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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 사람의 뒷모습과 하나님의 뒷모습(출 33: 17-23)

08/30/15       김엘리야 목사

[설교칼럼] 사람의 뒷모습과 하나님의 뒷모습(출 33: 17-23)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40일 금식기도를 세 번했다. 첫 번째는 십계명 돌 판을 받기 위해 시내 산에서 했던 금식기도였고(신 9: 9), 두 번째는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아론과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 하실 때 중보기도로 했던 40일 금식기도였으며(신 9: 18, 25) 세 번째는 두 번째 십계명 돌 판을 받을 때 했던 금식기도였다(신 10: 10) 본문은 두 번째 40일 금식기도 때에 경험한 신비체험으로 하나님께서 금송아지우상을 숭배한 이스라엘과의 가나안 동행을 거절하고 대신 천사를 보내 길을 안내하겠다는 말씀을 듣고 모세가 40일을 금식하며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이스라엘과 동행해주실 것을 기도할 때’ 체험한 신비경험이다.

40일 금식기도 중에 모세는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여달라”(I beseech Thee, show me Thy glory!: “제가 간청하오니 당신의 얼굴이나 용모의 영광을 제게 보여 주소서!”)고 간구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그러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내 영광이 (네 앞으로)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You shall see My back parts, but My face shall not be seen; 출 33: 19-23)고 하셨다. 이렇게 해서 모세는 4000여명의 성경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영광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뒷모습’을 보는 신비체험의 사람이 된다.

사람의 뒷모습과 하나님의 뒷모습
   
얼마 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공연을 펼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로열 콘세르트헤보 오케스트라(Royal Concertgebouw Orchestra)의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의 음악을 감상했던 어떤 음악평론가는 ‘약간 등이 굽어보이는 그의 뒷모습은 그만의 예술적 고뇌와 삶에 대한 겸허함과 소리에 대한 집중력을 고스란히 담아내 감동을 주었는데 그래서 그의 뒷모습은 진정한 최고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웅변해 줬다’는 글을 썼다. 123년 전통의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명성에 걸맞게 빌렘 케스, 빌렘 멩겔베르크,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등 세계적 지휘자의 뒤를 이은 마리스 얀손스에 대한 음악 평론이었다.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는 일단 연주에 임하면 청중을 향해 항상 뒷모습을 보인다. 콘서트 홀(Concert Hall)의 합창석이나 연주석에 앉는 몇 사람은 지휘자의 앞모습을 보지만 대부분의 청중은 항상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앞모습이나 얼굴보다는 뒷모습을 본다. 이렇게 홀의 청중은 지휘자의 얼굴 표정이나 손과 발놀림의 제스처를 볼 수 없어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지휘자 뒷모습에서 많은 감동을 받고 환호하며 기뻐하는 것이다.

일본의 서예가이자 시인인 아이다 미쓰오(1924-91)가 그의 노스승 다케이 데쓰오 에게 들어서 평생 동안 마음에 새기고 새겼던 말 중에 하나는 “면벽좌선하고 있는 사람이나 경건하게 기도하고 있는 사람의 등을 보면, 그 사람이 지닌 역량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뒷모습이 충실한 사람이 그야말로 제대로 된 사람이다. 무대 배우든 누구든 명배우라 불리는 사람들은 모두 뒷모습이 충실했다. 뒷모습이란 자신은 의식할 수 없기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얼굴로나 말로는 속일 수 있어도 뒷모습은 속일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다 미쓰오는 그 말을 좌우명처럼 생각하고 평생을 자신의 뒷모습에 충실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안 보이는 것 같고 감추어진 것 같지만 사람의 뒷모습은 너무나 많은 진실을 담고 있고 또 많은 진실을 드러낸다. 그래서 뒷모습이야말로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평생 피사체의 뒷모습만 찍은 사진계의 거장인 프랑스의 에두아르 부바의 친구 미셀 투르니에는 부바가 찍은 쉰 석 장의 뒷모습을 담은 사진집에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이면과 뒤쪽은 그리고 등 뒤는 어떤가?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뒤쪽이 그 사람의 진실이다. 진실은 항상 뒤쪽에 있다”는 설명글을 달았다. 그렇다. 우리(나)의 뒷모습은 속일 수 없다. 사람들에게 예쁘게 아름답게 보이려고 치장하고 덧칠하며, 자기를 과시하고 멋있게 보이려고 꾸미고 변장하는 앞모습과 달리 사람의 뒷모습은 모두 정직하다. 속일 수가 없다. 그래서 진짜 멋진 배우는 뒷모습이 충실하다. 최고의 지휘자는 뒷모습이 감동이다. 그리고 정말로 멋있는 목사와 성도는 뒷모습이 당당하고 존경스럽다. 오늘 나와 당신의 뒷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

