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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브네(Yavneh)의 기적

08/04/17       허경조 장로

야브네(Yavneh)의 기적


한국 교회가 국내외적으로 위기에 처했다고 하며 이에 대한 개혁적 요구 또한 국내외적으로 거세져 대개의 교계 언론과 집회에서 그에 대한 처방에 관한 목소리가 단골 메뉴가 된지 오래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필자가 눈여겨보고 싶은 것은 과거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어떠한 역사적 사실들이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며 그런 생각으로 본 글을 올리는 바이다.

제 1차 유대인의 반란을 야기시킨 원인은 유명한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말해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 사건의 기폭제는 주후 66년 6월경에 지중해에 있는 가이샤랴의 유대인 회당 앞 그리스 신전에서 로마인과 유대인 사이의 사소한 종교다툼 - 서로간의 제사 시간 -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다툼을 계기로 삼아 유대인 ‘열심당(젤롯당)’이 민족 독립운동으로 들고 일어났으며 당시 유대 총독이었던 플로투스의 무모한 황제에 대한 충성심으로 민중들과의 충돌은 유대인 열사들로 하여금 로마군과의 정면 대결로 치닫게 만들었다.

이들은 순식간에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로마군 수비대를 밖으로 몰아내었다. 당시 주둔하고 있던 로마군 병력이 갑작스런 반란에 대항하기에는 소수였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로마의 네로 황제에게 즉각 보고되었고 황제는 베스파니안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여 급파하기에 이르렀다.

대군을 이끌고 이스라엘 지역에 도착한 베스파니안은 반란 진압을 이유로 무고한 양민들까지 처참하게 짓밟고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반란 초기에 기세를 올리던 반란군들은 잘 훈련된 로마군에 연패하며 급기야는 예루살렘 성으로 모두 퇴각하게 되었으며 로마군들은 즉시 예루살렘성을 에워싸며 포위하였다.

그때 성안에 있는 유대인들은 최후까지 싸우자는 주전파와 로마와 협상하자는 온건파로 나누어져 있었다.

주전파들은 로마 군에 협상하거나 항복하려고 나가는 유대인들을 보는 대로 잡아 성 밖으로 던져 죽여버렸다. 그리고 협상하자고 말하는 사람들도 민족 반역자로 몰아세워 죽였다. 약 2년에 걸친 싸움도 끝날 때가 되었다. 성안에는 물과 양식이 떨어지고 또 유행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혹 몰래 도망 나온 유대인들이 로마 군인들에게 잡히면 혹 보물을 가지고 있지 않나 샅샅이 뒤져 본 후에는 십자가에 못 밖아 죽였다. 그리고 로마 군은 예루살렘 성 밖에 외성을 높이 쌓고 최후의 공격할 준비를 진행했다. 이때야 말로 이스라엘 민족 생존의 최대의 위기였다

이때 민족을 구한 사람이 랍비 요한난 벤 자카이다. 그는 어떻게 하면 민족을 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유대민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유대의 독립보다 유대주의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는 로마와 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주전파들은 이를 거부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모든 주민들이 학살당할 것이 분명했다. 랍비 요한난은 성을 나가 로마 장군을 만나는 길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자기가 중한 병이 들었다고 소문을 내게 했다. 과연 많은 사람들이 문병을 와서 보고 얼마 되지 않아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했다. 그런 후 며칠 있다가 제자들은 드디어 스승이 죽었다고 슬피 울었다. 그리고 장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인 하나니아와 힐카누스등이 관에 그의 시체를 넣고 성 밖으로 나왔다. 관에서 나온 요하난 벤 자카이는 베스피안 장군과 독대하여 “ 야브네를 파괴시키지 말고 남겨달라”고 요청하였다.(탈무드 Gittin 56a-b) 그대신 자기가 로마군을 위해 성문을 열어주겠다고 약속하며 베스피안 장군이 곧 로마황제가 될 것을 예언하였다.

