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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

03/01/18       장인식목사

별이 빛나는 밤


오늘은 일찍 오후 3시에 나왔는데도 내 순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교대 시간인 다섯 시가 한 참 넘어갔는데도 말이다.  오늘 즐겁게 나왔다. 그런데 우울하게 변했다. 그것은 차 배당 때문에 아니라, 기름때 찌들은 사무실 구석에 놓인 촛불과 시들은 꽃 무더기들 때문이었다. 몇 일전 밤에 동료택시 운전사 한 명이 강도의 총에 맞아 죽었다. 뉴스에 의하면 강도가 목숨을 빼앗고 얻은 돈은 몇 푼 되지 않았을 것이라 했다. 그 꽃들은 죽은 자를 애도하는 의식이자, 너희도 저렇게 죽을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했다. ‘잡았냐?’고 묻자 방탄유리 너머에 있는 알베르또가 팔을 벌려 손바닥을 하늘로 펴며 어깨를 들썩여 보인다. 오늘 밤엔 누가 당할지 아무도 모르는 비정한 거리에서 택시 드라이버들은 아메리칸 룰렛 게임을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유명한 뉴욕의 상징인 옐로우 택시 드라이버이다. 택시 드라이버 하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가 떠오른다.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하고 죠디 포스터가 조연한 76년 영화 ‘택시 드라이버’는 외로운 베트남 참전용사가 제대 후, 환락과 욕망, 욕정과 마약, 폭력과 살인 그리고 부조리와 정치인의 거짓말이 난무하는 도시에서 사회 악을 몰아내고 정의를 세우려다 서서히 몰락해가는 한 뉴욕의 택시 드라이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택시 운전사 로버트 드니로가 거울 앞에 서서 권총을 빼 들고 살인을 연습하던 대사가 생각난다. ‘아 유 토킹 투 미? Are you talking to me?’ 내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느냐고 방탄유리 앞으로 가서 말하니 내 입 모양을 보고 알베르토도 입 모양으로 말한다. ‘아 유 토킹 투 미? Are you talking to me?’ 그래 너한테 말한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냐? 그 말 대신 시계를 가르치니 알베르또는 팔을 벌려 손바닥을 하늘로 펴며 어깨를 들썩여 보인다. 어두운 세계를 배경으로 시작되는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어둡게 시작되는 영화는 끝이 비극일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우린 서로 끝을 모르는 미래를 시작하는 순간일 뿐이다.   

하루 종일 저 짓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 두꺼운 방탄유리로 칸막이가 되어 있는 사무실과 대기실의 관계를 이어 주는 것은 오직 마임 같은 손짓 밖에 없다. 돈과 열쇠를 주고 받을 때만 권총이 들어 올 수 없게 ㄴ자로 구부러진 손 바닥만한 미닫이 문이 열린다. 하긴 칸막이가 없다 할 지라도 우린 서로 대화를 할 만큼의 영어 실력이 없기도 했다.

나는 지금 기름냄새가 목을 따갑게 하는 뉴욕 옐로우캡 회사 사무실에서 배당될 차를 기다리고 있다. 나보다 한 시간쯤 늦게 온 한 사람과 같이 등받이도 없는 긴 나무 의자에 앉아 시커먼 때로 찌들은 벽을 등받이 삼아 초조히 앉아 있다. 재수가 좋을 때는 오후 5시 정각에 반납된 차를 곧장 몰고 나갈 수 있다. 특히 그날 드라이버가 차 보다 모자라면 말이다. 그러나 드라이버가 많으면 순서대로 차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제일 먼저 차를 배당 받는 영 순위는 날 마다 일정하게 한 대의 차를 두 사람이 리스해서 교대로 일하는 고정드라이버들이다. 그러나 시간이 있으면 오고 시간이 없으면 안 오는 뜨내기 운전자에겐 차가 있으면 주고 차가 없으면 주지 않는, 하루살이가 되는 것이다.

