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많은 일을 겪는다. 좋은 일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은 일들도 있어괴롭다. 즐거운 일들이 즐겁지 않은 일보다 더 많기를 바라는 것은 늘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우리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최근 뉴욕의 제45회기 뉴욕목사회(회장김상태목사) 주최로 종교개혁 500 주년을 맞아
효신장로교회에서 굿사마리탄 찬양대축제가 있었다. 이번에 뉴욕목사회가 남,녀목회자의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전해준 핵심 내용이 있다. 여호와께 순종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내용이다. 우리들 크리스천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가려고 노력한다. 이웃을 자신의 몸같이 생각하고 사랑하는 믿음이 없으면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에 있어 서툴고 모를 때가 많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말에는 말뿐이 아닌 행동이 따르고 행동으로 실천해 보여야 한다.
그 사랑의 실천을 이번에 목사회가 했다. 이민지미국에서 자녀를 낳아 키우고 공부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에 장학금은 공부하는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나눈 것이다. 이번 장학금이 이들 자녀들에게 작으나마 도움이 됐기를 바란다. 교과서나 기타 필요한 것을 살 수도 있을 것이고 콤퓨터 같은 것을 살 때에 보탬의 한 부분이 됐을 것이다. 어찌하였건 장학금 수여라는 것은 항상 주는 분들에게 기쁨이 되고 더 많은 장학금이 준비되었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번에 또한 좋았던 것은 농아인교회에게도 선교헌금을 한 것이다. 농아인에게 전도해서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쉽지 않으나 계속하여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뉴욕농아인교회의 수화찬양 순서가 있었다. 교인과 담임목사님 두분이 나와서 수화찬양을 했다. “주 안에 우린 하나와 사랑하며”를 찬양했는데 마지막에 손을 잡고 사랑의 표시인 하트를 만들었는데 참으로 은혜로운 장면이었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내 마음 속에 누군가가 생각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한다면 그것은 이미 마음 속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사랑을 생각하고 이웃에게 주의 사랑을 전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자신들이 주님의 사랑을 체득한 분들 만이 할 수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말하고 표현하는 데에는 세상 사랑이 아는 통상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얼마던지 어떤 방식으로라도 사랑을 표시할 수있다.
대개 사람들은 사랑을 표시하는 방법을 말하지 않아도 배우지 않아도 안다. 울고 있는 분의 손을 잡거나, 눈물을 닦아주는 것, 단순한 한 마디 위로의 말, 어린이나 노인들에게 또는 말을 잃어버린 분들에게, 수많은 다른 분들에게 내가 만나거나 주님이 만나게 한 사람에게 우리는 주님에게서 배운 사랑을 표시한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남편이 당뇨병이 심해져서 널싱홈에 3년을 살았다. 널싱홈은 일반 병원에 입원가료는 필요없으나 가정에서는 가족들이 전문치료자들과 하루종일 같이 할 수없으므로 장기치료가 가능한 요양병원을 말한다. 조용한 분이었는데 그곳 환자들에게 자원해서 봉사를 잘 하는 것을 보았다. 늘 자신의 식사를 끝내면 휠췌어에 앉아있는 분들에게 가서 의자에 앉히거나 휠체어를 밀어주곤 했다. 그것이 그분의 이웃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환자들을 잘 도와주어 그곳에 있던 환자들이나 널싱스태프들이 좋아했었다. 어느날 오후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예배시작을 기다리는 중에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렇게 요양원에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했다.
이번 찬양대축제에서 한가지 감동 깊었던 일이 있다. 저희 교단 찬송가 중에 “Here I am Lord 주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하는 찬송가가 있다. 내용은 “주님이 밤에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이 저를 인도하여 주신다면 주님의 백성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말하소서“ 라는 은혜스러운 찬송가이다. 신학생들이 말씀과 성례식의 목회자로 불림을 받고 목사가 되기위한 모든 절차가 끝나고 안수예배 때 부른다. 장로나 안수집사의 직분을 받고 임직식예배 때, 교단이나 목회자 협의회 등에서 이취임예배 때도 부른다.
이 찬송가는 눈물없이는 부르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본인도 이 찬송을 불렀던 기억이 나고 이 찬송을 부르면서 눈물을 흘렸던 그 많은 밤들을 기억한다. 우리들은 주님의 부름을 받기 전 많은 대화를 나눈다. 어느날 네가 나를 위하여 일할 수있나? 라고 물어보실 때 싫다고 대답을 하거나 아니면 좀 더 생각하고 주님께 말씀드리겠다고 말하지 못한다. 저의 경우는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예, 말씀하세요” 이다.
마지막에 장학금을 준 후 저를 비롯하여 몇분 목사님들에게 공로패를 주었다. 목사님이 내용을 읽었는데 눈물날 정도로 내용이 은혜스러웠던 것을 기억한다. 본인은 정신과 의사였고 목회자이기에 많은 눈물겨운 사연들을 알지만 말할 수없다. 그런데 그 내용을 회장 목사님이 썼다.
“탈진과 아픈 상처로 얼룩진 목회자와 사모님들 그들의 자녀들을 보살피고” 라고 말했다. 이민 목회는 항상 긴장하고 좌절되기 쉬웠고 고통이 많았다. 가족들도 힘이들고, 상처받았을 것이다. “가족들에게 미안했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민목회는 희생이 따르는 목회였기에 마음이 아팠을 때가 많았다. 회장 목사님이 계속해서 읽었다. “삶에 지치고 쓰러진 자들을 일으켜주어 건강한 자화상과 자존감으로 살아가도록 격려해주었다”면서 자랑스러운 삶의 내용이라고 했다. 목회자치고 이런 삶의 내용을 가진 분들이 모두일 것이다.
삶이 피곤하고 더위에 지쳤을 때 이런 소망을 주는 프로그램은 늘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지고 웃음을 갖게 한다. 상처로 얼룩진 마음은 좌절 대신에 “주님의 음성을 듣고 제가 여기 있다” 말하고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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