이 곧 경쟁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새 존재보다 성취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심지어 신앙생활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바쁘고, 사역을 하면서도 바쁘고,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하나님과 함께 머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 분주함이 경건함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보다 일을 더 의지하고 있는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처럼 말입니다.
성경 속 예수님은 누구보다 바쁜 삶을 사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병자를 고치셨고, 제자들을 훈련시키셨고,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분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요구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먼저 들으셨고, 사역보다 아버지와의 교제를 우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문득 이런 질문이 마음에 찾아왔습니다. “네가 정말 원하는 것은 나냐, 아니면 인정받는 느낌이냐?” 한동안 저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일을 통해 제 존재를 증명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성과를 통해 사랑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미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뭘 보여주려 드러내지 않아도 충분한 자격과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일을 해냈기 때문에 가치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에 가치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바빠지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주님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 너의 아픔과 환란가운데 너를 도와주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생각해 보면 바쁨은 나를 움직이게 할 수는 있어도 나를 만족시키지는 못합니다. 성과는 잠시 기쁨을 줄 수는 있어도 영혼의 공허함을 채워주지는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존재를 견고하게 붙들어 주실 수 있습니다.
오늘도 세상은 더 빨리 달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내 곁에 앉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많이 하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나와 함께 있으라고 초대하십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쁜 삶이 아니라, 바쁨 속에서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삶인지도 모릅니다.
바쁨은 좋은 종이 될 수 있지만 결코 좋은 주인은 될 수 없습니다. 오늘도 저는 바쁜 사람이 되기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보다, 얼마나 주님 안에 머물렀는가를 더 기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제가 사역으로 무척 거룩하고 바쁜척했습니다. 회개합니다. 아멘!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흔한 인사말 가운데 하나는 “바쁘시죠?“입니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바쁘다는 말을 힘들다고 하면서도 어딘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일정표가 가득 차 있으면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고, 쉴 틈 없이 살아가면 성실하게 살고 있다는 자기만의 안도감을 느낍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해야 할 일이 많았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쁜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나만의 우상 시리즈>를 준비하고 묵상하다가 제 마음속에 숨어 있는 의외의 우상을 또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주제가 바로 “바쁨”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바쁜 것이 아니라 바쁨을 통해 제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저를 찾고, 맡겨진 일이 많고, 해야 할 일정이 끊이지 않을 때 비로소 제가 필요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반대로 특별한 일정이 없거나 생산적인 결과를 내지 못하는 날에는 이유 없는 불안이 찾아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문제는 일이 아니라 정체성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안에서 제 가치를 확인하기보다 성과와 역할 속에서 제 가치를 확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세상은 이런 마음을 더욱 부추깁니다. 작은 모임이라도 걸치고 있고 세미나도 다니고 배워야하고,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쉬면 뒤처진다고 말합니다. 생산성이 곧 경쟁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새 존재보다 성취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심지어 신앙생활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바쁘고, 사역을 하면서도 바쁘고,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하나님과 함께 머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 분주함이 경건함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보다 일을 더 의지하고 있는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처럼 말입니다.
성경 속 예수님은 누구보다 바쁜 삶을 사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병자를 고치셨고, 제자들을 훈련시키셨고,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분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요구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먼저 들으셨고, 사역보다 아버지와의 교제를 우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문득 이런 질문이 마음에 찾아왔습니다. “네가 정말 원하는 것은 나냐, 아니면 인정받는 느낌이냐?” 한동안 저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일을 통해 제 존재를 증명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성과를 통해 사랑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미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뭘 보여주려 드러내지 않아도 충분한 자격과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일을 해냈기 때문에 가치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에 가치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바빠지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주님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 너의 아픔과 환란가운데 너를 도와주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생각해 보면 바쁨은 나를 움직이게 할 수는 있어도 나를 만족시키지는 못합니다. 성과는 잠시 기쁨을 줄 수는 있어도 영혼의 공허함을 채워주지는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존재를 견고하게 붙들어 주실 수 있습니다.
오늘도 세상은 더 빨리 달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내 곁에 앉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많이 하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나와 함께 있으라고 초대하십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쁜 삶이 아니라, 바쁨 속에서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삶인지도 모릅니다.
바쁨은 좋은 종이 될 수 있지만 결코 좋은 주인은 될 수 없습니다. 오늘도 저는 바쁜 사람이 되기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보다, 얼마나 주님 안에 머물렀는가를 더 기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제가 사역으로 무척 거룩하고 바쁜척했습니다. 회개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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