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 June 20, 2024   
무엇을 회개했나

04/09/18       김금옥 목사

무엇을 회개했나


일주일의 고난주간을 마지막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울 사순절의 절기가 끝났다. 크리스천이라면 이 기간은 근신하고 금식하며 음주가무와 부적절한 언행을 절제하며 자신을 뒤돌아 생각하고 잘못된 점이 있었는지 찾아 회개하는 때다.

필자는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보낸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생각했다. 그날 성 목요일 밤 예수님은 제자들과 다락방에서 마지막 만찬을 들고 첫 성찬을 베풀었다. 주님은 그의 백성들의 죄의 속죄를 위하여 그가 흘리는 피의 상징인 포도주와 그의 백성을 위하여 쪼개는 몸으로서의 떡의 의미를 제자들에게 말해주었다. 이번 고난주간은 조용히 지냈다. 해마다 준비했던 유월절 세다 음식도 준비하지 않았다. 이제는 과거가 된 노예생활의 역사는 오늘날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워진 삶이 사람들의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어 노예생활 시절의 고난 같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이번 성목요일은 조용했는데 외롭지가 않았다. 이날 밤 주님께서는 식사 후 산에 기도하러 제자들과 같이 갔다가 배반한 제자 가룟유다와 군인들에게 잡히셨다.

주 앞에 앉았다. 무엇을 특히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앉아 있었는데 조용하고 평안한 나를 느꼈다. 그러면서 주님을 생각할 수 있었는데 고통 하는 주의 모습이 떠올랐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기도할 때 이마에서 피 같은 땀방울을 흘렸을까 생각했다. 그가 져야 할 짐이 무겁고 괴로웠기에 피 같은 땀을 흘렸을까 생각했다. 온 몸과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고 기도했기에 그렇게 피가 맺힌 기도를 했을 것이다. 우리의 괴로움은 자신이 진 죄가 무엇인지 알기에 더 하다. 죄에 대한 깨달음과 괴로움은 무엇인지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고 노루 꿩, 새들을 앞에 놓고 설교했다는 성프란시스의 말에서 찾는다.

기도와 순종의 그는 “금식을 할 때 남을 사냥하는 말을 금식하라”고 말했다. 우리가 한 말로 인해 상대에게 상처가 될 말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금식을 하면서 지워야 한다는 뜻이다.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말은 오히려 상처를 주어 피를 흘리게 하므로 그러한 말은 동물을 사냥하듯 위험하고 해로우니 오히려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인데 최소한도 상처를 입히지는 않는다.  

어떤 내성적인 분이 예쁜 머플러가 있어서 매고 나왔는데 그것을 보고 한 분이 말했다. “아 그것 어디서 선물 받은 것이군” 하고 별 것이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면 상대에 대한 실례이고 그 말을 들은 분은 화나고 수치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대신 “그 머플러 예쁘네요. 잘 어울려요” 라고 칭찬했다면 그분은 좋아하고 기분이 좋아서 머플러에 대한 즐거운 추억과 더불어 대화는 계속됐을 것이다. 예의 바르지 않은 말은 상처와 부끄러움을 갖게 해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도 그 머플러는 서랍 깊은 곳에 들어가 다시 햇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한마디 대화에서도 사람들이 생각 없이 말해서 상처를 준다. 상대의 불편한 표정을 보고 아차 했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생각 없이 내뱉는 한마디 말이 듣는 분의 기분을 좌우한다. 칭찬의 말은 기쁘게 하고 용기를 주고 자존심을 높이지만 반대는 상처를 주고 자신이 한 말에 의심을 품고 말할 용기나 자신감을 잃게 만든다. 말을 어떻게 하는 가에 따라서 의도와 다르게 이해되면 생각지도 않았던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사순절을 지내며 바른 대화에 대하여 생각했다. 내가 한 말이 실수를 해서 듣는 분을 실망시키고 얼굴을 붉히게 하고 수치감을 갖게 한 말이 있었는지 생각해볼 것이다. 성프란시스가 “남을 사냥하는 말을 금식하고 친절한 말을 하자” Fast from hunting words and say kinds words. 라고 한 말을 생각했다. 프란시스는 또 이런 말도 했다. “말을 금식하고 들을 수 있도록 하십시오”. Fast from words and be silent so you can listen. 프란시스 성자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살아가는 동안 우리들은 우리의 입을 닫아야 할 많은 기회가 있다. 말이 안 되는 말 또는 해서는 안될 말들이 입을 통해서 상대방에게 말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행동이나 언어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말을 하고 행동을 할 때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내용이나 단어를 사용함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분들이다.

말의 실수가 주는 파장이 크다.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하루에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말을 주고받고, 상거래를 하고, 정치담화를 하고, 강단에서 가르친다. 부부들이나 부모들은 많은 대화를 나눈다. 자녀들은 식탁에서 그날의 일을 부모에게 말하고 그들의 자녀가 어떻게 사는지 안다. 성 프란시스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많이 하라고 했다. 사람들은 필요 없는 말을 많이 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반면 들을 수 있는 참을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데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내용만 들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듣는 것을 더 잘하도록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듣는 것을 잘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잘 들으면 상대의 한마디 단어에서도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안다. 예수님의 제자들, 주님을 따르던 자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을 알아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사마리아 여인이 남들이 나오지 않는 뜨거운 대낮에 우물가에 나왔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그녀도 처음에는 주님의 말을 못 알아들었지만 그가 메시아인지 안 다음에는 마을로 뛰어갔다. 사순절의 마지막 절기를 지나면서 그가 생전 우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다시 생각해보는 주간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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