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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며 굳어지는 성격
오래전, 두 목사님이 치열하게 언쟁을 벌이던 모습이 떠오른다.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잊었지만 그 풍경만은 잔상처럼 또렷이 남아 있다.
그들의 싸움은 대화가 아니었다. 상대의 말을 듣는 이 없이 서로 자기 주장만 쏟아내는 고함의 연속이었다. 주고받는 소통이 아니라, 누가 더 큰 소리로 말을 끊지 않고 이어가는지 겨루는 경주 같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대화는 무례해지기 쉽다.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 목소리는 커지고 감정이 앞서며 억지가 섞인다. 안타깝게도 이런 모습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 역시 누군가 내 진심이나 사실을 알아주지 않으면 화부터 난다. 정확한 진실을 전했음에도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목소리를 높이고 감정을 섞어가며 내 정당성을 강요하곤 한다.
어느 목사님은 기분이 상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성질부터 낸다. 식당 종업원에게도, 동료 목사에게도,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도 버럭 소리를 지른다. "왜 내 말을 안 듣느냐"는 이유다. 시간이 지나 좀 목사님답게 언성을 높이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드려도 막무가내다. 자기 고집을 내려놓을 줄을 모른다.
요즘은 자기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미안합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찾기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이 옳다는 전제를 깔고 고집을 부린다.
하지만 이를 지적해 주는 사람은 없다. 지적해 보았자 자기의 의로움만 주장하며 또 다른 싸움만 만드니, 그저 조용히 거리를 둘 뿐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고집을 '올바른 판단'이자 '의로운 소신'으로 착각하며, 더 견고한 아집을 쌓아간다. 세상에 틀리기만 한 고집은 없다. 그러나 상황에 맞게 수긍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 유연함이 사라지는 듯하다.
나이가 들고 지위가 높아지면 잘못을 지적해 줄 사람이 사라진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나 어른들의 꾸지람과 충고를 거울삼아 자신을 되돌아보았지만, 어른이 된 후에는 자신을 비춰볼 거울이 없어진다. 그래서 자신의 고집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 본인만 모른 채 살아간다.
극단적 개인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의 영향도 크다. 젊은이들 역시 인터넷에는 익숙하지만 사람들과 깊이 어울리지 못한다. 어른들의 조언을 들을 기회도 없고, 들어도 수용하려 하지 않는다. 대화와 관계가 좁아진 채 10년, 20년이 지나다 보면, 어느새 말투는 자기중심으로 변하고 성격은 굳어버린다.
나이가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해서 그 생각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 관계는 끊어진다. 부모든 선배든 자기 말이 옳다고 고집하는 순간 상대는 침묵하거나 떠나간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태도가 올바르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는다. 거친 말투 하나가 상대의 반발심부터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목회자들의 세계에서 이런 현상이 짙게 느껴진다. 배우려는 사람은 없고 가르치려는 선생만 가득하다. 가르치는 위치에 오래 있다 보니 그 자세와 태도가 아예 굳어버린 것이다. 성경을 넘어 모든 분야를 가르치려 들고, 유튜브에서 접한 얕은 지식조차 마치 스스로 연구해 발견한 진리인 양 가르치려 한다.
타인을 통해 배우고 고치려는 자세를 잃은 목사는 거울 없는 방에 홀로 앉아 얼굴에 묻은 오점을 보지 못하는 사람과 같다. 누군가의 조언을 내 얼굴의 불순물을 닦아낼 거울로 삼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아직 영적으로 늙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참된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금 깨닫는 요즘이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야고보서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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