1. 인간의 뒷모습들

한때, 한국에서 작가 백지원이 지은 ‘왕을 참하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였었다. 그는 이조 500년을 통치한 조선왕 27명 중에 명군(明君)은 세종과 정종뿐이요, 밥값을 한 왕은 5명, 죽 값 정도 한 왕은 성종 등 2명, 나머지 18명의 왕은 얼뜨기, 멍청이, 소인배, 덜 떨어지고 모자라는 무능한 임금이었다고 혹평했다. 특히 조선의 숨통을 막은 요망한 암탉 정순왕후와 안동김씨의 정치를 수수방관한 23대 순조를 허수아비로, 왕도를 한양으로 정하면서 백성들에게 위엄을 보이려고 백성들의 세금을 쥐어짠 가렴주구로 지은 호화로운 궁궐과 사치로 임진왜란의 빌미를 가져온 14대 선조를 한심한 인간으로 악평했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직을 지키기 위해서란 핑계를 대고 조정을 둘로 나눠 분조(分朝)하고, 세자 광해에게 조정을 맡기고 자기는 왜적이 오기도 전에 짐을 싸들고 북으로 북으로 도주했다. 이때 나라를 버리고 도망치는 왕에게 분개한 백성들이 도성에 불을 지르는 수모를 겪는 선조는 아들 광해가 의병을 지휘하여 왜적의 공세를 차단하자 자신보다 백성의 신망을 더 받는 아들을 미워해 불타는 질투심으로 광해의 진로를 방해하고 수시로 양위파동을 일으켜서 아군 전선에 막대한 차질을 빚기까지 한다. 도성에 입성한 적장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왕이 도성을 버리고 도망친 것을 보고 놀랐다는데, 선조는 나라를 두고 도망치는 주제에 의병장 김덕령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고 이순신장군까지도 불신하여 위기에 처하게 만든 졸렬한 위인이다.

선조 밑에서 영의정으로 있던 김하근의 첩은 쌀 스무 섬씩 밥을 지어 한강에 나가 배를 타고 물놀이를 하며 고기에게 밥을 뿌려주었는데, 그때 배곯고 굶주린 백성들이 목숨 걸고 강물에 뛰어 들어가 그 밥을 건져내오다 물에 빠져 숨지고 병졸들에게 잡혀가 곤장을 맞으며 영창에 투옥되기도 했으니 임금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고 하면서 이런 인간들이 나라를 통치했기 때문에 두 번 씩이나 일본에게 나라를 뺏기는 비극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조시대와 근대를 통틀어 명군은 세종대왕과 정종과 대한민국의 기초를 세운 초대대통령 우남 이승만과 5,000년 가난의 저주멍에를 끊고 조국근대화로 대한민국을 잘 살게 만들어 문화선진국과 경제선진국 대열에 올려놓은 박정희 정도라고 평했다. 이렇게 사람의 앞모습과 뒷모습이 다른 사람은 얼마든지 많다.
 
지난 50년 동안 TV브라운관의 총아로 사랑받던 미국의 ‘국민 코미디언’ 빌 코스비가 몰락했다. 1984년에 시작해 총 220부 작이 제작될 정도로 화제가 됐던 미국중산층 가정의 행복한 일상을 담은 코미디 드라마 ‘코스비 가족’의 주인공 빌 코스비는 50년 동안 부와 영화를 함께 누린 미국의 대표 코미디언이자 흑인사회의 우상으로 여겨졌던 인물로, 2002년엔 미국국민에게 최고의 영예로 여겨지는 ‘자유의 메달’까지 수상했다.

