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 한국을 떠나면서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 순간 어머니가 우시면서 “꼭 가야만 하는 거냐”라는 묘한 말씀을 남기셨다. 이미 한달 전부터 미국으로 가기 위해 분주히 다녔던 나를 보시면서 한마디로 안하셨던 분이 떠나는 그순간 그 한마디가 깊은 여운을 남겼다, “꼭 가야만 하는 거냐” 그 말 속에는 경제력 없고 나이든 부모를 버리고 갈 거 냐는 그런 뉘앙스가 내포되어 있는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동생들에게 들려지는 소리는 장남인 오빠가 그렇게 무책임하게 부모를 나몰라라 하고 미국으로 가버린다는 것이 어머니, 아버지를 얼마나 무척 섭섭하게 만드셨는지 알기나 하냐는 말을 듣고 나는 심한 비통함을 느끼곤 하였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장인어른이 심한 질병으로 일년이 넘게 병원을 오고가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병 치료를 하게 되었다. 뉴저지에 아들이 2명이나 있는데도 뉴욕에서 사신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책임을 사위인 내가도맡아서 병간호를 해야 하는 짐을 떠맡게 된 것이다. 병원에 가면 차로 모셔야 하고, 통역을 해드려야 하고, 약도 타 와야 하고,입원을 하면 모든 절차를 일일이 내가 도맡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계속 될 때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내가 이렇게 모셨으면 아마 효자란 소리를 들었을 것이란 생각도 해 보기도 하였다.
혹시나 부모님을 생각해 보면서 아프면 누가 모시고 다니나, 누가 병원비는 대고 있나 그게 궁금해서 전화를 하면 걱정말라고 하시면서 딸들이 3명이나 있는데 뭘 걱정이냐 라고 오히려 날 위로하시는 어머니 아버지를지켜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건강하세요 라는 말 외에 부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반면 장인 어른에게는 정말 바쁜 시간을 내어 모시고 다녔고 온갖 정성을 다 해드렸지만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그 분의 장례절차부터 묘지에 안장하는 일 그리고 마지막 비석을 세우는 일까지 모든 일을 내가 도맡아 하였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모시듯 온갖 정성을 다 쏟아 부으면서 그분을 모셨던 것이 솔직한 내 행동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계신 부모님에게는 어찌했는가, 아버지가 많이 아프다고하는 소리를 듣고도 병원비 한푼 보내드리지 못하고 따듯하게 손한번 잡아드리지 못하고 마지막 임종도 지켜드리지 못한채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말았다. 장례를 다 치룬 후에야 무덤 앞에서 엉엉 울어 보았자 동생들에게는 파렴치한 오빠, 책임감 없는 장남으로밖에 비쳐지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장례가 다 끝나고 여동생이 하는 말이 내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오빠가 없는 자리에 누가 대신했는지 알어! 우리 서방님이 다 했어 그거나 알고 있으라고...” 자기 남편을 강하게 어필하는 것이다. 우리 서방이 다 했다고,,,그때 불쑥 한마디 하고 싶었다. “야 나도 미국에서 장인어른 병원에 모시고 다녔고, 장례 다 치러주었다고.. ” 그 말을 하고 싶었으나 오히려 웃음거리가 될까싶어 묵묵히 여동생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고맙다, 매제! 내가 할 일을 자네가 다해서 고맙고 미안하네...“매제가 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몽땅 도맡아 하였다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아버지가 아프시다면 회사에서 뛰어 나와 차를 태워서 병원으로 모시고 다녔고 입원을 하게 되면 모든 입원 절차를 도맡아 하였고, 입원비, 병원비 다 매제가 담당했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 당하는 장례 절차를 도맡아 무덤에 안장시키고, 비석을 세우고 하는 모든 일을 메제가 다 알아서 처리하였다는 것이다.
아하!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 주면 받게 되는 법칙! 어쩌면 내가 미국에서 장인어른에게 했던 일을 똑같이 매제가 그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비록 내 부모가 아닌 장인어른에게 내가 한일이 바로 우리 아버지에게 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제3자들은 보는 대로 말한다, 오빠는 뭘 했어! 부모를 위한 한일이 뭐냐고...그래서 원망하고 미워하고 싫어한다. 내가 한 일만 잘한 일이고 당신은 뭘 했느냐고 따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
인간이 누구에게든지 봉사하는 그 내면 속에는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이 싹트고 있다는 사실을 결단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한 일이 곧 주님에게 한 일이라는 것을....
한준희 목사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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