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하기를 더디하다’라는 표현은 하나님(출34:6; 민14:18; 욜2:13; 욘4:2; 시80;15)과 사람들에게 적용된다(잠14:17, 14:29, 15:18; 16:32; 19:11, 전7:8).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잠14:17)하는 자라고 한다.
‘성미가 급하여 화를 빨리 내는 사람’은 이성보다는 충동에 따르기 때문에 상황 파악과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자신이 생각하는 불의와 억울함을 참지 못해 폭발하기 때문에 결국은 어리석음을 들어내게 된다. 그래서 잠14:30절에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고 하였다. 즉 ‘화평’은 고요함(전 10:4), 평화(잠14:30), 온유함(잠 15:4)으로 온 몸에 생기가 돌지만 ‘질투심’(잠3:31)은 인간의 가장 강한 부분까지도 상하게 하여(호5:12), 심지어 뼈까지도 상하게 한다. 그러므로 내 뱉은 말이 얼마나 두려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명심해야 한다(약3:5).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15:18)고 하였다. ‘분을 쉽게 내는 자’란 마치 타오르는 나무 조각처럼 의도적으로 분노를 식히지 않는 자, 화를 그치지 않고 계속 발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화를 잘 내는 사람’과 ‘화를 참는 사람’ 중 어느 사람이 더 강할까? ‘화를 내는 사람’이 더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은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한다.
성경에 나타난 분노한 사람의 행동을 살펴보자. 히위 족속의 추장인 세겜 한 사람 때문에 야곱의 아들들에게 성은 파괴되고 모든 남자가 죽임을 당하였다(창34:25). 사울은 제사장의 성읍에 거하던 사람들을 모두 살육하였다(삼상 22:18). 느브갓네살은 다니엘의 세 친구를 죽이려고 풀무불을 칠 배나 뜨겁게 하라고 명하였다(단3:13-19). 헤롯은 라마 근방의 두 살 이하의 모든 사내 아이들을 다 죽였다(마2:16). 사울은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공문을 청하였다(행9:1). 하나님의 심령을 닮은 다윗도 너무 화가 나서 분노를 드러내었다(삼상25:21). 이런 모습은 하나님이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비천한 상태로 타락한 생생한 모습이다.
분노에서 싸움과 다툼이 난다. 화를 내고 혈기를 부리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시비의 빌미를 제공하지만 온유함은 평화를 만든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다툼을 미리 막을 뿐 아니라 그치게 하고, 논쟁과 분쟁을 가라앉히고 고요함을 가져온다. 그리고 관계를 하나 되게 하고 평화를 위해 서로 양보하게 만든다. 또한 화를 잘 내고 시기하며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은 육체를 소진시키고, 영혼의 활기를 갉아 먹으며, 안색을 창백케 하고 뼈를 썩게 한다. 다른 사람들이 형통하는 것을 보고서 배 아파하는 자들은 시기심으로 이를 갈다가 소멸된다(시112:10).
분노를 잘 내게 되면 ‘마귀로 틈을 타게 하고(엡4:26-27), 하나님의 성령께서 근심케 하고(엡4:30),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모범에 정면으로 배치되며(마 11:29, 빌 2:3-5, 벧전 2:23), 복음과 신앙이 일치하지 않으며(골3:8, 12-13), 인간의 본성은 더욱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잠 17:12, 25:8, 29:22). 또한 분노는 육체에 속한 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며(갈 5:19-21, 지옥불에 떨어지제 된다(마 5:22). 그러나 노하기를 더디함은 명철을 소유하고 있다는 증거다(잠 19:11, 20:3; 약 3:17).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고 변명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마음이 조급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화한 모세를 비난하였고(시 106:32-33), 선지자 요나가 보여준 성급한 이기심은 어리석음의 전형이었다(욘4장).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고 하였다(잠언 19:11). 남의 실수에 대해 노여움을 참고 보하기를 더디하면 슬기로움이 증명된다. 14:29절에 “크게 명철”한 자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잠16:32)라고 하였다. 분노를 억제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복수의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며(16:32), 논쟁을 종식시키기 때문에(15:18) ‘슬기로운 일’이다. 사람은 화를 내며 싸울수록 더 크게 잃는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전7:9)고 하였다. 지혜로운 자는 자제심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분노를 억제하는 것’과 허물을 용서하는 것‘은 주님의 고유한 모습이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출 34:6절)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을 받은 사람 또한 노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분노를 억제하고 허물을 용서하는 것은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잠언 14:30절에는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니”라고 하였다. 마음은 인간 존재의 중심으로 마음이 평온할 때 사람은 진정으로 살아있게 된다.
노하기를 더디 하면 자기가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서 공평하게 처리할 시간을 얻게 되고(잠 15:18), 실수한 자의 허물을 덥고 용서하면 그의 인격이 빛나게 되고 하나님의 속성을 본받은 성품이 되는 것이다(미 7:18). 털 깍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한(사53:7)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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