빌 코스비는 지난 50년 동안 겉으로는 흑인사회의 우상으로 여겨질 만한 삶을 살았다. 1988년 아내 카밀과 함께 흑인대학으로 알려진 스펠만 대학에 2000만 달러를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장학 사업과 선행은 물론 여러 재단에 통 큰 기부를 해왔다. 그래서 흑인사회뿐 아니라 백인들에게서도 영웅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자상한 아버지, 모범적인 남편, 시대의 영웅, 기부천사 뒤에 숨겨져 왔던 그의 뒷모습은 그 동안의 행적과 너무나 차이가 나 더 추악하고 비참하며 초라하다. 77세 나이에 그가 성추문 스캔들에 휩싸여 끝이 안 보이는 낭떠러지 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빌 코스비는 30-40년 전부터 연예인 지망생들에게 약을 탄 음료수를 먹이고 성폭행을 했지만 그의 선행과 인기에 덮여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고, 언론은 오히려 코스비를 비호했다. 그러다가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의혹의 횟수가 점점 많아지자 언론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는데 마침내 그 추문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제 코스비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고, NBC방송은 코스비 주연의 연속극 방송을 취소했으며, 대학들도 그의 이름을 딴 장학금을 없애고 자문위원회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으며, 극장에 올려 지기로 했던 공연들도 모두 취소됐고, 마침내 버락 오바마도 ‘약을 먹이고 성관계를 하는 것은 강간이며, 강간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정면으로 그를 비판했다. 평생을 브라운관의 황제로, 미국 국민의 아버지로, 흑인들의 우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 받는 영웅으로 추앙 받던 빌 코스비의 비참하고 초라한 뒷모습이다.

지금, 한국에서 경영권분쟁으로 ‘형제의 난, 대혈투’가 진행 중인 ‘롯데의 뒷모습’은 어떤가? 1967년 껌 하나로 롯데제과를 시작해 반세기만에 한국과 일본에서 식품, 유통, 관광, 중화학, 건설제조, 금융, 정보통신에서 우뚝 서므로 수십 만 명을 먹여 살리고 국가경제의 일익을 담당하는 세계굴지의 대기업이 되자, 롯데는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는 경제계의 신화적인 존재가 됐다. 그것이 롯데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과 두 아들 신동주, 신동빈 회장의 ‘경영권 집안싸움’을 하기 전, ‘롯데의 앞모습’이다. 그러나 이제 형과 동생이 경영권쟁탈을 위한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부모는 부모이고 경영은 경영이라’며 자기의 추종자를 모으고 반대자들을 죽이는 권모술수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피투성이의 싸움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오늘 롯데의 뒷모습이다. 아니 그것이 돈을 사랑하는 모든 지구촌 인간들의 뒷모습이다.

종교계는 어떤가? 주후 378년, 다마스커스 감독이 로마가톨릭교황과 바벨론 태양신종교 제사장을 겸직하여 두 직분을 맡은 후, 기독교예배의식을 바벨론종교예배의식과 병합하므로 기독교와 바벨론종교가 결합되는 치욕의 해가 된 이후, 2015년 현재까지 1600여 년 동안의 수백 명 가톨릭 교황들의 뒷모습은 사도요한의 선언대로 하나님의 지옥심판이 예정된 큰 바벨론이며, 가증한 것들의 어미인 음녀일 뿐이다. 세상 사람보다 더 추하고 더럽다.

그들의 지도자들에 의해 오도되고 있는 10수억에 가까운 가톨릭신자들과 똑같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7-8억 기독교인들을 위해 Dave Hunt(데이브 헌트)박사가 저술한 책, ‘짐승 위에 탄 여인’(A Woman Rides the Beast) 몇 곳을 소개한다.

‘일부 교황들은 그들의 정부(情婦: 아내가 아니나 정을 두고 지내는 여자)창녀(娼女)들에 의해 교황에 오른 자들이 있다. 그들 중 6명의 교황은 음란한 한 쌍의 모녀에 의해 교황이 됐다. 당시 강력한 권세를 휘두른 로마 원로원의 아내였던 데오도라(Theodora)는 그의 딸 마로지아(Marozia)가 교황 서기어스(Sergius) 3세의 정부였던 것을 기화로 로마의 정계를 흔들었다. ‘로마의 정부창녀’로 소문난 마로지아는 자기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살인도 주저하지 않은 여자였고 그의 어미 데오도라도 두 명의 고위 성직자의 정부였다. 그래서 서기어스 교황이 사망한 후, 데오도라는 그의 두 정부를 교황자리에 올려놓았는데, 911-913년의 교황 아나스타시어 3세(Anastasius)와 913 -914년의 교황 란도(Lando)가 그들이다. 그리고 라베나 출신의 한 사제와 사랑에 빠진 데오도라는 그 사제까지 교황자리에 앉게 했다‘

‘로마제국의 쇠퇴와 멸망’이란 책에서 에드워드 기본(Edward Gibbon)은 “두 창녀여자인 마로지아와 데오도라의 영향력은 그들의 부와 미모와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 애욕적인 음모 속에서 행사된 것이었다. 그들의 정부(情夫)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정력가들은 그녀들의 욕망충족을 채워준 대가로 하나같이 로마의 교황직으로 보상을 받았다. 시대의 탕녀 마로지아의 사생아 아들, 손자, 증손자들이 성베드로 의자(교황)에 앉았다”고 말함으로 ‘교황의 자리를 창녀들이 결정했다는 것은 교황청 타락의 극치를 보여준 하나의 예일 뿐이라’고 했다.

