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유대인의 자녀 교육방법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영어의 'Jewish Mother(유대인 어머니)'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유대인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위한 최초의 교육자이며, 자녀들을 가르치는 의무를 엄마인 여성들이 지닌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자녀들에게 배움의 필요성을 지겹도록 강조하는 극성스런 어머니'란 뜻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유대인 어머니들은 ‘남들보다 뛰어나라, 남들을 앞질러라' 하고 어린이들을 달달 들볶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어머니들은 어떻습니까? 이웃집의 누가 피아노를 배운다면 내 아이도 가르쳐야 직성이 풀립니다. 또한 이웃집 아이가 태권도를 배운다면 적성이 없는데도 보냅니다. 아이들을 남들이 보기에 끝내주는 아이로 키우려고 합니다. 어쩌면 아이들이 피아노 앞에 앉고, 태권도 도장에 있기만 하면 내 아이가 피아니스트가 되고 건강해지고 용맹해지라는 생각을 갖는 것 같습니다.
신라시대에 화백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이 제도는 나라의 중대사를 의논하던 만장일치의 귀족회의로 훌륭한 제도이기는 했지만 이 제도로 인한 귀족들의 이익에 반하는 제도 개혁을 할 수 없는 폐해가 있었습니다. 단 한 사람의 이견도 없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자칫 중대한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국 어머니들은 자녀들이 유치원에 들어갈 때부터 어느 대학에 가야만 된다는 식의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부모의 계획과 시간표에 아이들을 집어 넣고 획일적인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얼마 전 TV에 롱아일랜드에 있는 학원 광고를 보았습니다. 광고 내용 가운데 아이들이 낙제를 하는 경우 우리 학원에 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신문에는 명문고등학교나 명문대학을 보내기 위해서는 우리 학원으로 보내야 한다는 광고들이 즐비합니다. 낙제를 면하기 위해 학원을 보내는 미국문화와 A-를 맞아도 A+를 맞기 위해 학원을 다녀야 하는 한국 아이들을 비교해 보면 어떤 아이가 행복하고 누가 더 창의성이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학교 성적으로 인간의 서열이 정해지고, 명문학교를 나와야만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의 교육열 때문에 우리의 자녀들은 신음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1985년부터 2007년 까지 하버드대학 등 명문대학에 들어간 한국 학생 1,400명을 분석한 김승기의 논문에 의하면 44프로의 학생이 중간에 학업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비율은 같은 기간 유대인 12.5프로에 비하면 월등하게 높은 수치인 것입니다.
유대인인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세계적인 물리학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네 살이 되도록 말을 못하자, 아인슈타인의 부모는 그를 '저능아'라고 체념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무엇을 빨리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고 더구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아서,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이 아이에게서는 어떤 지적 열매도 기대할 수 없다.'는 신상 기록을 남겼습니다. 또한 그가 학교에 계속해서 다닐 경우, 다른 학생에게 방해가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더 이상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할 만큼 아인슈타인은 저능아였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담임선생으로부터 저능아 취급을 받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 다섯 살 때까지 유클리드, 뉴튼, 스피노자, 그리고 데카르트를 독파했다고 합니다. 후일 그는 '나는 강한 지식욕을 품고 있었다'고 지난 일의 일들을 술회했으리 만큼 속마음이 꽉 차 있었지만, 그 당시 그의 심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만약 그가 다른 어린이들과 똑같이 되기를 강요했더라면 그의 재능을 빛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녀들의 개성을 존중해 주고 그 개성이 장점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이지 않을까요? 부모로서 만일 내 아이가 학습 능력이 다른 아이들 보다 떨어진다면 불안해하지 않고 기다려 줄 수 있을까요? 만일 내 아이가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을까요? 내 아이를 1프로 만이라도 다른 아이와 다름을 인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제는 성적이라는 잣대로 아이들의 서열을 세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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