이 회사는 택시를 리스해 주는 곳이다. 오후 5에서 새벽 5시까지 12시간 2 교대로 차를 빌려주는 곳이다. 나는 밤에 일한다. 차를 반납할 땐 개스를 가득 채우고 사납금 $120을 낸다. 그 나머지가 내 돈이 되는 것이다. 옐로우캡 드라이버 자격증인 핵, Hack, 라이선스와 시간만 있으면 누구나 와서 차를 빌려 영업을 할 수 있다. 영어 실력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하루살이 드라이버이다. 일전에는 2시부터 와서 세시간을 기다리다 배당 차가 없어서 집으로 걸어간 적이 있다. 빈손으로 되돌아간 한 시간의 길은 멀고도 길었다. 올 때는 버스를 타고 왔지만 갈 때는 돈이 없어 걸어간 것이다. 희망이 동행일 땐 그 거리가 짧고 몸이 가벼웠는데, 낙망이 동행 때는 그 거리가 멀고 몸은 무거웠다.   

5시가 되어 리턴할 차들이 다 들어 왔다. 어깨가 늘어져 돌아가려 하는데 알베르토가 차 두 대를 고치고 있는데 끝나는 대로 나가겠냐고 물어 왔다. 우리 두 사람은 밝게 웃으며 오케이를 했다.  사무실 옆 공간은 정비소이다. 그곳에서 고치고 있다. 벽으로 난 샛 문을 들랑거리며 고치는 상황을 보고 있었다.

한참을 지나 고치는 친구에게 가서 언제나 되겠냐고 물었더니 쳐다 보고 웃기만 하고 대답이 없다. 그 모습을 보고 알베르토가 손짓한다.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에 말 못하는 벙어리라고. 왜소한 중 늙은 히스패닉 같은데 몹시 순하고 충성스러워 보였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기름자국이 위장크림처럼 이곳 저곳 얼룩져 있었다. 무료한 기다림 속에서 단지 이야기 할 사람이라고는 말 없이 초조하게 내 옆에 앉아있는 아프리카인 한 명뿐이었다.

헬로 하고 말을 걸었다. 토막 영어로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뉴욕택시 드라이버들이 영어를 하지 못하는 것은 유명하다. 심야 토크쇼, Late night with David Letterman, 쇼를 진행하는 데이빗 레터맨이 한 번은 자기가 너무나 복 받은 날이라고 소개를 했다. 그 이유는 오늘 자기가 타고 온 택시 운전사가 영어를 할 줄 알더라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에서 존경 받는 직업조사에서 분야별로 보면, 1위는 의사, 약사와 간호사, 2위 농부, 3위 과학자, 4위 수의사, 5위 치과의사 순이고 택시 운전사는 제일 꼴찌인 100위 였다. 같이 기다리던 사람과 통성명을 하다 보니 수단 사람으로 이름은 챠드였다. 영어가 짧아 수단을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코리안 이라고 하니 오! 하며 그는 강남스타일 춤 흉내를 내게 보여주었다.

한참을 같이 웃으며 챠드가 춤 흉내를 내니 알베르또도 가세를 한다. 한물간 노래지만 그 여파는 오래갔다. 토막 영어로 소통을 하는데, 요약하면, 수단에서 버스 운전을 하다가 내전을 피해 혼자 미국으로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들어와 노동허가를 받아 일은 하는데 아내와 딸들이 걱정이라는 것이다. 특히 15살 먹은 작은 딸이 행방불명이 되어서 걱정이 태산이란다. 이곳에서 목숨을 담보로 하루하루 벌어 아내한테 보내 준다고 했다. 반군들에게 잡혀 등과 배에 크게 다친 흉터를 보여 줬는데 너무나 흉측했다. 히끗한 뱀 여러 마리가 구불거리며 들러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미국은 천국이라고 했다. 내가 꽃 무더기를 가르치며 미국에서도 저렇게 죽을 수 있을 수도 있다고 하자 잠시 생각하더니 그도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 일전 강도에 의해 목숨이 끊긴 택시 드라이버는 이라크 사람이었다. 전쟁을 피해 평화의 나라로 왔지만 강도의 손에 목숨이 날아간 것이다. 늑대 피하다 호랑이 만나 죽임 당한 것이 이런 경우일까.  어디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산다는 것이 어찌 이리 힘들까.