네로황제의 사후에 3명의 황제가 바뀌는 혼돈 속에서 로마 원로원은 베스피안을 황제로 추대했으며 이에 베스피안은 후임 사령관인 자신의 아들 디도(티투스)에게 야브네의 약속을 지킬 것을 지시하여 이후 헐리고 불타버려 성전을 잃어버린 바리새파인들과 사제들과 랍비들은 야부네로 모여들어 야브네 학당(Beitei Midrash, 현재의 예쉬바)을 이루게 되었다.

단순한 열정과 애국심으로 시작한 유대 독립전쟁은 유대 땅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싸우던 유대인들은 대부분이 살육을 당하고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불에 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영구 추방을 당하하고 말았다. 유대나라도 없어 졌고 유대민족은 세상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나무가 뿌리 채 뽑혀 버려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둡고 절망 속에 빠진 유대인들에게 작은 희망의 등불이 보였다. 그것은 야브네에 있는 랍비학교였다. 이곳에서 유대의 정신이 작은 싹처럼 자라기 시작했다. 유대교의 폐허가 된 성전이 새로운 형태로 야브네에서 부활한 것이다.

야브네의 작은 학교에는 흩어졌던 랍비들(학자)이 다시 모였다. 그들은 유대의 지식, 유대의 전통, 유대의 신앙을 지키고 가르쳤다. 또 이곳에서 구약성서를 완성하였다. 전쟁이 끝난후 부터는 그 학교가 유대인의 생활 전부를 계속 지키며 이끌어나가게 되어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다.

성전을 잃어버린 유대인들로 하여금 영적인 충격에서 다시금 일어서게 하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여 토라를 공부하던 랍비들의 결론은 무엇인가 ? 그것은 ‘자비심’이었다.

시대의 필요에 맞추어 재해석 될 수 없는 경전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경전에 쓰인 말씀은 끊임없는 해석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런 해석은 단순한 지적 추구가 아니며 묵상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현실에서 행동을 유발하도록 영감을 주어야 한다.

만약 이런 해석(메세지, 설교) 들이 만족할만한 영적인 경험을 주지 못한다면 사람들로 하여금 이 말씀을 지키도록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성서 해석에는 절대적인 것이 없다. 시대의 필요에 따라 재해석되어야 하며 영적으로 암울했던 당시 상황에서 자비심은 저들로 하여금 다시 하나로 일어서서 모든 어려움을 딛고 새로운 질서를 일으키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 우리 한인 개신교의 현실을 직시해보자.

개교회마다 끊임없는 분쟁과 성장 한계의 벽과 유년주일 학교와 청년층의 교회 탈출 현상과 늙어가는 평균 교인층으로 인한 재정 감소로 말미암아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모습이다.

한숨만 쉬고 있기에는 상황이 다급하기에 필자 나름의 생각을 올리고 싶다. 먼저 목회자의 말씀 해석의 능력이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목회자가 소위 웨스터민스터나 고든 콜웰같은 유명 신학교를 나와야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어느 신학교를 나왔는가 보다는 매일 얼마나 말씀 준비를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보통의 직장인들이 하루 8시간을 일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절반인 4시간을 말씀과 기도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새벽기도회를 시작으로 평균 4시간을 기도와 말씀으로 1주를 보낸다면 그 말씀은 살아있어 듣는 이들의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저들에게 영적인 감동으로 다가와 말씀대로 현실에서 새로운 행동을 유발하는 감동을 줄 것이다.

교회 구성원들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서로에게 대한 자비심이라 생각한다. 담임목사와 당회원들 사이, 장로들과 안수집사들 사이, 또한 모든 교회 조직에서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하여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면 분쟁이 사라지고 성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필자만의 편협적인 생각일는지 상당히 궁금하다.

한인 교회들에 대한 영적인 겨울이 심화되고 있다. 우리에게도 야브네의 기적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노력은 이 시대의 개신교인인 우리 모두의 몫이다.

허경조(아름다운교회 협동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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