그다음, AD 896-7년의 교황, 스데반 7세는 그의 전임자 교황 포머서스(Formosus)가 매장된 후 8개월 만에 그의 시체를 파내어 정식 교황의 의복을 입혀서 교황보좌에 앉힌 후, 시체를 재판에 회부하여, 살레망 대제의 수많은 사생아들 중 하나에게 황제의 관을 씌운 행실을 정죄한 다음(당시 많은 교황들이 전임교황의 사생아들이었다) 옷을 벗긴 후, 황제들을 축도한 포머서스의 오른 손 손가락 세 개를 잘라버렸다. 그리고 포머서스의 시체를 민중들에게 던져버렸는데 군중들은 시체를 끌고 시가를 행진한 후, 티베르 강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스데반 7세는 포머서스의 교황안수들을 무효라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포머서스가 살아 있을 때, 수많은 사제들과 주교들을 안수했고, 서품안수를 받은 그들은 또 다른 사제들을 안수했으며 그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안수해 와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누가 진짜 정통(正統)의 교황이고 누가 가짜인가? 이 사실은 오늘까지 로마가톨릭교회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로 출몰하고 있는 문제이다.

그 외에도 아버지를 이어 8살에 교황이 된 사람,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를 정부로 두었던 교황들, 수십 명의 정부를 두어 수많은 사생아들을 낳았던 교황들, 전쟁이 없던 중세에 전쟁고아로 태어난 아이들과 유럽에 수많은 수도원 화장실마다 유아들의 뼈로 채워진 아이들의 유골들, 교황의 이름으로 종교재판이란 미명하에 각 나라에서 수백만 기독교인들을 고문하고 살해한 사건들 그리고 나치의 반유대주의를 후원하고, 600만 유태인을 학살할 때 그 사실을 묵인하고 전범들을 축복한 교황, 독일의 히틀러와 이태리의 뭇소리니 2차 세계대전을 옹호하고 수수방관한 교황, 2차 대전의 흉악전범들을 남미로 피신케 했던 가톨릭교회와 교황 등 교황청과 교황들이 저지른 부끄러운 뒷모습들을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도록 많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아이들을 성폭행하는 남색과 간음의 소문들이 줄을 잇고 있다. 평화의 사도로 전 세계를 누비며, 입으로는 세계평화를 말하고 사랑과 화목을 외치면서 살상과 파괴와 전쟁을 묵인하고, 간음과 음란과 방탕으로 전 세계 타락의 주범으로 살고 있는 사제들의 뒷모습은 무엇으로 설명이 되겠는가?

며칠 전, 중국의 소림사고승이 많은 여인들을 탐닉하고 엄청난 재산을 빼돌린 비행들이 발각돼 뉴스거리가 됐지만, 이제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불교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 가톨릭 유교 힌두교 라마교... 모든 종교에 만연돼 있고, 유명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치부의 뒷모습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정치가들은 정치가들대로, 법관은 법관대로, 대학교수는 교수대로, 장사꾼은 장사꾼대로, 평범한 가정부나 직장인들은 그들대로 심지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종교지도자들까지 앞모습과 뒷모습이 너무나 다른 것을 본다. 한때, 세상 위에 군림하여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들과 왕들과 호걸들과 장군들, 한때, 돈과 명예로 세상을 쥐락펴락하던 재벌들, 한때, 수십 만 수백 만 군중을 몰고 다니며 천하제일의 목사 세계적부흥사로 명성을 날리던 사람들의 초라한 뒷모습을 보면서... 한때, 나도 그것이 부러워 그들처럼 되려고 전력질주 했었던 것을 뉘우치며 인생의 허무함과 삶의 허탈감을 느낀다.

