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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즉통(窮卽通), 극즉반(極卽反)’

07/11/18       박효숙

‘궁즉통(窮卽通), 극즉반(極卽反)’


‘궁즉통(窮卽通), 극즉반(極卽反)’

삶의 환경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압박, 건강문제, 자녀문제, 관계의 문제 등 벗어날 수 없는 문제 속에서 발버둥 치며, 고난의 파도가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며 살아갑니다. 욥기 23장 8절과 9절 말씀에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라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동방의 의인이라 인정받은 욥이 고난 중에 어디에도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은 영적으로 바닥을 치는 극한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욥의 고백처럼, 고통 속에서 휘청거리며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은 어디 계시지?” 하는 원망과 불평을 하는 고난의 시기를 지나게 됩니다. 주변에 자신을 도울 자가 한명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하나님조차도 안 계실 것 같은 불안은 두려움으로 바뀌어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고난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마치 우는 사자처럼 덮칠 기세로 도사리고 있습니다. 각자에게 맞는 맞춤식 고난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고난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축복이 되기도 하고 저주가 되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고난을 당했을 때 흔히 ‘궁즉통(窮卽通)’ 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직역하면, ‘궁하면 통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주역(周易)」에 나오는데, 원래는 ‘궁즉변(窮則通), 변즉통(變則通)’을 줄인 말입니다. ‘궁극에 도달하면 변하게 되고, 변하면 통한다.’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대부분은 가끔 미련스러워서, 스스로 힘든 고난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방법을 고수하면서, 기존의 방법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현재 처한 위기를 극복해보려고 억지를 부리곤 합니다. 그러다가 바닥을 치는 경험을 하고, 극에 달해서야 달라진 환경으로 인해 변화를 도모하게 됩니다. 당면한 고난을 이겨내는 지혜로운 방법 중의 하나는 먼저, 자신이 현재 당하고 있는 문제를 들여다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이 문제의 원인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는지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당한 문제를 지혜롭게 잘 해결하고 나서,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신념들을 객관화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달려오는 동안 가졌던 신념, 여기에 무엇이 문제인지를 깨닫고, 변화의 물결에 자신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요2:16)

자신의 인생에서 자주 비슷한 고난을 겪고 있다면, 이는 어쩌면 고통을 당하면서도 달라지지 않았거나 자신의 욕심에서 비롯된 고난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에 반응하는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살펴야 합니다. 현재 닥친 고난을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고난을 분별하게 되면, 앞으로 또 다시 닥칠 삶의 위기를 대비할 수는 있습니다. 고난을 분별한다는 것은 ‘고난이 주는 유익’을 발견하고,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은 고난을 통해 좀 더 성숙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의 절대적 조건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섭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는 시시때때로 하나님께 묻고, 그에 반응하는 삶을 말합니다. 사람인 이상 누구나 정신적으로 연약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할 때 강함 주시는 주님을 믿고 나아가지만 잠깐이라도 한 눈을 팔면, 넘어지기 쉬운 우리들입니다. 약함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만듭니다. 약함이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게 하고, 인정받기를 원하며, 상처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상처를 만들고 맙니다. 달이 기울어야 차고, 차야 다시 기울 듯이,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음지가 양지됩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으면, 바닥을 치고 반등하게 되는 것이 삶의 이치입니다. 이를 극즉반(極卽反) 이라고 합니다. 고난을 겪어내면서 자신의 상처를 인정해야 합니다. 문제없는 가정이 없듯이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자신의 상처에 대처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상처를 통해 더 성장할 수 있습니다. 상처는 자신을 지켜내며, 믿음을 강건하게 하는 묘약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지금 여기까지 달려오는 동안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한 사람이 자기 자신임을 인정하고, 토닥토닥, “괜찮아, 수고했어! 다시 한 번 도전해 보는 거야, 할 수 있어!” 하며 축 쳐져있는 스스로를 일으킬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아무리 바닥을 치는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절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그리고 실패한 경험으로 인해 자신을 너무 비난하거나 모질게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크고 작은 고난을 겪으며, 그 힘이 축적되고, 인격이 숙성되어 가기 때문입니다.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난 중에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던 욥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담대히 외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고난을 통해 부쩍 성장한 욥의 믿음이 우리들의 믿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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