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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길 사이에서

01/02/18       이상명 목사

두 길 사이에서


중국어 성경은 ‘말씀’을 ‘도()’로 번역한다. 요한복음 1 1절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를 “우주가 창조되기 이전에 도가 이미 있었다(宇宙被造以前, 道已經存在)”로,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는 “도가 상제와 함께 있었다(道與上帝同在)”로 해석하고,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를 “도가 곧 상제다(道是上帝)”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1 14절의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도 “도가 사람이 되었다(道成爲人)”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어 성경이 로고스를 번역하기 위해 노자의 《도덕경》과 공자의 《논어》에서 가져온 ‘도’ 개념은 요한이 말한 로고스와는 차이가 있다. 요한의 로고스와는 달리 그들이 말한 ‘하늘의 도’는 인격적인 실체를 결여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노자와 공자 모두 도의 실천을 소중히 하되 그 기준이 각각 달랐다는 점이다. 노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고, 공자는 군자다운 사회-정치적 이상으로서의 도를 천명하고 있다.

하늘의 도를 이 땅에 몸소 보여 주기 위해 우리와 같이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 그분이 예수님이다. 육신을 입으신 말씀이고 인격적 실체로서의 도다. 그 도(), 즉 로고스는 예수라는 몸을 매개로 하여 이 땅에서 열병 앓는 시몬의 장모를 손잡아 일으키고, 한센병 환자의 환부에 손을 대고, 앞 못 보는 사람의 눈을 어루만져 주셨다. 로고스는 우리와 오감을 통해 만나기 위해 육신을 입어야 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는 우리에게 하늘의 길과 이치를 보여 주시기 위해 직접 길이 되셨다.

신약성서는 그 오감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그분의 길을 따라 살라고 했다. 그러나 작금의 기독교는 육신 안에 깃든 예수님의 정신보다 그분의 육신을 우상화하여 오감에 근거한 감각적인 종교로 전락해 버렸다. 예수님의 정신을 온몸으로 실천하려는 결기와 치열함은 세속과 연동하는 감각적 세계와 박제화된 신학적 이론에 묻혀 버렸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독교는 그 이전 어느 때보다도 쇠락의 길로 내달리고 있는 듯 안팎으로 크고 작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 도전과 쇠락의 근본적 이유는 예수의 그 길에서 이탈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세속의 길을 벗어나 계셨던 예수의 길을 버리고, 현대 교회는 예수님이 벗어나 있던 그 세속의 길로 되돌아가 버렸다. 예수의 길을 따라 나섰던 제자들과 초기 교회 교인들의 결기와 열정을 잃어버렸다. 예수님이 가르치고 몸소 되신 길은 오감 너머에 있다. 오감은 단지 아둔한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기 위한 매체일 뿐이다. 오감을 매개로 하는 신앙은 자칫 육욕적인 신앙으로 기울기 쉽다. 그것은 신약성서의 저자들이 질타한 표적을 구하는 신앙이다( 12:39; 16:4; 11:29; 4:48; 6:26).

그 길의 종교, 기독교는 역사 속에서 두 가지 길을 놓고 희망과 좌절을 거듭해 왔다. 그 두 가지 길은 진짜 예수의 길과 배도(背道), 즉 예수의 길을 등지고 가는 다른 길이다. 마가는 갈릴리에서 출발하여 예루살렘에서 그 절정에 달하는 예수의 길을 지리적 공간의 이동을 따라 보여주려 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1:1-3).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 서두부터 길 이야기로 시작하여 복음서 곳곳에서 독자/청중들이 그 ‘길’을 잊지 않도록 “노중(路中)에서”(8:27; 9:33),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10:32)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언급한다. 그는 ‘길’ 이야기를 통해 갈릴리에서 출발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공간적 이동의 길을 전하면서 그가 걸어가야 할 십자가 고난의 길과 그 뒤를 따라 제자로서 가야 할 제자도를 전하려 한다. 세례자 요한에 의해 예비된 그 길은 팔레스타인의 지리적 영역 안에 갇힌 길이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에 예수의 제자라면 필히 가야 하는 하늘의 길(天道)이다. 예수님의 길을 이어 가는 그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많은 이들이 찾는 넓은 길이 아닌 좁고 협착한 길이다( 7:13-14). 예수의 길에서 떠난 제자는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없듯이, 그 길에서 떠난 기독교는 더는 예수의 종교가 아니다. 아니, 예수가 길인 종교가 아니다. 다만 세인의 길에서 예수의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이든지 예수와 십자가의 아이콘(icon)을 판매하는 상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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