한국의 전직 장관과 현직국회의원들이 수억의 뇌물을 먹고 줄줄이 감옥으로 가고, 대기업 총수들이 검은 돈 거래로 은팔찌를 차고 감방생활을 하며, 대학교수가 유혹에 실패하자 앙갚음으로 제자에게 인분을 먹이고, 현직 검사가 음행으로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며, 백주대낮에 처녀 총각들이 벌거벗은 채 부끄럼 없이 거리를 활보하는 시대, 친 딸과 의붓딸을 십년 이십년 성폭행을 한 인면수심 아버지들이 나타나는 시대, 심지어 친부모를 살해하고 친자식과 친형제를 죽이는 시대, 친구들을 성폭행하고 생매장을 하는 끔찍한 십대들이 등장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이 시대는 앞모습을 봐서는 사람을 알 수 없는 시대고, 뒷모습을 봐서는 신뢰할 만큼 정직한 사람을 찾기가 힘든 시대이다. 이런 악하고 음란한 시대에 앞모습과 뒷모습에서 사람들과 하나님께 존경받고 인정받는 거룩하고 경건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2. 전적타락의 인간실존

왜 이렇게 사람의 앞모습과 뒷모습이 야누스(Janus)처럼 다른 것인가? 그렇다. 인간의 전적타락 때문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이후 인간은 죄의 존재가 됐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양의 동서를 불문하고 태어날 때부터 타락한 죄인이다. 성경 엡 2: 1은 인간을 ‘허물과 죄로 죽은 존재’라고 했고, 5절에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허물로 죽은 존재’라고 했으며, 바울은 롬 1: 28-31에서, 빛과 생명이신 하나님이 그 마음에 없는 사람은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이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어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악의가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고 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막 7; 21-23에서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The evil thoughts)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狂悖)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한다”며 인간의 전적타락을 말씀 했다. 그렇다. 흙으로 메워도 바위틈으로 지하온천수가 쉴 새 없이 솟구쳐 나오듯 악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자기 인격을 뚫고 솟아나오는데 지구상에서 하나님 없이 인간의지로 악한 생각들을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목사가 다시 한 번 장담하건대 악한 생각을 이길 장사는 나를 포함해 지구촌에 아무도 없다. 우산으로 보슬비는 어느 정도 막을 순 있어도 태풍을 동반한 강한 비 앞에는 속수무책이듯 사람이 돈과 권세, 지위명예와 지식, 사상과 종교가 작은 악한 생각은 체면과 인격으로 이길 수 있어도 사단마귀가 주는 악한 생각의 강한 유혹은 이길 힘이 되지 못한다.
이제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람을 더럽히는 악한 생각들을 알아본다.

① 음란(淫亂, Fornication, 포르네이아) 아내 외에 다른 여인, 남편 외에 다른 남자와의 부정한 관계뿐 아니라 음욕의 더러운 생각을 품는 것까지이다. 장성한 성인 중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순간적으로라도 음욕을 품지 않는 남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돌로 된 석상인간이 아니라면 누구나 음란한 생각이 바람처럼 지나간다. 그래서 인간의 악한 생각과 죄 중에서 첫 번째가 음란일 것이다 ② 도적질(Thefts, 클로페) 타인의 소유를 은밀하거나 공개적으로 내게 옮기는 행위, 이웃의 소유를 아무렇게나 취급하는 행위, 나의 유익을 위해 물질적으로 이웃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이다 ③ 살인(Murder, 포노이) 문자 그대로 사람(타인이나 자신)을 죽이는 일에서 이웃을 망가지게 하는 일 그리고 이웃의 행복을 손상(파괴)시키거나 이웃을 원수처럼 증오하고 미워하는 것까지를 가리킨다(To kill, to spoil or mar the happiness of another, hatred) ④ 간음(Adulteries, 모이케이아) 싱글이든 기혼자든 남녀사이에 모든 불법적이며 부정한 성관계(Unlawful sexual relation)를 가리킨다. 부끄럽게도 오늘 세상은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도 성교상대가 500명, 1000명, 1500명인 것을 공공연하게 자랑하는 시대이고 그런 짓을 못하는 사람은 시대의 루저이고 그래서 너도나도 그것을 부러워하는 타락의 극치시대이다.
⑤ 탐욕(貪慾, Covetousness, 플레오넥시아) 현재 가지고 있는 가정이나 재산에 만족하거나 감사치 않고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을 가리킨다. 베드로는 장차 나타날 많은 이단들이 탐심을 인하여 지어낸 거짓말로 진리의 도를 훼방하고, 영웅처럼 행동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다가(They will exploit you with false words)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벧후 2: 3) 탐욕의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 ⑥ 악독(Wickedness, 포네리아이) 말이나 행동으로 사람을 고달프게 하고 힘들고 아프게 하는 언행들이다 ⑦ 속임(Deceit, 돌로스)은 “올가미”, “덫”이란 뜻으로 이웃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며 하나님까지 속이는 말과 행동이다. 야곱은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며 하나님까지 속였다가 14년 동안 장인에게 사기결혼을 당하고 처남들에게 사업에 속임과 사기를 당하며 마지막엔 자기 자식들에게까지 속임을 당하는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

