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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경건

05/27/17       주진경 목사

교회와 경건


인간복제의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들어 내는 시대……, 사람이 못하는 짓이 없는 시대가 닥아 오고 있는 것이다. 오늘 날, IT 라는 인간두뇌의 발달은 제2의 바벨탑을 연상하게 된다.

첫째, 자동차에는 자동차 부품 상회가 있듯이 인간사회에 있어서는 인간부품 은행이 있어서,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을 부품 하나를 갈아 끼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연상 할 수 있다. 인간 사회에 최고의 복지 이상이 실현 되는 것이다.

이런 시대가 본격적으로 펼쳐 진 다면 인간의 존엄성은 자동차를 아끼는 마음 정도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복제된 인간의 Feed back에 의한 연습된 신앙고백(?)은 어떻게 받아드릴 것인가? 복제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도 문제이거니와 복제된 인간이 선하게 살았던지 악하게 살았던지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도 고뇌되는 일이다.

둘째, 인간언어의 격변화(格變化)이다. 인간의 언어가 기계언어, 전자언어(mechanic, electronic word)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pc) 라고 하는 기계를 통하여 나오는 언어(electronic word)가 인간의 심장으로 부터 발현되는 표현 언어를 뒷전으로 밀어내고, 인간의 삶의 주역을 차지해 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삶은 편리하고 놀라운 능률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 한다면 인간사회는 탄식과 환희, 눈물과 웃음을 볼 수 있으며 정서어린 정담을 들을 수 있을까?! 가공할 부도덕과 범죄가 걷잡을 수 없게 범람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지금은 그러한 시대가 닥쳐오고 있음이 분명하다.

또 한 가지는 충성의 격변화이다. 충성은 사랑으로부터 출발한다. 조국에 대한 사랑, 내가 태어나고 자란 향리(鄕里)에 대한 사랑과 애정, 내가 속해 있는 생활공동체에 대한 사랑, 나를 구원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이러한 사랑까닭에 조국과 민족에 대하여 충성하고, 나의 향리와 사회에 대하여,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하여 몸 바쳐 섬기는 것이 충성이다.

그런데 충성이 사랑으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자기실현 욕구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증오심, 경쟁심, 열등감, 우월감 등등 투사된 성취욕이 자연스럽게 충성심으로 가현(假現)된다. 이런 까닭으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 무시당하면 그 시대는 악한 시대요, 노쇠하고 병들고 소유가 없다고 멸시당하고 소외된다면 역시 그 시대와 지대(地帶) 는 악한 것이다. 충성은 이러한 사람들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시대와 세상은 언제나 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은 다양한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기에 때가 악한 때에 세월을 아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이러한 때에 교회는 과연 거룩한가?

교회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세속의 물결이 소리 없이 대하처럼 도도히 흐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세속사회에서는 한 사람이나 소수로 인하여 다수가 비난받고 평가를 받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 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 있어서는 소수로 인하여 다수가 비난받고 평가받는 것은, 당하여야 할 숙명으로 받아드리는 연대의식(連帶意識)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내 교회는 그렇지 않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할지라도, 어느 한 교회와 한 사람의 교인에 대한 지탄과 비판을, 내 교회와 나에 대한 지탄과 비판으로 수용하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모든 교회가 한 몸인 까닭이다. 이웃 교회가 타락하고 세속의 늪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지도급에 있는 교회나 세움을 받은 분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고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식으로 점잔하게 자부하고 방관하고 있다면 그 역시 도도히 흐르는 세속의 물결과 같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세대를 본받고 있는 것이다.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건물에 교회라는 이름의 간판을 내 걸었다하여 교회일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하에 참된 교회의 역할과 사역(복음의 실천)이 없다면 교회의 모양은 있으나 생명의 능력이 없는 겉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는 죽은 것이다. 딤후 3:12은 말세에ㅡ고통당할 때에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매우 어려운 때에 참되게 (말씀대로) 살고자 하면 핍박(어려움, 환난 등)을 받게 될지라도 경건하게 살라는 명제적인 경구이다.

오늘 날과 같이 불의와 거짓, 악이 관영한 말세와 같은 시대를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면 종말적인 충성의 각오로 살아야 한다는 종심적(縱深的)인 메시지인 것이다.

눅 11:38은 바리세인이 자기 집에 예수님을 초청하였을 때에 예수님이 손을 씻지 아니하고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저가(눅 11:38)속으로 이상히 여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왜 예수님이 손을 씻지 아니하고 음식을 드셨을까? 예수님이 당시의 유대인의 결례를 모르실 리가 없는 것이다. 이때에 바리새인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드시는 예수님께 대야에 물을 떠다 드리고 손수건을 드렸다면 그는 진정한 경건의 모양과 능력을 겸비한 바리새인인 것이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여 죄인들의 땅에 까지 내려 오셔서 자기 죄가 아닌 세상의 죄를 모두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땅에 까지 묻히셨다. 예수님은 최고의 경건의 모양과 능력을 보이시고 세속으로 내려오신 것이다. 이 경건의 능력에서 부활의 승격(exaltation)이 이루어진 것이다.

“말세의 고통당하는 때에 경건하게 살고져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이러한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이 시대(복제인간, 언어의 격변화, 충성의 격변화)에 어떻게 사느냐?! 말씀대로 산다가 아니고, “살아있는 순교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시대에 부응하는 경건의 답이 될 것이다.

주진경 목사(뉴저지 은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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