나는 원래 화가다.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았다. 나는 반 고흐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별이 빛나는 밤’과 ‘해바라기’ ‘까마귀가 나는 밀밭’ 사진을 보고 그 강렬한 색감과 표현에 매료되어 화가가 될 것을 결심했다. 특히 ‘별이 빛나는 밤’은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 나는 그 그림을 따라 뉴욕으로 유학을 온 것이다. 미국에 도착한 그 이튿날 뉴욕현대미술관에 갔다. 그곳이 소장한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 원작을 보았다. 너무 황홀했다. 가까이 가서도 보고, 멀리 떨어져서도 보고, 중간쯤에 서서 보고,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고 하루 종일을 봤다. 그 이튿날 또 갔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갔다. 그 그림은 고흐가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난 후기의 그림이다. 그러나 착란으로 인하여 오히려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표현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착란이 오히려 원초적인 정신이고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우리가 착란 자들은 아닐까. 순수한 눈을 가진 인간만이 볼 수 있고, 순수한 눈을 가진 인간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그림이었다. 남들 눈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고흐는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고흐의 혜안, 역동적인 밤의 운동력, 탁월한 표현과 아름답고 황홀한 색감이 담겨있는 그 그림을 보고 나는 눈물을 쏱았다.

나는 그 영향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 눈을 가지고 싶었다. 그 색깔과 운동력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깊이 인상파에 경도한 나머지 나의 그림세계는 인상파의 아류를 넘지 못했다. 즉, 그 이상의 독창적 창작세계를 여는데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의 창의적인 그림세계를 열지 못한 나는 좌절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먹고 살기 위해 소호에서 인상파 모작을 그리는 회사에 취직을 했다. 한 마디로 이발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으로 얼마간 근근이 살 수 있었는데 그것마저도 중국에서 더 싼 노동력을 제공하자 회사가 그리로 옮겨갔고, 나는 길가에 버려지게 됐다. 그래서 나는 길에 굴러다니는 택시운전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둘이 대화도 몇 분 만에 끝이 났다. 무료한 시간을 좁은 사무실과 거라지를 오가며 보내다 출출하여 아내가 저녁으로 싸준 도시락을 꺼냈다. 대부분 골목에 차를 세워놓고 우유 통에 볼일을 보고 먹던 저녁밥이다. 하얀 쌀 밥 한쪽에 호일로 김치와 단무지, 오이 소박이가 포대기에 쌓인 예쁜 애기처럼 놓여 있었다. 밥은 계란부침으로 덮어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케찹으로 하트모양을 그려 놓았다. 아내의 향기가 올라오자 눈물이 밥 위에 떨어졌다.

나 하나 의지하여 미국으로 따라온 아내. 아내는 둘째를 가져 배가 제법 나왔다. 첫째는 세 살 아들 인데 무럭무럭 잘 큰다. 아내는 남의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 한다. 내가 새벽 5시에 퇴근해서 집에 돌아가면 아내는 6시에 출근을 한다. 아내가 오후 2시에 퇴근하면 나는 3시에 출근을 한다. 그렇게 첫째 아들을 돌아가면서 보는 것이다. 그러다 애가 아프거나 아내에게 일이 생기면 내가 돌봐야 했다. 그래서 나는 하루살이 운전자가 된 것이다.

아내는 그림을 볼 줄 모른다. 그러나 아내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좋아했다. 특히 유화를 그리는 모습을 좋아했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몰두하는 모습, 팔레트위에 여러 튜부의 물감을 짜서 오일과 섞어 새로운 색깔을 만들어내고, 새 하얀 캔버스에 붓이나 페인트 칼로 생명을 불어 넣는 나의 모습을 신기한 듯 지켜 보곤 했다. 물감이 마른 뒤엔, 나타난 질감을 경이로운 애기의 살을 만지듯 손끝으로 조심스레 어루 만지곤 했다. 그림 그리던 내 목을 살포시 껴안고 흐뭇해하던 그녀, 입김의 온기가 볼을 간지럽게 하던 그녀, 나의 간지러움을 즐거워하던 그녀. 요즘 내가 붓 드는 모습을 자주 보지 못하자 아내의 신명도 한 풀 꺽이는 듯하다. 그래도 아내는 내가 언젠가는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이라고 환한 얼굴에 앙징 맞은 입술을 내게 들이댄다.

