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 September 12, 2026   
Broken Spirit (6) 알량한 실존성의 재등장: 또다시 삐딱선을 타다

08/31/26       장애와 영성

Broken Spirit (6) 알량한 실존성의 재등장: 또다시 삐딱선을 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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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ken Spirit (6) 알량한 실존성의 재등장: 또다시 삐딱선을 타다

믿기 위해 참 많이도 애를 썼건만, 영적 갈증은 해갈되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 감당하기 벅찬 체험과 질문만 늘어갔다. 기도를 할 줄 몰라 말씀 속으로 들어갔고, 그 말씀 속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오열을 경험했다. 예기치 않은 방언과 음성, 환상까지 이어지자 그것들을 함께 분별해 줄 ‘아나니아’를 찾았지만,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영적 멘토는 끝내 만나지 못했다.

그러자 믿기 위해 애써 눌러두었던 또 하나의 내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혹시 이 모든 것이 갈급한 심령이 빚어낸 심리적 작용, 영적 허상은 아닐까?’ 극도로 예민해진 뇌가 만들어낸 일종의 오작동?

더 근본적인 질문도 생겼다. 신비체험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믿음의 증거가 될 수 있는가? 성경은 오히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8)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보고 듣고 경험했다는 것과 믿음의 본질은 별개의 문제인데...

돌이켜보면 내 안에는 처음부터 두 개의 힘이 팽팽하게 길항 작용하고 있던 것이다. 한동안은 장애 딸에게서 보았던 하나님을 나도 믿어보겠다는 의지가 앞서 달려갔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체험들이 해석되지 않은 채 쌓이자 뒤로 밀려나 있던 또 하나의 내가 다시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지. 결국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잖아’ 그런 가운데서도 ‘ 어느 것이 참인가’라는 질문의 끈만은 놓을 수 없었다. 믿으려는 나와 믿지 않으려는 나, 체험을 받아들이려는 나와 이성적으로 검증하려는 내가 뒤엉켰다. 내면은 마치 사탄 마귀의 소굴이라도 된 듯 어지러웠다.

그런 혼돈 속에서도 장애를 가진 아이는 병원과 집을 오가며 꾸역꾸역 자라고 있었다. 아이 때문에 시작한 믿음이었고, 아이 때문에 시작한 성경 공부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장애 아이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부모가 어느 정도의 사회적 위치를 갖추고 아이를 등에 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박사과정을 밟았고, 어떻게든 논문을 마쳐 교수 임용의 기회를 얻고 싶었다. 그것이 그때의 내가 생각했던, 장애 딸을 지켜주는 한 가지 방법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절박한 시기에 나는 엉뚱한 샛길로 들어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논문을 끝내야 하는데, 정작 나는 책상 앞에서 믿음이 있느니 없느니, 내가 경험한 것이 하나님의 역사니 심리적 작용이니 하는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니..... 순서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정작 가야 할 길을 회피하기 위해 전혀 다른 길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장애 아이를 위해 공부한다고 해놓고 정작 아이 곁에는 제대로 있지도 못하고, 그 공부마저 믿음의 문제에 붙잡혀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잖은가? ‘무늬만 엄마’라는 자조적인 비난이 꾸역꾸역 올라왔다. 논문에 대한 강박과 조급증도 함께 밀려왔다. 

그런 가운데서도 영적 질문은 좀처럼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진리의 길로 가고 싶은 나와 마귀의 유혹에 나를 맡기고 싶은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엎치락뒤치락했다. 그만 헤매고 현실로 돌아가 당면 과제부터 해결하라는 나까지 가세해서, 그야말로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은 가시나무숲’처럼 얽히고 설켰다.

바로 그 무렵 눈에 들어온 책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였다. 논문을 쓰기도 바쁜 내가 한가롭게 교양서를 읽을 처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당시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무신론적 입장의 그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어쩌면 기꺼이 그 책의 유혹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그것은 무의식을 억누른 채 의지와 고집으로 믿음을 밀어붙인 데 대한 반작용이었는지도 모른다.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천천히 물었어야 할 것을, 나는 조급한 마음으로 믿음의 정답부터 얻으려 했다.

그 밑바닥에는 어쩌면 타산적 마음까지 있었는지 모른다. ‘하나님, 너무하지 않나요? 내가 지금 얼마나 절박한 순간에 있는지 아시잖아요. 그런데도 나는 당신을 믿어보겠다고 이렇게 많은 시간을 애쓰고 있잖아요. 딸을 통해 내게 그렇게 강권적으로 다가오셨다면, 적어도 나를 이렇게 내버려두시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내가 이만큼 했는데, 당신도 이만큼은 해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거래적 마음. 믿음을 향한 행군이라고 포장했지만, 그 밑바닥에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 제목처럼 자기중심적인 욕망과 교만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것 같다. 그야말로 꾸역꾸역 저 밑바닥에 구겨 넣었던 내 안의 알량한 실존성이 재등장한 것이다.

“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 마가복음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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