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 July 23, 2024   
여성적 가치와 살림의 문화

07/05/17       이상명 목사

여성적 가치와 살림의 문화


우리말 가운데 ‘살림’이란 말처럼 좋은 말도 없다. ‘살림’이란 단어는 ‘살리다’라는 우리말의 명사형이다. 즉 생명을 살리는 게 ‘살림’이다. 살림이 지닌 모성애, 자애로움, 포용력이 가정에서 교회로 옮아가고, 다시 교회에서 사회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 땅을 살리는 매체는 복음이다. 복음을 유통시켜 살림의 문화를 확장시키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교회의 존재이유인 선교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각 개인과 사회 속에서 깨어지고 무너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회복시켜 나가는 것이 선교다.

이 땅에는 크게 두 가지의 상반된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하나는 ‘죽임의 문화’고, 다른 하나는 ‘살림의 문화’다. 죽임의 문화는 나의 생존을 위해 너를 죽이는 문화이고, 살림의 문화는 공생과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문화이다. 사회적 불평등, 물질만능주의, 극심한 환경오염 등 오늘날 인류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는 죽임의 문화를 세운 결과 나타난 부작용들이다. 이러한 죽임의 문화를 치유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살림의 문화, 즉 생명에 대한 존중과 생명 원리에 기초한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서로를 살리고 모두가 주인 되는 살림의 문화가 유통될 때, 공동체의 행복 지수는 상승할 것이다.

‘가시박’이라는 덩굴식물이 있다. 가시박은 엄청난 번식력으로 뻗어 가면서 나무를 완전히 덮어 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나무는 광합성을 더 이상 하지 못하여 곧 말라죽고 만다. 현대 교회는 가시박과 같은 세속 문화에 잠식당하여 고사(枯死)되고 있는 나무와도 같다고 한다면 기우일까? 교회 안팎에 자라고 있는 가시박과 같은 죽임의 문화를 거두어 내고 살림의 문화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여성들은 죽임과 파괴의 문화 속에서 생명에 대한 애정으로 살림의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바탕이 있다. 괴테는 《파우스트》의 말미에서 “여성적인 것이 혼란에 빠진 세계를 구하리라”고 외쳤다. 서구 개인주의 영향으로 교회의 공동체성이 무너지고 있는 현시대에 정작 필요한 가치는 돌봄, 포용, 살림이라는 여성적 가치다. ‘여성적’이라는 것은 경쟁과 개발과 성장 중심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타자에 대한 이해, 약자와 소외된 자에 대한 보살핌, 관계 지향성을 뜻한다. 여성과 남성은 몸 구조부터 다르다. 다른 몸 구조는 다른 성역할을 형성한다. 남성은 경쟁과 활동성이 필요한 사회적 역할에 적합한 반면 여성은 타인을 배려하고 돌보는 역할에 적합하다. 경쟁적 관계와 성장 일변도의 정책으로 무너지고 있는 현대 사회와 교회의 저변을 이러한 여성적 가치로 회복시켜야 한다. 이제는 성장이 아닌 돌봄과 돌아봄이 필요하다. 곳곳에 도사린 위기를 감지하고 무너진 교회 공동체의 터전을 복구하는 내면적 성숙과 돌아봄을 통한 성숙이 절실하다.

여성적 가치의 추구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이때 공동체는 공통된 연고와 지역과 전통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서 생성되는 관계 맺음에서 생겨나는 공동체 의식으로 결합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성별, 계급, 인종 등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의 정체성을 그대로 존중한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골 1:18) 모든 지체가 하나 되는 교회론을 피력했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하나 됨’을 일곱 번이나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4-6).

‘하나 되게 하는 기능’은 예배하는 기능, 예언자적 기능과 구속적 기능과 함께 교회의 4대 기능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연합, 즉 하나 됨이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본질적 기능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다양성에 있다. 자연이 하나의 종(種)으로 획일화되면 그때부터 재앙이 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각 지체의 다름을 끌어안고 돌보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룰 때, 교회는 건강하게 된다. 그 다름을 끌어안아 하나의 유기체로 만드는 단 하나의 초석(모퉁잇돌)은 그리스도이다(엡 2:20).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를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살림의 행위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는 말씀을 생명 양식 삼아 그것을 먹여 살리는 살림살이의 현장인 셈이다. 우리가 죽어야 풍성한 살림의 역사가 실현되는 이 역설이 생생한 역사가 되기까지 우리네 살림살이는 너무나 빈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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