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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는 믿음은 참 믿음이 될 수 없는가?
장애 딸을 통해 느닷없이 하나님 앞에 세워졌고, 설교와 집회와 여러 신비한 체험을 거치며 나는 믿어야 한다고 나 자신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밖에서 주어진 믿음은 어느 순간 한계를 드러냈다. 믿는가 싶으면 또 의심하고, 붙잡았다 싶으면 어느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다는데 내게는 쓰디쓴 탕약 같을 때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딸을 통해 강권적으로 역사한 하나님을 믿어야만 했다. 말씀을 제대로 알아야 했고, 기도해야 했다. ‘해야 한다, 해야 한다’는 강박! Should와 Must 사이에서 나는 어느 것도 제대로 붙잡지 못했다. 잘 믿어보겠다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했다. 이제는 그만하고 싶고, 내가 해야 할 본령인 <윤석중 문학연구>에 집중하고 싶었다.
당시 나는 대학에서 교양 국어를 가르치며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곧 뉴욕으로 떠날 예정이어서 마음도 다급했다. 장애 딸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엄마인 내가 어떻게든 사회적인 자리를 만들어놓아야 한다는 생각도 여전히 강했기에. 믿음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에 차분히 집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를 저지하기라도 하듯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조교로 일하던 나는, 어느 날 모태신앙인인 지도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하고 있는 한 공대 교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름을 듣고 전후 사정을 들어보니 뜻밖에도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 그 인연으로 어느 날 나는 그의 연구실을 찾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이니 당연히 반가운 인사부터 오갈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대뜸 내게 물었다.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마치 대들듯 단도직입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너무 놀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지도교수에게 끈질기게 묻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지도교수는 처음에는 웃으며 얼버무렸고, 내가 계속 묻자 나중에는 화를 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질문이 이번에는 방향을 바꾸어 나를 향해 날아온 것이다.
“그게…… 지금 제 문제예요.” 나는 기죽은 학생처럼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연구실 안에는 또 다른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을 새로 번역하고 편집하기 위한 원고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공대 교수의 연구실에 성경 원고가 저토록 쌓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확신에 차 있는 그와, 갈등에 헤매는 나’의 선명한 대조 속에서 우리는 몇 차례 교류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내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번역의 최종 교정을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의 연구실에서 받은 충격이 자못 커서 논문보다 성경에 대한 생각이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지금! 이제 막 마음을 다잡고 논문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곧 뉴욕으로 떠나야 했고 하루 한 시간이 아까울 만큼 논문 완성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던 내게 당찬 그의 제안은 마치 내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였다.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성경을 선택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라 생각했다. 한편으론, 정 교수를 통해 믿음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 같기도 했지만 애써 외면하려 하였다.
그럼에도 나의 갈등은 며칠 동안 시시각각 깊어만 갔다.
‘성경과 논문 어느 것을 택해야 한단 말인가?’
마치 영과 혼의 갈등처럼 뜻밖의 두 갈래 길이 내 앞에 놓였다. ‘너는 지금 성경을 봐야지. 논문이 아니잖아? 정신 차려! 논문이 먼저야. 이것부터 끝내야 돼.’ 이런 목소리들 사이에서 결국 나는 현실적인 타산 끝에, 저 깊이에서 울려오는 성경보다, 논문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런데 아뿔사! 그토록 긴 고민과 갈등 끝에 선택했건만, 나는 논문 완성을 위한 전 단계인 논문 중간발표장에조차 갈 수 없는 처지에 이르고 말았다. 중간발표 원고를 절반쯤 쓰고 있던 깊은 밤, 나는 아들이 없어진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뒤늦게 십 대 아들이 가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렇게 힘들게 결단한 논문의 길. 눈 딱 감고 성경의 길을 애써 외면하면서까지 선택한 그 길을, 사춘기 아들의 일탈이라는 뜻밖의 사건이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막아버린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을 치신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다. 장애 딸의 등 뒤에 놓인 십자가가 나를 믿음의 길에 이르게 한 것처럼, 비장애 아들의 일탈은 엄마를 옴짝달짝 못 하게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고약한 그날의 밤이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 잠언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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