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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01/30/18       이상명 목사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빛이 있으라”( 1:3)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 우주에 생명을 부여하는 태고적 빛을 생성시켰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이 우주 만상을 생성시킨 소리-사건이다. 그 소리는 어느 거리 한 모퉁이를 한 바퀴 휘감고 돌다 맥없이 사라지는 그런 바람소리와 같은 것이 아니다. 그 소리는 허공을 가르고 지상으로 떨어지는 유성이 일순간 불꽃을 뿜어내다가 이내 꺼지면서 발하는 그런 찰나적 소리도 아니다. 그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공간에는 어김없이 창조와 생명현상을 일으키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은 다양한 이들에게 영감으로 전달되었다. 그 음성에 그들이 삶으로 반응하여 기록된 것이 성경이다. 따라서 신적 소리의 울림과 그 울림에 대한 역사 속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을 문자화한 것이 성경이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동판 인쇄술을 발명한 15세기가 도래하기 전까지 인류 역사의 긴 시간을 인류는 구화(口話), 즉 말을 매체로 사용하여 음성화하고 행위화하는 예술로 소통했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성경의 가장 오래된 전승 대부분은 기록이 아닌 구전으로 전달되었다. 성경이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기록되기 시작할 때조차도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것을 소유하거나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유럽의 동판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 약 15백 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 메시지를 생생한 구화나 청각행위로써 경험했을 뿐이었다. 따라서 인류가 성경 메시지를 활자화한 책으로 읽게 된 것은 500년에 불과하다. 구두 전승을 필사(筆寫)하던 시대에도 소수의 엘리트 특권계층만이 읽고 쓰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망각한 채 성경 시대 초기부터 그들이 성경 자료를 눈으로 읽었다고 착각하곤 한다. 활자화한 정보가 만연되어 있고 활자 문화가 우리 생활에 깊이 정착된 나머지, 현대인들은 성경이 기록되기 전 그것의 상당 부분이 구화로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심지어 우리는 현시대에 당연히 읽고 쓰는 능력이 성경 시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없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할 때가 있다. 학자들은 고대 그레코-로마 시대에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10퍼센트 정도로 추산한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지중해에 거주하는 9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은 청각을 이용해 모든 것을 경험하고 배우는 문맹인 농부거나 도시 거주자들이었다.

구전 문화에서 활자 문화로의 전환은 인류 역사에 아날로그 문화와 디지털 문화의 차이보다 더 큰 변화를 가져왔다. 1세기 내레이터의 성대 떨림을 통해 성경 이야기를 전달하던 구전 문화는 15세기 이후부터 지속된 활자 문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내레이터가 낭송하고 모든 회중이 함께 듣는 구화와 청각 퍼포먼스를 통해 전달된 성경 이야기는 우리가 현재 눈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글을 깨치지 못한 민중들에게 성경 이야기는 문자가 아닌 내레이터의 목소리를 타고 그들의 귀에 들려진 한편의 생생한 이야기요,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사건이었다. 적어도 성경 속 인물들이 활동하던 시대는 구전 문화가 편만하여 성경 이야기가 구화로 유포되어 가면서 교회와 복음의 지경은 점점 더 확장되었다. 1세기 구전 문화에서 활자화한 문서가 아닌 내레이터가 전하는 성경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그리고 내레이터의 신체 언어를 통해 회중들의 얼(정신)과 영에 공명되는 사건, 즉 구원 사건이 되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10:17)고 말하지 않았던가? 성경 저자들은 구전 문화 속에서 ‘들음’을 통한 구원 사건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도록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하나님이 행하신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살아 있는 이야기로 만든 저자들의 행적이 위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 역사를 소홀히 하거나 과거와의 대화가 단절되면 현재의 나를 비출 거울을 잃게 되는 셈이다. 역사를 잊은 교회는 밝은 미래를 잃게 될 것이다. 성경 이야기는 21세기 역사 무대에서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다. 나아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과 같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숨결과 손길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할 때 잘못된 인간 역사는 되풀이된다. 당대 소외 계층에 대한 예수님의 사역, 성령 강림으로 촉발된 교회의 출범, 그리고 로마까지 퍼진 복음 확장이 펼쳐지는 그 생생한 모습이 이제는 아련한 전설이 된 듯하다. 그러한 활기찬 영적 생명 소리가 교회현장에서 그립다. 태아가 자궁 속에서 탯줄을 통해 어머니의 심장박동 소리를 듣듯, 성경 저자들은 우리에게 당대의 생생한 영적 박동 소리를 전한다. 문자화한 하나님 말씀을 통해 2천 년 동안 교회 역사 내내 초대 기독교회의 펄떡펄떡 뛰는 그 박동 소리가 지금까지 울려 퍼지고 있다. 그 소리의 울림이 클 때, 영적 생동감을 잃어가는 현대 교회의 회복 또한 이루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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