⑧ 음탕(Lasciviousness, 아셀게이아) 음탕은 육욕적인 음란한 감정이고, 성적인 죄와 욕망이 생기게 하는 것에 동조하거나 그런 것을 악의로 조장하는 것들을 가리킨다(Lasciviousness is the promoting or partaking of that which tends to produce lewd emotion, anything tending to foster sex sin and lust) 그래서 음란(淫亂)이 부정적인 성관계를 의미한다면, 간음(姦淫)은 기혼자와 관계되는 성범죄를 의미하고, 음탕(淫蕩)은 성적인 본능을 절제 없이 노출시키는 공개적이며 부끄럼을 모르는 성범죄로 사람들의 성적욕망을 충동질하는 죄를 가리킨다. 최근 몇 달 동안에 한국, 중국, 일본, 프랑스,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간헐적으로 백주대낮에 나체의 여인들이 시내를 활보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더니, 지난주엔 뉴욕에서 여자 연예인들과 모델들이 상의를 벗어던지고 팬티만 입은 채 거리로 나와 ‘우리도 남자들처럼 옷 벗을 자유를 달라’며 데모를 해 세상을 놀라게 했는데, 이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렇게 타락했다는 세상종말의 징조이다.    

⑨ 흘기는 눈(An evil eye, 오프달모스 포네로스) 악의적인 비웃음과 빈정거림으로 응시하거나 부러워하면서 시기한다는 셈(Shem)어적 표현이다 ⑩ 훼방(Blasphemy, 블라스페미아) 신성모독적인 욕설과 험담을 의미한다. 며칠 전 미국의 동성애단체가 ‘성경이 동성연애를 죄악으로 정죄하므로 성경 때문에 괴로워서 살기가 힘들다’며 성경출판사를 향해 7500만 불 소송을 걸었다. 끈질긴 투쟁으로 대법원의 동성애 합법판결을 받아내자 내친김에 이젠 성경으로 칼 뿌리를 돌렸다. 불원간 그들은 성경의 기록자 하나님까지 고소할 것이며, ‘동성애 내용’을 성경에서 삭제하라고 데모할 것이며, 동성애 반대를 설교하는 목사와 교회를 고소하고 박해할지도 모른다. ⑪ 교만(Pride, 휴페레파니아) 무례하게 잘난 체 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말과 행동을 가리킨다. ⑫ 광패(狂悖: 사리분별을 못하고 도리에 어긋남, Foolishness, 아프로쉬네) 도덕적 판단력이 결여된 사람의 상규와 도리를 벗어난 어리석음과 미친 짓을 가리킨다.
그렇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내면의 실체이다. 이것이 허물과 죄로 죽은 전인타각 인간군상 내면의 실체요, 그 마음에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없는 자들의 심상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그 마음에 없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그가 아무리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고, 많은 사람을 가르치는 선생이며, 극기복례의 수양을 쌓은 성인군자라도 그리고 미-코의 팔등신 미인이라도 12가지 악한 생각에 사로잡혀 살기 때문에 썩은 오물에서 좋은 향기가 날 수 없듯, 유치하고 더럽고 지저분하며 냄새나는 초라한 모습만 보일 뿐이다. 그래서 세상엔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어 거듭난 성도라 할지라도 신앙이 장성하지 못한 신앙초보의 어린아이, 육신에 속한 신앙의 사람들도 이 ‘악한 생각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래서 다메섹도상에서 신비체험으로 그리스도를 만나고 성령을 받았지만 은혜와 악한 생각을 번갈아 경험하며 초보신앙생활을 하던 바울은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For I delight in the law of God after  the inward man)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O, Wretched man that I am! : ”아, 비참하고 가엾은 나여“, ‘형편없고 쓸모없는 나여”, “가증스러운 나여”)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Who shall deliver me from the body of this death?; 롬 7: 22 -24)고 절규한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는 처절한 신앙의 실패고백이다.

