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아들이 방학 동안 인턴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서로 너무 분주히 지내느라 Back to School을 위한 물품들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채 아쉽게 보내고, 허전한 마음이 들어 한동안 멍하니 창가를 바라보고 앉아 있다가 요즘 부쩍 이슈가 되고 있는 ‘헬리콥터 부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이맘때쯤 읽었던 미국 일간지를 인용하여 연합뉴스에서 다룬 기사가 있습니다. 미국의 한 남자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자립심을 고취하고자 신학기 개학을 앞두고 학교 현관에 공지문을 붙였습니다. 일명 '헬리콥터 부모'의 출입을 저지하는 공지문이었습니다. "아들이 학교에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려서 부모가 대신 점심 도시락, 교과서, 과제물 등을 가지고 오셨다면, 돌아가세요. 당신의 아들은 당신 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해갈 겁니다." 라는 내용의 공지문이었습니다.
자녀양육에서 자녀의 일상을 과도하게 간섭하고, 헬리콥터처럼 머리 위를 맴돌며 모든 일에 간섭하려는 부모를 ‘헬리콥터 부모’라 합니다. 자녀의 인생에 대한 간섭이 지나쳐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 부모를 말합니다. 일본에서는 ‘몬스터 페어런츠’ 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헬리콥터 부모는 예전부터 존재했지만,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대략, 미국:1946~1964년생, 한국: 1953~1963년생)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기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당시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그들 부모로부터 충분한 돌봄을 경험하지 못한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자신의 자녀들을 충분히 돌보고자 하는 병적 욕구로 ‘헬리콥터 부모’로 변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받지 못한 돌봄에 대한 상처를 불신으로 이해하고, 믿을만하다고 여기는 극히 소수의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이고,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 여기며, 자녀가 일정한 행동을 할 때 무조건 부모의 허락을 받도록 하고,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직접 간섭하고 챙깁니다.
헬리콥터 부모의 부정적인 영향은 최근 국내 · 외 뉴스의 사회면에서 크게 이슈화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학점이 잘 안 나오면 학교에 직접 찾아가 따지고, 학과, 직업, 회사, 심지어는 결혼 문제까지 부모가 대신 결정하려고 합니다. 즉, 자녀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방해하고, 부모가 대신 문제를 해결하며, 자녀로 하여금 즉시 부모의 지시에 따르도록 조정합니다. 단순히 자녀의 행동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신념에도 개입 하려합니다.
딸 바보 혹은 아들바보 부모 중에 자녀에게 집착하기 시작하면 헬리콥터 부모가 될 경향이 높습니다.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평소 자녀가 직접 경험해야 하는 상황조차 지나치게 간섭하여 자립성을 해치고, 자존감을 떨어뜨려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성인인 부모의 기준에서 판단하여 못마땅하게 여기고, 자녀의 행동을 제한하고, 지시를 내리는 강제성을 띱니다. 이에 대해 자녀는 다양하게 접하게 될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능력을 발달시키지 못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억압되거나 내재되었던 공격성을 무분별하게 표출하게 됩니다. 자존감이 떨어져 열등감이 생기고, 불안감, 우울감, 강박증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들이 아무리 자신들의 시간과 재정과 노력을 자녀에게 쏟았다고 억울해 할지라도 자녀가 그것을 사랑이나 관심으로 여기지 않고, 간섭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이때부터 자녀는 부모로부터 점점 더 멀리 달아나는데 에너지를 쓰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에 대한 맞춤식 사랑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헬리콥터 부모의 양육의 결과는 대부분 청소년기에 나타납니다. 심리적으로 어린이와 어른을 구별하는 기준은 ‘독립성’입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을 말합니다. 대학을 졸업해 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취직을 하지 않거나, 취직을 해도 독립적으로 생활하지 않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20-30대를 ‘다시 부모와 살러 들어온 자녀’라는 의미인 ‘부메랑 키즈(boomerang kids)’ 또는 ‘캥거루족’이라 합니다.
‘길을 모르면 물으면 되고, 길을 잃으면 헤매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늘 잊지 않는 마음이다’라고 한 한비야의 글이 생각납니다.
헬리콥터 부모 아래서 성장한 자녀는 독립적 인격체로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스스로 길을 찾아 목적지에 이르도록 곁문을 살짝 열어두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대함이 필요합니다.
‘헬리콥터 부모’에 대해 칼럼을 쓰면서 자신을 뒤돌아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결코 자유롭지 않은 화두입니다. 가벼운 증상이라고 안심해서도 안 되고, 심한 증상을 보인다고 낙심해서도 안 됩니다.
지금 여기까지 숨 가쁘게 살아온 베이비부머 세대의 부모 대부분은 마음 저 밑바닥에 과거의 어떤 시점에 미처 돌보지 못하고 방치한 ‘상처 입은 내면아이’를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다고, 앞으로 나아가기도 바쁘다고,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부모의 부모들의 재촉에 지금에 이르러 있습니다. 상처 입어 울고 있는 내면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튀어 오를 때까지 모르는 척하고 견뎌온 세대입니다. 이제라도 어른이 된 자신이 그 아이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어깨를 토닥이며, “네 잘못이 아니야. 넌 최선을 다했고, 잘 견뎌냈어. 고마워! 사랑해!“하며, 내면의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고, 안아 주어야 합니다. 툭툭 털고, 손잡고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치유 받은 내면 아이는 ‘헬리콥터 부모’라는 오명을 벗겨주고, 아픈 만큼 성숙하게 하는 성장촉진제가 될 것입니다.
칼럼을 마무리 하면서, 바빠서 챙기지 못한 Back to School을 위한 물품들에 대한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바쁘지 않았다면, 바쁜 아들을 일일이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간섭하며 귀찮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의 성장단계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이제 몸도 마음도 훌쩍 커버린 청소년기 아들과 성년기의 딸들에게 부모로서 해줄 것이 기도 밖에는 없음을 더욱 절실히 느낍니다.
박효숙교수/ 목회상담학 박사
뉴저지가정사역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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