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는 목회자로써 목회자로 인정할 수 있는 가장 권위 있는 목사의 특권이다. 나는 이 특권을 목사 안수를 받고 지금까지 거의 쉴 사이 없이 설교를 해 왔다. 새벽기도회 설교, 수요기도회 설교, 금요철야 설교, 심방 설교, 그리고 주일설교... 숫자상으로 보면 엄청난 설교를 해 온 것이 어찌 나뿐이겠는가
이렇게 오랜 세월 설교를 해 오면서 때때로 성도들의 반응을 엿볼 때가 있다. 오늘 목사님 설교에 정말 은혜 받았습니다. 라는 한마디가 때로는 사기가 충천할 때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성도들이 설교에 대해서 시큰둥할 때면 괜시리 어깨에 힘이 쭉 빠진다는 것을 가끔씩 느끼곤 한다. 물론 성도들의 반응 때문에 설교를 잘했다 못했다 평가하기에는 좀 유치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내가 아직 덜 성숙해서인지 성도들의 반응에 꽤 예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부터 교회에 성도들이 떨어져 나가고 교회에 어려움이 오고 힘겨운 목회를 할 때부터 나에게는 설교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렸다. 그 이유는 아무리 명설교를 해도 성도들의 반응은 전무했고 오히려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가는 문제가 생기다 보니 그 모든 책임이 나의 은혜롭지 못한 설교에 있다고 여겨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 설교를 못하는 목사로 자화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떤 모임이나 노회 또는 타교회 설교 초청을 받아도 웬만하면 설교에 응하지 않는다. 심지어 방송 설교를 무료로 내 보내겠다는 제의가 와도 거의 거절하는 게 나의 일관된 태도이다. 그런데 나의 자신감 없는 설교에 전혀 다른 반응을 하는 분들이 있다. 어쩌다 나의 설교를 듣고는 이런 명설교자가 있느냐고 칭찬은 물론이고 어떤 분은 숨어 있는 진주라고까지 극찬을 한다. 참 딜레마이다. 과연 나는 어떤 설교자인가, 고민이 많다. 왜 같은 설교인데 우리 성도들은 은혜를 못 받고 교회를 떠나가고, 똑같은 설교인데도 다른 교회에서 하면 성도들이 은혜가 철철 넘치는가, 그 고민이 해결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이유가 이렇다. 교회가 작다 보니 성도들이 목사의 생활을 훤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가족 같은 성도들에게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목회자로써의 권위 있는 설교자가 아니라 그냥 친구 같은 목사, 형님 동생 같은 그저 평범한 보통사람인 목사이다, 더욱이 목사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성도들에게는 목사의 설교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모습과 너무나 대조가 된다. 즉 허덕이고 사는 모습이 설교와 부합되지 못하다는 것을 성도들은 너무나 잘 안다. 그러다 보니 권위가 있는 목사가 아니라 성도들이 불쌍히 여겨줘야 할 목사가 된 것이다.
큰 교회 목사님들에게는 성도들이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한다. 만나기도 힘들다. 높은 강대상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과히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들린다, 큰 교회이기에 그 목사님은 당연히 성도들이 타지 못하는 명품 차를 타도 권위 있게 보인다. 반면 작은 교회 목사가 명품 차를 타면 비웃고 교만하다고 한다, 권위가 상실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작은 교회 목사는 설교에 권위가 안 나타나는 것 같다.
과연 이런 권위가 올바른 것일까, 박사 학위가 있고, 명문 미국신학교를 졸업했고, 책을 몇 권을 썼고 무슨 대학 교수이기에 큰 교회에서는 너도나도 이런 목사를 청빙 한다. 이런 세상적 권위가 뒷받침 되어야 권위 있는 목사이고, 늦게 소명 받아 겨우 신학을 졸업했고, 교회를 개척해서 어렵게 목회하는 목사는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권위 없는 목사로 낙인 찍어버린 시대,
진정한 하나님의 소리를 외쳐도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목사 앞에 가짜 간판을 걸어 놓고 명문 신학 교수, 박사, 어느 대형교회 목사라고 붙여 놓고 외치면 그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로 듣는 이 외곡 된 가짜 권위에 성도들이 물밀 듯이 몰려다닌다.
그래서 이제는 목사들이 초월적 권위를 가지려고 한다. 병을 고치고, 예언을 하고, 성도들을 쓰러뜨리는 권위가 있어야 설교도 먹혀(?)든다고 한다. 도대체 하나님 말씀을 순수한 말씀으로 받지 못하고 뒷배경에 어떤 권위를 걸어 놓아야 권위 있는 말씀이 된다고 하니, 아직도 예수님 시대처럼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어야 하는 시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시대인가 보다.
나는 그래도 못하는 설교, 권위가 상실된 설교를 이번 주일에도 했다. 여전히 은혜 받을 자는 은혜를 받고 못 받는 자들은 여전히 못 받는다. 은혜는 내가 끼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하신다, 나는 뒷배경에 주인이신 하나님 빽(?)믿고 오늘도 듣던지 말든지 설교한다. 그 설교를 듣는 성도가 있다는 것만도 감사하면서. 열매는 주님께서 거두시리라.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마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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