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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11/29/16       이계자

아버지와 아들


여러 해 전 대한민국 모 TV방송의 개그 프로그램 중에 ‘아빠와 아들’ 이라는 코너가 있었다.뚱뚱한 외모도 닮은 꼴, 엄청난(?) 먹성도 닮은 꼴이었던 ‘아빠와 아들’, 두 사람은 먹는 것(음식)을 너무 좋아해서 어떻게든 서로 더 많이 먹으려고 꾀를 내어 경쟁을 했고, 그러는 과정에서 ‘아빠와 아들’ 이 주고받는 대화와 표정은 시청자들을 배꼽 잡고 웃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필자도 그랬던 것처럼.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옛말을 확인시켜준 부자의 코믹한 연기는 비록 개그 작가에 의해 설정된 것이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나름 소통을 하고 있는 부자지간(父子之間)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현실의 아버지들은 개그 속의 아버지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버지와의 관계가 건강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란 아들들이 힘들게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 가운데는 초등학생도 있고, 사춘기 청소년도 있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30세가 넘은 청년도 있고, 초등학생 자녀를 둔 40대의 중년 아들도 있다. 심지어 60세가 다 되어 손주를 볼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해결하지 못하여 가슴앓이를 하는 아들도 보았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자신을 낳아 준 부모와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자라가는 것은 자녀의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아들이 남자답게 성장해 가는 데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이 고루 필요하지만 특히 아들에게 미치는 아버지의 영향력은 실로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며느리 감을 고르려면 먼저 그녀의 어머니를 보아야 한다”는 말처럼 사위 감을 고르려면 그의 아버지를 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남자(아들)들 중에 가족과 친구, 학교, 직장,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편안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갖지 못하고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거나 반대로, 소심하고 도피적인 성향을 보임으로써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런 아들들 중에는 학식이 많고, 전문직에 있거나,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위치에 올라 많은 사람들로부터 깍듯한 대우를 받는, 소위 남부럽지 않은 ‘성공한 인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그럴듯한 모습’은 실제 모습이 아닌 허상(虛像)일 뿐일 수 있다. 그들은 예기치 못한 때 – 주로 어려운 일이나 위기를 만나게 될 때 -  ‘상처투성이의 내면’을 스스로 드러냄으로써 가족이나 주변의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스스로도 자신의 모습에 좌절한다.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로 인해 생긴 상처의 흔적들이 해결되지 못한 채 삶의 구석구석에 얼룩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사랑과 안정감을 얻지 못한 아들들은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성인으로 자라기 어렵다. 그러므로 하루 빨리 마음 속 상처를 발견하여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를 벗어 버리고 화목한 관계로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아버지보다 아들인 자신을 위한 길이다. 아버지들이여! 지금 아들과 여러분(아버지)과의 관계가 어떠한지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기 바란다. 아들의 나이가 어리든 많든 상관없다.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여전히 못마땅하고, 어색하고, 불편하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미워하지 말고, 방관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사랑의 마음으로 화해의 손을 내 밀라. 부모에게 자녀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대상이지 ‘잘났으니까 내 아들, 못났으니 무시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들은 어디에서나 자신 있게 나서지 못하고, 비전을 향해 도전하고 모험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그저 주눅든 채 살 수 밖에 없다.

가정에서 소중히 여김을 받지 못했는데 어디에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겠는가? 물론, 아들과 의 건강한 관계를 맺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아버지들도 있을 수 있다. 우선, 아들에 대해 잘 알아두라. 아들의 기질과 성향이 어떠한 지, 장점과 단점(약점)이 무엇인지, 무엇을 잘 하는 지, 무엇을 좋아하는 지 눈여겨보라. 아버지의 눈 높이가 아닌 아들의 눈 높이로 아들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써보라. 그러기 위해서는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나이에 따라 다름)은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영*유아기부터 어린이기, 청소년기, 청년기에 있는 아들과 시기에 적절한 방법을 동원하여 함께 놀아주고, 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며, 아들의 필요에 민감한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남편으로서 아들의 어머니(아내)를 사랑하며, 말과 행동에 있어서 아들의 본이 되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존 앨드리지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젠가 <뉴스 위크(Newsweek)> 에 ‘남자아이의 위기’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 여러 면에서 여자아이들에 뒤쳐지는 남자아이들을 다룬 그 기사에는‘아버지 상(像)이 없는 남자아이는 지도(map)를 지니지 않은 탐험가와 같다’는 대목이 있었다. 이렇듯 아들에게는 ‘아버지 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아버지 부재(不在)의 시대’이다. 대다수의 아들들에게는 ‘남자로 가는 정글’을 헤치고 나아가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아버지가 없다. 따라서 대다수의 아들들은 아비 없는 미완성의 남자 또는 소년이다. 번듯한 직업과 가정과 재력을 갖추고 책임을 지고 있지만, 우리 대부분은 ‘남자의 몸을 입고 돌아다니는 소년들’이다. 어쩌다 시작은 했더라도 남자다움의 전승이 완성되지는 않았다. 진정한 남자로 입문하는 과정에 단 한번도 인도된 적이 없다. 그것이 우리 대부분이 미완성 남자들인 이유이며, 그러므로 우리 남자에게는 안내자가 필요하다. 사내 아이는 아버지의 적극적인 개입과 남자들과의 친교 속에서만 남자가 된다.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안내자가 필요하다. 자전거 수리와 낚싯줄 던지는 요령, 여자 아이에게 전화를 걸고, 직업을 구하는 방법 등, 남자가 되는 여정에서 조우(遭遇, 만나다)하게 될 수많은 일들을 가르쳐 줄 아버지 말이다. 남자다움은 전수(傳授)되는 것이다. 소년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성인 남자한테서 배운다. 다른 방법으로는 배울 수 없다. 다른 소년들한테서도 배울 수 없고, 여자들의 세계에서도 배울 수 없다(‘남자의 외투를 입은 소년들’중에서).” 

오늘날의 가정들이 무너지게 된 가장 큰 요인은 가장인 아버지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 역시 아들을 양육하기에 준비된 아버지 밑에서 자라지 못한 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조상 탓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흔들리는 가정, 무너져가는 가정이 건강하게 회복되기 위해서는 가장의 자리, 즉 ‘아버지의 자리’가 회복되어야 한다. 아버지들이여, 용기를 내자. ‘나(육신의 아버지)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곰곰이 돌아보고 교훈을 얻자. 본을 삼자. 아버지와 아들의 건강한 관계 회복은 개인은 물론, 가정과 사회, 교회, 나라, 나아가 인류를 살리는 길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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