요즘 세 살배기 아들이 모든 것을 다 부숴놓고 벽을 팔레트로 만들어 놓는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인가, 생각만 해도 코끝에 단내가 올라오고 뼛속의 시름이 사라진다. 이런 게 사는 재미일까. 이런 게 내가 지켜야 할 가정이라는 것일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랑스러운 아내와 사랑스런 아들.

초조히 기다려 밤 10시가 되어도 차는 고쳐지지 않았다. 검지 손가락을 들어올려 원 미닛이라고 한 것이 몇 번째인데, 부품이 없어서 구하러 가야 된다면 알베르토가 나갔다. 한 참 우여곡절끝에 11시가 넘어 차 한대를 정비소에서 끌고 나왔다. 끌끌 거리는 소리가 시원치 않으나 굴러가는 데는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나가면 돈 되는 시간은 다 지나가 버려 손님없는 길 만 맞이하게 된다. 이제 돈 벌수 있는 시간은 5시간여 밖엔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가고 오는 시간 빼면 4시간도 채 안 되는 것이다. 몇 명이나 태울 수 있을까? 알베르토가 대신 사납금 $20불만 내라고 한다. 파격이다.  

챠드를 위한 차는 언제 고쳐질 것이냐고 했더니 웃으며 하늘을 가르친다. 내일 아침에나 가능하다는 말인지, 아니면 오직 하나님만 알고 있다는 말인지. 챠드는 어차피 집에 가기는 다 틀렸다. 늦어서 모든 대중교통이 끊겼기 때문이다.

나는 고맙다고 하고 차를 몰고 나갔다. 늦게나마 얻은 차. 얼마나 좋은지 신나게 나왔다.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축복아닌가. 큰 길로 들어서 첫 번째 신호등에 섰다.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서 내 눈에 보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챠드였다. 아내는 아프고 딸은 행방불명이 된 챠드였다. 아마 아내가 아픈 것은 행방불명 된 어린 딸 때문일 것이다. 그 상황에서 온전한 어미가 어디 있단 말인가. 챠드가 나무의자에 앉아 밤을 새우기엔 너무나 큰 아픔을 지고 있었다. 차라리 차를 몰고 한참을 달리다 보면 그 시간이 빨리 가겠지.

나는 차를 돌렸다. 그리고 챠드에게 몰고 나가라고 주었다. 알베르토도 흐뭇하게 웃는다. 나는 집을 향해 걸었다. 마음이 가벼우니 걸음걸이도 가벼웠다. 밝은 가로등들이 넓고 쭉 뻗은 길 위에 서서 장군을 대하듯 나를 향해 사열하고 있었다. 그 위 하늘에선 수 없는 별들이 나와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별이 빛나는 밤을 보았다. ‘별이 빛나는 밤’ 고흐의 하늘은 신비한 기운이 회오리처럼 몰아 붙여 달빛과 별빛을 실어 나르고 있다. 그 빛들이 폭포수처럼 흘러 소용돌이 치는 신비의 기운과 함께 축복을 뿌리고 있다. 그 밤은 황홀한 색깔로 살아 움직인다. 불꽃 같은 사이프러스 나무는 높이 솟아 하늘을 경배하고, 사이프러스 나무 뒤편 첨탑을 높이 올린 교회는 하늘의 기운을 작은 동네에 나누어주고 있다. 그 아래 정적이 흐르는 아담한 작은 마을, 그리고 엎어 놓은 조가비 같은 작고 예쁜 지붕들, 지붕 아래 낮게 코를 고는 사람들, 엄마 품에 안겨 잠을 자는 애기들. 하늘에서 영롱한 별 빛과 함께 흐뭇한 축복이 내리는 밤. 내일을 위해 꿈을 꾸는 사람들.

내 걸음 앞에 그림 한 폭이 펼쳐졌다. ‘별이 빛나는 뉴욕의 밤’ 신비에 쌓여 고요속에 잠든 뉴욕의 밤. 그러나 역동적인 삶이 이어지는 밤. 아름답고 흐뭇한 별이 빛나는 뉴욕의 밤. 그 아래 사랑하는 내 아내와 내 아들이 잠 든 ‘별이 빛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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