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회를 처음 참석하게 된 것은 강도사 인허를 받는 날이었다. 그 전까지 노회라는 말을 들어 본적도 없었고 뭘 하는 곳인지도 몰랐다. 그날 강도사 인허를 받던 노회 현장에서 목사님들이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싸우다시피 시끌시끌했던 기억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노회라는 곳이 목사님들이 싸우는 곳으로 내 머리 속에 인식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 후 미국에 와서 노회에 가입하였다. 노회 가입 첫날 10여명의 목사님들이 모여 몇 명의 목사들을 제명시키는 안건으로 몇 시간을 말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노회는 싸우는 곳이라는 인식이 더욱 마음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게 노회 회원으로 있다 보니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나도 노회 싸움에 장본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이유가 이렇다, 노회장 선거에서 당시 부노회장이 관례대로 노회장으로 추대가 되어야 하는데 추대 받을 차기 노회장이 몇몇 목사님들과 좋지 않은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노회장으로 추대하지 못하고 법대로 투표를 하자는 안이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법대로 투표를 했다. 투표결과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당시 회의록 서기였던 내가 노회장에 당선된 것이다. 이에 반발하여 투표가 무효라는 둥, 노회 질서 상 회의록 서기는 노회장이 될 수 없다는 둥 이 문제로 또 싸움이 일어 난 것이었다.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나는 투표가 무효라고 미친 듯이 주장하는 목사에 의해 당선된 노회장을 고사할 수밖에 없었고 노회는 반강제적으로 부노회장을 노회장으로 선포해 버림으로써 일달락 노회는 끝이 났다. 그런데 그 후가 문제였다. 임시 노회를 소집한다고 공포해 놓고 몇몇 목사가 모여 나를 노회 명예훼손죄로 목사 면직을 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집단이다, 북한 공산당들도 이렇게는 안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부조리하고, 불법적인 노회와 맞서자니 자연스럽게 싸움에 말려들 수밖에 없었고 나도 그 싸움에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노회 일원이 된 것이다.
도대체 노회는 뭐 하는 곳인가? 목사님들이 모이는 수준이 이 정도라면 무슨 교회가 사회를 변화시키고, 목사님들을 지도자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을 안고 나는 노회를 탈퇴해 버렸다. 하지만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런 노회에서도 목사님들은 배출되고 그런 싸움판에서도 노회는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세상에 미련한 것들을 들어서 유능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한다는 역설적인 진리가 성경적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목사님들이 모인 집단에서만이라도 상식은 통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뿐이다.
그 후 나는 뜻이 맞는 목사님들과 노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벌써 18년이나 되었다. 노회를 운영하면서 내 마음 속에 늘 자리잡고 있는 것은 절대 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신조다. 하지만 때로는 상식을 벗어난 고집으로 노회를 어지럽히게 하는 분들이 있다. 명예욕이라 할까, 자존심 싸움이라 할까, 노회 안에서 노회 밖에서 끊임없이 부정적으로 노회를 폄하하는 분들이 있다. 다 이해부족에서 오는 인간의 나약함으로 밖에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노회는 싸운다.
싸우지 않는 노회를 만들 수는 없는 걸까? 노회장이 권세의 자리인가? 분명히 봉사의 자리이다, 가장 앞장서서 섬기기로 한 섬김의 자리이다. 이것부터 정립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노회에게 바란다. 노회장이 명예의 자리도 아니고 권세의 자리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회장을 했으면 물러난 후에 회의록 서기를 하라 증경노회장이라 부름 받지 말고, 직전 노회장이라 부름 받지 말고 가장 낮은 자리라고 여기는 곳에서 섬겨라. 그리하면 그 노회는 싸우지 않는다, 가장 어른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노회! 그런 노회가 오늘날 필요한 때이다,
낮아질 때 높아져요 하나님의 사랑은
낮아질 때 커져요 하나님의 사랑이
너와 나의 섬김 속에 주님의 형상이 빛나고
너와 나의 겸손한 믿음에 주님이 우릴 높이시리
낮아질 때 높아져요 하나님의 사랑은
낮아질 때 커져요 하나님의 사랑이
페이팔로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