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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나, 이렇게 살아났다.

03/19/18       주진경 목사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나, 이렇게 살아났다.


청소년기에 해방을 맞은 나는 곧이어 6.25동란을 겪으며 비전도 없고 야망도, 꿈도 없는 암울한 시대를 지내왔다. 그 이유는 가난과 사회의 무질서와 혼란, 부도덕, 폭력, 시기, 절도 등등의 넘실거리는 사회악과 부조리 때문만이 아니라 내 스스로 밝히 알 수 없는 인생의 고뇌와 번민 때문이었다.

이러한 나에게 어느 날 볼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예수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다. 황당한 이야기들이었다. 물위로 걷고 죽은 자를 살렸다는 이야기며 사법기관의 법관도 아닌, 한 평범한 사람이 간음죄를 지은 여자도 용서했다는 것이었다. 오병이어(五餠二魚)는 또 무엇인가?

굶주리고 헐벗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확 열리는 말이었다. 그러한 소문 중에 들려온 한 말씀은 이러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그 절망의 암울한 시대에 살면서 이 말을 듣고 오라고 하는 이에게 나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만은 꼭 가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말할 수 없이 비천하고 어리석고 추하기 이를 데 없는 몰골이었으나 그래도 예수께 나갔다. 예수님은 이러한 나를 따뜻한 가슴으로 맞아 주셨다. 하지만 도저히 이러한 모습으로는 그분께 가까이 다가 갈 수가 없어서 어쩔 줄 모르고 멀찍하게 그냥 예수님 앞에 서 있기만 하였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네 짐을 내려놓으라”고 하셨다. 나는 등에 짐을 지고 간 것 아니었기에 어떻게 해야 짐을 내려놓는 것인지 몰라서 여전히 그대로 예수님 앞에 서(立) 있기만 하였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그렇게 힘들게 서(立) 있지만 말고 가까이 와서 내 등에 엎여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염치불구하고 냄새 나고 누추한 나의 몸을 예수님의 등에 업혔다. 예수님의 등은 말할 수 없이 포근하고 편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제야 수없이 들어왔던 “예수를 믿어라”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달아 알게 되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나를 예수에게 맡기고 의지하는 것이고 등에 업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은행은 믿을 수 있는 좋은 기관이다. 그러나 그 좋은 믿을 수 있는 기관에 나의 돈을 갖다 맡기지 않으면 좋은 은행과 나와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것처럼 예수님은 메시아요 좋으신 분이지만 내가 내 인생을 예수님께 맡기지 않으면 예수님과 나와는 아무런 관계와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 나를 맡기고 그 등에 업힌 나는 이제 예수님이 어디로 가든지 예수님이 가시는 대로 등에 업힌 채 따라가기만 하였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어 어쩐지 불안한 느낌이 오기도 했으나 그토록 더러운 나를 업어주신 예수님께 도중에 내려달라고 할 수 없어서 그대로 업혀있기만 하였다. 따라가 보니 그 곳은 예수님을 잡아간 제사장 가야바의 뜰과 빌라도의 법정을 지나서 무시무시하고 으스스한 갈보리 산 위의 십자가 형장이었다. 나를 업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어서 양손과 양 발에 못이 박히시는 것이었다. 로마 병정들이 예수의 등에 업힌 죄인인 나를 찌르기 위해서 나를 업은 예수님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깊숙이 찔렀다.

나보다 먼저 창(槍)에 찔린 예수님의 몸에서는 죄 없는 깨끗한 피가 강물같이 흘러내렸다. 예수님의 몸에서 흐르는 강물 같은 피가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들을 씻어 내리는 것이었다.    예수님을 찌른 창(槍)이 그 등에 업힌 나의 몸까지도 깊숙이 찔러서 나의 몸에서도 피가 흘러 내렸다. 예수님의 몸에서는 깨끗하고 맑고 붉은 피가 흐르는데 내 몸에서는 검고 끈적끈적한 죄의 피가 흐르는 것이었다. 더럽고 끈적끈적한 나의 피가 예수님의 깨끗한 붉은 피에 한없이 씻겨 내려갔다. 내 몸에서 죄의 무거운 피가 다 씻겨내려 몸이 가벼워졌을 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일어나시고 다시 살아나셨다. 죄의 피가 다 씻겨나 가벼워진 나도 일어나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또 살았도다.” 예수님의 붉은 피가 죄에 찌든 나를 정케 하시고 죄로 죽었던 나를 살아나게 하셨다. 예수님의 죽음은 어떠한 죽음이었는가? 선악과의 금령을 어긴 불순종과 불신앙의 죄를 지어 죽어야 할 죄인의 죽음을 대신한 죽음이었다. 매년 다가오는 고난주간은 겨울이 녹고 따뜻한 봄과 함께 다가온다. 생동하는 봄의 환희와 함께 예수님 고난 당하신 비탄과 회개의 상심의 정서가 함께 어우러져 다가온다. 매우 감상적인 파토스에 젖어 들기 쉽다. 그러나 이 계절에 우리는 “나” 까닭에 십자가위에서 고난 당하시고 피 흘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발견하고 나는 지금 그 고난의 길 (VIA DOLOROSA),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발견하는 계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진경 목사(뉴저지 은목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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