그러나 말씀과 성령으로 훈련받아 그리스도의 성품까지 성장해져 은혜로 충만해진 바울은 “이제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 1-2)고 승리를 선언한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과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만 ‘12가지 악한 생각들’을 이길 수 있다. 말씀 충만과 쉬지 않는 기도와 찬양과 감사를 통한 성령 충만에서만 신앙승리자로 선언할 수 있으며 나의 앞모습과 뒷모습이 같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충만으로 악한 생각들을 다스리고 지배하므로 뒷모습까지 경건하고 거룩하며 아름다울 수 있기를 축원한다.

3. 하나님의 뒷모습

본문은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여주소서”(I pray Thee, show me Thy glory; 출 33: 18)라며 하나님영광의 얼굴을 보여 주기를 애원하는 모세에게 “네가 내 얼굴은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으리라”며 대답하시고, 앞모습의 얼굴 대신 하나님의 선한 형상으로만 모세 앞으로 지나가시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선한 형상으로 모세 앞을 지나가실 때, 모세를 반석 틈 사이에 숨기시고 손으로 모세를 덮어서 보호하시고 모세를 지나가신 후에 손을 거두어서 모세로 하나님영광의 잔재인 하나님의 뒷모습만 보게 하셨다.

하나님의 영광스런 얼굴 대신 뒷모습을 통해 영광의 반영(反影; “뒷그림자”)을 보여주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⑴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안다(I know you by name; 17절)고 하셨다. 하나님이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이름을 주신 것(창 1: 5, 8, 10)은 하나님이 만물의 소유주이심을 나타낸 것이고, 이름을 묻는 야곱에게 대답을 거절했던 하나님(창 32; 29)이 출애굽사건을 통해 여호와란 이름을 알려주신 것은 그 이름을 통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기억하라고 자신을 계시하신 것이었다. 그래서 모세를 이름으로도 알았다고 하신 것은 ① 하나님이 모세의 구원자시고 ② 하나님이 모세(인간)의 지배자며 소유주이시고 ③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오셔서 스스로를 계시하시는 분임을 의미한다.

⑵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겠다(I will proclaim the name of the Lord before you; 19상)고 하셨다. ‘반포한다’의 카라는 “자신을 공식적으로 드러낸다”는 뜻이다. 이제 이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거룩한 속성을 모두 드러내겠다는 의미이다 ⑶ 나는 은혜 줄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푼다(I will be gracious to whom gracious, and I will show mercy on whom I will show mercy; 19하)고 하셨다. ‘은혜를 주다’(Be gracious)의 히브리어 하난은 “은혜롭게 대한다”는 말로, “윗사람이 아무런 자비도 요구치 않은 아랫사람에게 자발적으로 베푸는 은혜”를 가리킨다. 그렇다. 오늘 김목사와 당신이 구원의 은혜와 축복과 성령의 은혜를 받은 것은, 우리가 잘나서 받은 것이 아니고, 내가 훌륭하고 똑똑해서, 우리가 은혜를 구했기 때문에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원해서 베푼 거저 주신 은혜다.       

하나님의 뒷모습, 하나님영광의 뒷그림자를 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큰 축복과 은혜와 긍휼을 받는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난 말씀과 성령이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들 뒷모습을 통해 오늘도 우리는 한없는 은혜와 강한 도전들을 받는다. 그렇다면 오늘 나와 당신의 뒷모습은 어떤가? 내 뒷모습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앞모습만큼 은혜를 끼치고 있는가?

십 수년 동안 다녔던 동남아 선교지역 몇 나라의 신학생들이 나를 General Officer(장군)이라 부르며 좋아했다. 아마 잠자리에 들어가기 전에도 머리를 빗을 정도로 언제나 흐트러지지 않는 나의 완벽주의적인 당당한 자세와 열정적인 설교와 가르침 그리고 젊은 학생들과 격이 없이 어울려 함께 운동을 하고, 열악한 선교지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으며, 항상 피곤치 않고 지치지 않는 싱싱한 모습에서 붙여준 별명일 것이다. 그리고 선교지 뿐 아니라 집회를 인도한 수많은 교회 성도들에게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과분한 칭찬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은근히 목에 기브스를 하고 어깨에 각을 세웠었다.

