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몇 가지의 단점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말이 빠르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차분하게 이야기하다가 조금 감정이 들어가면 말이 빨라지고 약간의 톤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나의 말하는 습관은 설교에서도 나타난다. 설교를 처음 시작할 때는 천천히 차분하게 시작하지만 조금 감정이 섞이면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의 톤이 높아진다.
이런 나의 습관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듯싶다. 부친께서 말씀을 하실 때면 처음에는 차분히 하시다가 차츰 빨라지고 톤도 높아진다는 사실을 어려서부터 느끼면서 살아왔는데 내가 똑같이 그런 습관을 유전 받은 듯하다.
이런 습관을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불편 없이 지내왔고 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잘 못되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가끔 아내로부터 당신은 차분하게 이야기해도 될 것을 왜 화난 것같이 이야기하느냐고 지적을 받은 일은 있어도 그것이 나의 큰 문제라고 여겨 본적이 없었다.
얼마 전 교인과 생각지 않는 일로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교인이 나에 대한 큰 오해를 하고 일방적으로 나의 잘 못을 지적하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100% 오해에서 오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나는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하면서 평소에 나의 말하는 습관이 뛰쳐나온 것이었다.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나의 말에 상대방에서는 묘한 반응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니 목사님이 이런 문제 가지고 그렇게 화를 내시냐고 우리가 뭘 잘 못했냐고...”
난 이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분명히 화를 낸 말은 아니었다 조금 목소리가 높았을 뿐이다. 그런데 듣는 상대방에서는 마치 내가 몹시 화가 난 것같이 듣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야기의 주제가 이제는 내가 화를 냈다는 쪽으로 바꿔지면서 이상한 말싸움으로 확대되었고 급기야 내가 목소리를 높인 것에 대한 사과를 하고 마무리를 하였다. 나는 뜻하지 않은 오해와 내 말 습관이 상대방에게 목회자의 이미지를 추락시켰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좌절감을 맛보아야만 하였다.
혈기! 목회자의 치명적 올무이다.
20년 명성을 쌓기 위해 그렇게 애를 쓰고 달려 왔건만 나의 혈기 한번으로 20년 명성은 순식간에 무너진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성도들은 온유한 목회자를 원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같이 모든 것을 포용하고 너그럽게 받아 줄줄 아는 그런 목사를 원한다. 또 목사는 의례 그렇게 온유한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온유한 이미지가 높아진 목소리, 분노한 말 한마디에 성도들은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많은 목사들이 이런 자기 잘못된 성품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시도 때도 없이 자기 성질을 언행으로 발산하는 목사가 부지기수이다. 자기를 다스리지 아니하고 목사가 되어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이미 지도자로서 자격을 상실한 사람이다.
하지만 정작 혈기를 부리고 분노하는 목사들의 이론이 절묘하다.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이 땅에 의를 세우기 위해 분노한다는 것이다. 누구든 자기 상식에 벗어나게 행동하는 인간들에게는 강하게 무력으로, 언어폭력을 써도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교회에서 또 목사에게 못되게 구는 못된 목사, 못된 장로, 못된 성도들을 가만히 놔둘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심판자의 노릇을 하는 목사가 많다는 것이다.
노회나 총회 모임에 가면 이런 의로운 목사들이 많다. 노회를 위해 총회를 위해 혈기를 부리고 분노하고 심지어 주먹질까지 하면서 의를 세운다는 것이다.
이런 혈기가 과연 예수님께서 목사들에게 그렇게 원하셨던 바램이었을까,
이민사회에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등지고 있다. 장로, 안수집사 등 중직들이 아예 교회를 나가지 않는 분들이 이외로 많다. 그 이유가 뭘까, 많은 부분 목사의 혈기로 인해 받은 상처 때문이라면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목사들의 혈기 때문에 사모님들이 울고 있고, 많은 성도들이 울고 있다. 누가 이 아픔을 치유하여 줄까...
*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시37:8)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있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니라 (눅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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