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 October 4, 2022    전자신문보기
양피지(羊皮紙)

09/04/17       주진경 목사

양피지(羊皮紙)


양피지는 “파피루스”의 대용지(代用紙)이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버가모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요한 계시록 2장에서 사단이 범람하는 이단의 세력가운데서 죽음을 무릅쓰고 신앙을 지켜온 일로(안디바의 순교)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교회이다. 그러나 타협적인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가 있어 책망을 받기도 했다. 버가모 교회 시대는 책들이 양피지에 기록되었던 시대였는데 이 도시의 도서관에 양피지에 기록된 책들이 무려 20만 여권이나 장서되어 있었다고 한다. 종이(紙)와 인쇄술이 발달되지 아니했던 당시는 모든 서책(書冊)들이 두터운 파피루스에 손으로 기록되던 시대였다.

버가모(Pergamos)라는 도시 이름은 "Parchment" (파치멘트; 양피지)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최초의 신약성경이 양피지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성경이 양피지에 기록되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인 Story가 있다. 

양피지가 나오기 전에는 모든 문서들은 파피루스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모든 문서를 기록했던 “파피루스”(Papillote)는 애굽의 나일강 유역에서 자라는 갈대(紙草)로 만든 두루마리 종이를 말한다. 파피루스는 애굽의 국유화된 전매품으로 당시 애굽의 국가수입의 대종(大宗)을 이루었다고 한다.

애굽의 찬란한 영광중의 하나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명한 도서관이었는데 이 도서관의 사서(司書)가 그 유명한 학사 비잔티움(지금의 이스탄불)의 “아리스토파네스”였다. 당시 버가모의 왕(王)이었던 유메네스(Eumenes)가 이 유명한 “아리스토파네스” 사서를 버가모에 유치하려고 그를 꾀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당시 버가모는 상업적으로는 자랑할 것이 없었으나 고대 도시들 중에 가장 오랫동안 수세기에 걸쳐 정치, 사회, 학문적으로 수도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처신하여 왔기 때문에 버가모의 명성을 높이기 위하여 애급에 있는 유명한 사서(司書) 아리스토파네스를 유치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게 된 애굽의 왕 “포토레미”는 “아리스토파네스”를 보호하려고 그를 감옥에 가두어 외부와의 접촉을 단절시키고, 동시에 버가모와 교역하던 파피루스 (書紙)의 유출을 봉쇄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지(書紙)가 떨어진 버가모에서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개발해 낸 것이 양피지였다는 것이다. 양피지는 양(羊)의 가죽을 펴서 말린 것인데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온 신약성경은 최초로 이 양피지에 기록된 것이다. 양피지에 기록된 이 성경은 전쟁과 자연재해(自然災害)등 장구한 세월의 흐름으로 소멸될 뻔한 시대를 이겨 내면서 후대에 전해져온 것이다. 버가모는 서지(書紙)의 핍절을 통해서 귀한 양피지를 만들어 냄으로 말씀보존의 일역을 한 것이다. 여기에 있던 버가모교회가 목숨을 버리며 핍박을 이겨냈던 교회이다. 

지금 나는 정규예배 설교는 하고 있지 않지만 매주 토요일에 새벽기도회에 말씀을 전하고, 또 외부의 요청을 받아 주일설교도 종종하고 있다. 토요일 새벽설교는 평일보다 조금 길게 (약 25분정도) 한다. 이제까지 4년 동안 나의 새벽설교 시간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이 양해되어 은혜의 시간으로 받아들여져 왔으나 앞으로는 평일처럼 설교시간을 15분정도로 줄일까 생각하고 있다.

정규적인 설교를 하지 않지만 나는 한 주에 한편의 설교를 준비하곤 한다.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힘든 일이나 이를 통하여 내게는 무한한 유익과 기쁨이 있다. 15분 설교를 위해서 적어도 30분 넘게 기도하고 묵상해야 하며 몇 시간을 경건에 집중해야하는 기쁨과 영적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초안을 잡을 때 우편으로 배달되는 상업 광고지의 뒷면 백지(白紙)를 사용할 때가 더러 있었다. 나에게는 가난하던 시절, 초등학교, 대학시절에까지 공책 한 장을 찢지 않고 낙서하지 않고 아껴오던 버릇이 있다.

군대 생활에서도 나는 경비절약을 위하여 뒷면 백지사용을 권장하기도 하였었다. 그 습성이 지금도 남아서 그런지 상업광고지의 뒷면백지를 버리지 못하여 설교초안을 잡을 때 그것을 여러 차례 사용한 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내핍정신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상업광고지 뒷면에 쓴 초안이 아무리 완벽? 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깨끗한 설교용지에 베껴 써야할 것이었다. 그런 것을 나는 내핍을 핑계하여 상업광고지 뒷면백지에 쓴 설교 문을 새 종이에 옮겨 쓰는 정성이 모자랐던 일이 있던 것을 나는 깨닫고 기억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써는 흠이 아닐 수 없다. 핍절을 핑계로 거룩을 훼손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별히 이 핍절의 시대에 모든 거민(居民)들이 앞으로 파피루스가 없어서 양피지를 만들어낸 것과 같은, 새것을 창출해 내는 적극정신을 견지해야할 것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금융의 침체가 다가오고 이 금융의 침체가 이미 실물경제에 위기를 몰아오고 있다. 한국, 미국 할 것 없이 적은 비즈니스에까지 도산의 위기가 몰려오고 있음을 본다. 우리가 거주하는 적은 도시에서도 문을 닫은 식당들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이 핍절의 고통을 어떻게 이기고 헤쳐 나갈 것인가?
학술적인 논리와 경험적인 체험의 모델이 많이 있을 것이다. 오늘날 편하고 쉬운 것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은 삶의 선진들과 믿음의 선진들이 지혜로 헤쳐 갔던 길의 유익한 흔적들을 들춰봄이 어떨까?!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무(無)에서 유(有)를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을 향하여 그 나라와 의를 구하고 핍절의 고통 속에서 유(有)를 얻기 위한 지혜와 노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 부요한 핍절의 시대와 세상에서 찾아지지 않는 지혜를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 찾고 박해를 이겨냈던 버가모에서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페이팔로 후원하기

인기 기사
최신 댓글

170-04 Northern Blvd. #2Fl. Flushing, NY 11358
Tel: 718-414-4848 Email: kidoknewsny@gmail.com

Copyright © 2011-2015 기독뉴스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Intonet Solu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