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교회에 갈 시간이 되어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모국방문이 예정되어 있어서 날씨를 보기 위해서 창문을 열었다. 밤사이에 힌 눈이 내려있었고 상금도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들창문 가까이 드리워 온, 막 피어나려고 볼록하게 몽우라진 목련가지가 쌓인 하얀 눈을 버티고 있느라고 힘 겨워하고 있었다. 그 위에 차가운 눈이 그렇게 내렸으니 목련 꽃은 언제 피어날까?!
항공기 운항이 취소되리라 예상되었으나 정오가 지나자 땅에는 햇볕아 쏟아지고 눈은 멎었다. 순조로이 인천공항에 내렸다. 70을 넘고 80을 전후한 세 동생들, 가족들과 함께 남양주에 있는 부모님의 납골당을 찾아가 참묘(參墓)하였다. 조카 목사가 준비해온 추모예배 순서지 뒷면에 동생 장로가 쓴 시(詩)가 계재되어 있었다.
“어머니 생각”
목련이 지고 잎이 푸르를 때
우리 어머님은 목련 꽃 지듯 하늘로 가셨다.
어머님이 하늘로 가시고 안 계시는 5월이 오면
어머님 생각에 가슴이 저며 온다.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 드릴 것을...
쪽 복음 한 권 손에 감추어 들고
교회로 가시던 우리 어머님
목련이 지고 나면
어머님 그리운 마음으로
어머님 가신 나라 바라본다.
이렇게 가신 어머님의 임종을 장남인 나는 지켜보지 못했다. 내가 군대생활을 하던 당시는 부산서 서울까지 기차로 하루 밤을 꼬박 달려야 하던 때였고, 우편이나 전보도 군사우편번호(軍郵)로 통하던 때였다. 아무튼 나는 지금 까지도 부모님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죄책감으로 괴롭다.
약 보름 후에 모국 방문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쌓인 하얀 눈에 눌려 피어나지 못하고 있던 목련이 활짝 피어 창문 가까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와 있었다. 목련 꽃 지듯이 하늘로 가신 어머님이 간직했던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과 그 믿음이 나에게도 있기에, 어머님 가신 5월이 오면, 불효의 죄책감으로 고뇌하던 나는 한 없는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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