그러다가 7-8년 전 어느 날, 여름방학이 끝나 학교로 돌아가는 아들을 기차에까지 배웅해주고 기차역을 향해 걸어가는 아버지의 꾸부정한 뒷모습을 차창에서 본 아들이 ‘저 꾸부정한 아버지의 뒷모습이 어깨 핀 오늘의 나고 미래의 나’라며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다는 글을 읽은 후, 그때부터 나의 뒷모습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내가 집으로 돌아갈 때, 성도들은 나의 뒷모습을 어떻게 볼까? 매주 월요일 동료목사들과 운동을 하고 집으로 떠날 때, 매주 금요일 카운티의 Senior노인들과 배구를 하고 경기장을 떠나 집으로 올 때, 그들 가슴에 새겨진 은 나의 뒷모습은 어떤 것일까? 내가 아들과 딸집을 방문하고 아이들 집을 떠날 때, 그리고 아이들이 우리 집을 방문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들과 딸 부부와 어린 손자들은 나의 뒷모습을 어떻게 기억할까? 50년 40년 전에 성도들은 나의 뒷모습을 어떻게 기억할까? 30년 20년 10년 전 그리고 지금의 성도들은 나의 뒷모습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매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뒷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10년 20년 30년 후 내가 세상을 떠난다면,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뒷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등등 그때가지 앞모습에만 신경 쓰고 살아온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그러면서 지구촌의 모든 사람의 뒷모습이 보여 지면서 한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타락상’이 보였고, 거룩하고 경건한 성도들 발자취의 위대함이 보였다. 그리고 앞모습에만 치중했던 과거를 정리하고 뒷모습 관리에 신경을 쓰는 경건한 삶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것이 오늘 설교가 준비된 배경이다.

뉴저지 주 한 교회 목사가 누구의 장례식이라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교인들에게 장례식에 와달라는 소식을 보냈다. 소식을 들은 성도들은 누구의 장례식인지도 모르고 식장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다 모이자 목사는 설교를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 관속에 누워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사람이었다. 지은 죄가 많았고 타락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지옥으로 갈 것이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목사는 전에도 이런 설교를 했지만 그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아무도 자기 자신이 길 잃은 영혼이며 지옥을 향해 걷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교인들은 관속에 누워 있는 사람만을 위해서 눈물을 흘렸다. 설교를 마친 목사는 “자, 이제 시체의 얼굴을 볼 시간(Viewing time)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관을 덮고 있는 꽃들을 한쪽으로 치웠고, 두 집사가 관 뚜껑 여는 것을 도왔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차례차례 관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관속을 들여다보는 순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 속에는 아무도 누어있지 않았다. 대신 관 바닥 전면에 부착돼 있는 큰 거울을 통해 사람들은 그 속에서 자기의 얼굴을 발견했던 것이다. 목사는 ‘인간은 출생시부터 죄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비록 중생한 성도라 할지라도 늘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죄악에 물들기 쉽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 그것만이 하나님 앞에서 책망 받지 않을 수 있는 유일책’임을 가르치기 위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장례식” 이벤트를 시도했던 것이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As it is appointed for men to die once, but after this comes the judgment; 히 9: 27)고 했다. 그리고 그 심판 후에 있을 죽음 건너편의 사후세계인 천국과 지옥을 천 번 이상 기록했다. 하나님의 심판은 나와 당신의 화려한 앞모습만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숨겨져 나타나지 않은 초라한 뒷모습까지를 심판한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나타난 우리의 말과 행위뿐 아니라 평생에 단한 번도 누구에게 말하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숨겨진 생각과 마음에 품었던 생각까지 심판하신다. 그래서 심판의 그날은 천사들이 기록한 우리 일평생의 생활기록표가 밝혀지는 날이고 나와 당신의 뒷모습이 모두 밝혀지는 날이다.  

앞모습은 밤낮으로 관리하면서 뒷모습은 무질서하게 처박아둔 옷장 안의 물건처럼 내버려 두지 말자. 뒷모습을 잘 관리하는 성도가 진짜 천국성도이다. 뒷모습이 깨끗한 사람이 진짜 정직한 사람이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정말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 성령 충만한 성도라면 날마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여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성도가 돼야 한다. 그 길만이 앞모습과 뒷모습이 부끄럼 없는 하나님의 자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하게 받는 성도들이 되게 한다(벧후 1: 4-11) 뒷모습을 잘 관리하려면 끊임없이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여 읽고 지키며, 기도에 힘써야 하며, 찬양으로 충만한 삶과 감사로 넘치는 삶이 돼야 한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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