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 September 12, 2026   
내 마음의 국화를 지키는 방법

08/31/26       박효숙컬럼

내 마음의 국화를 지키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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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국화를 지키는 방법

나의 취미생활 중 하나는 화초 기르기다. 거창하게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봄이 되면 작은 정원에 여기저기서 꽃식구들이 모여든다. 작은 모종을 사다 심고, 계절이 바뀌는 동안 날마다 틈틈히 들여다보는 일은 여간 기쁜 일이 아니다. 잡초를 뽑아 주는 일이 힘들긴 하지만, 어제보다 잎이 하나 더 나왔는지, 꽃이 피었는지, 작은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문제는 나만 이 정원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사슴도 좋아하고 토끼도 좋아한다. 분명 어제까지 싱싱하던 고추, 가지, 오이, 호박이 아침에 나가 보면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어떤 날은 정말 ‘초토화’라는 말이 딱 맞을 만큼 깨끗하게 먹어 치운다.

몇 번을 당하고 나니 이제는 나도 제법 요령이 생겼다. 이번 여름에는 농장에 가서 백일홍을 사다가 정원 둘레에 울타리처럼 심었다. 백일홍은 꽃은 예쁘지만 잎이 거칠어서인지 사슴이 잘 먹지 않는다. 베고니아와 허브류, 셀비아나 풍접초, 메리골드처럼 동물들이 비교적 좋아하지 않는 꽃들도 골라 심었다.

나는 특히 국화를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이번 여름 농장에 가서 국화를 사지 못했다. 언젠가 예쁜 국화를 사다 앞마당에 심어 놓았는데 바로 다음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몇 번을 그렇게 당하고 나니 이제는 좋아하면서도 선뜻 들고 오지 못했다.

얼마 전 친구들과 모여 이 이야기를 했더니 한 친구가 말했다. “이미 동물들 사이에서 그 집이 ‘뉴저지 맛집’으로 소문난 거 아니야?” 모두 한바탕 웃었다. 그러자 다른 친구가 한술 더 떴다. “그럼 입구에 ‘Do Not Enter’라고 써 붙여!” 물론 사슴이 영어를 읽을 리 없고 토끼가 팻말을 보고 발길을 돌릴 리도 없다. 그런데 그 농담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Do Not Enter. 들어오지 마세요.

우리 삶에도 이런 문장이 필요할 때가 있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의 정원을 가꾸며 살아간다. 그 안에는 자존감도 있고, 시간과 에너지, 신념과 가치, 꿈과 평안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집 뜰에 누군가 함부로 들어오면 불편해하면서도 마음의 뜰에는 너무 쉽게 출입을 허락할 때가 있다.

원하지 않는 부탁에도 거절하지 못하고, 듣고 싶지 않은 말도 계속 들어 준다. 상대가 나를 함부로 대하는데도 관계가 깨질까 두려워 참는다. 내가 감당할 몫이 아닌 문제까지 떠맡는다. 그러고는 지친다. 때로는 화가 난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상대가 경계를 넘은 것도 문제지만, 어디까지 들어와도 되는지를 내가 제대로 알려 주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바운더리(boundary), 곧 경계란 사람을 밀어내기 위한 벽이 아니다. 내가 책임져야 할 것과 상대가 책임져야 할 것을 구분하는 선이며, 어디까지는 괜찮고 어디부터는 불편한지를 알려 주는 마음의 울타리다. 좋은 바운더리는 모든 사람에게 “들어오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높은 담장이 아니다. 오히려 “여기까지는 괜찮지만, 여기부터는 내가 지켜야 할 자리입니다”라고 알려 주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 사랑에는 “예”보다 “아니요”가 필요하다.

“그 부탁은 지금 제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대신 해결해 드릴 수 없습니다.”

“오늘은 제게 쉴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런 말들은 관계를 끊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를 오래 지키기 위한 안내판이다.

생각해 보면 분노도 종종 이 경계선에서 찾아온다. 누군가 내 소중한 영역을 침범했을 때,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받을 때,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마음속에서 화가 올라온다. 그런 의미에서 분노는 때로 우리 마음이 세우는 작은 팻말인지도 모른다.

물론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서로의 정원을 오간다. 때로는 내 것을 기꺼이 내어 주고, 상대를 위해 시간과 마음을 내어 주기도 한다. 사랑은 원래 그렇게 서로의 삶에 들어가는 일이다. 그러나 초대받아 들어오는 것과 허락 없이 침범하는 것은 다르다.

꽃을 사랑하기 때문에 울타리를 세우듯, 관계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경계가 필요하다. 건강한 사랑은 경계가 없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 앞에 세워진 작은 팻말을 읽어 주고, 함부로 넘지 않는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을 문턱에 선 지금, 나는 좋아하는 국화를 다시 사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이번에는 우리 집의 환경을 생각해 뜰에 심지 않고 집 안에서 몇 포기 키워 볼 생각이다. 동물 손님들에게 아무리 ‘Do Not Enter’를 외쳐도 알아듣지 못한다면, 내가 국화를 지킬 방법을 찾으면 된다.

생각해 보면 경계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상대를 바꾸는 데 온 힘을 쓰는 대신,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킬 수 있도록 내 삶의 자리를 조정하는 것.

국화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국화를 지킬 방법을 바꾸는 것.

사람의 관계도 그러하지 않을까.

모든 것을 막아 세울 필요는 없다. 나눌 수 있는 것은 나누고, 내어 줄 수 있는 것은 기꺼이 내어 주어도 된다. 그러나 내가 꼭 지켜야 할 것까지 모두 내어 줄 필요는 없다.

내 마음의 정원을 지키는 것은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더 오래 사랑하고, 소중한 관계를 더 오래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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