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고 있는 박완서씨의 산문집 [호미]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박완서씨의 큰 아들이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러 가는 날 아침이었답니다. 추운 겨울날 아침 일찍 시험을 치르러 가는 아들을 위해 박완서씨는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상을 차리고 따뜻한 밥을 먹일 요량으로 밥을 아끼는 사기그릇에 담아 뚜껑을 덮어 아랫목 포대기 속에 묻어 두었답니다. 기다리던 아들이 일어나 밥상 앞에 앉고 잔뜩 긴장한 가족도 함께 모였답니다. 그 때 박완서씨는 아랫목에 묻어둔 밥을 꺼내 밥상에 올려놓다가 밥그릇 뚜껑을 떨어뜨렸는데, 뚜껑은 큰 소리를 내며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답니다. 식구들이 무슨 불길한 징조인가 싶어 당황하여 서로의 얼굴의 바라보고, 박완서씨도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의외로 박완서씨의 시어머니가 잠시 굳었던 표정을 풀고는 환하게 웃으시며 시험 날 아침에 큰 소리가 났으니 합격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시며 좋아하시더랍니다. 시어머니의 그 말씀 한 마디로 수험생과 가족들의 긴장은 풀어졌고, 수험생 아들도 그날 시험을 잘 치르고 무난히 합격했다고 합니다.
만일 그 상황에서 시 어머니가 며느리의 부주의를 나무랐다면, 의도하지 않은 사소한 실수를 한 박완서씨의 마음도 무거웠을 것이고, 태어나 처음 큰 시험을 치르는 아이의 마음도 불편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 아이가 시험에 불합격하기라도 했다면, 그날 사소한 그 실수는 더 오래도록 엄마인 박완서씨의 마음의 짐으로 남았을 겁니다. 시 어머니의 지혜로운 말씀으로 상황은 반전되어 화가 될 수도 있는 것이 복이 된 셈입니다.
그 흔한 전기밥솥이 없던 아이에게 밥을 차려 주다 그릇 뚜껑이 떨어져 깨어지는 일은 얼마든지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일은 좋은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닙니다. 그 일을 나쁘게 보고 다른 사람을 책망했다면, 그 일은 화가 됩니다. 그러나 그 일을 오히려 좋게 보면 웃고 넘어갈 일이 되고 수험생에게는 오히려 힘이 됩니다. 우리의 일상에 복을 부르는 반전의 말이 많아진다면, 삶이 한층 더 행복하고 삶의 짐도 훨씬 더 가벼워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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