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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축구와 신앙관

07/13/18       한준희 목사

월드컵 축구와 신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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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축구와 신앙관

월드컵 축구 16강으로 가는 예선전, 독일을 2:0으로 꺾는 순간 온 한국민들이 열광하였다. 비록 16강에는 실패했지만 세계 최강의 축구강국 독일을 이겼다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나도 TV를 보면서 골이 들어가는 순간 벌떡 일어나 골인을 외치면서 흥분하기도 했으니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으로 열광했으리라
본다.
그리고 집에 와서 조용히 생각해 보니 왜 내가 그렇게 열광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우리나라가 이겼다는 자부심이라 할까 그냥 기분이 좋다. 마치 내가 그 어려운 역경 속에서 인생을 역전시킨 그런 마음이 움직이는 것같은 그런 느낌이라할까 그냥 기분이 좋다. 왜 우리는 축구에 열광하는가, 엘리스 캐시모어라는 분의 유명한 저서“스포츠, 그 열광의 사회학”에서 이런 말을 남겨 놓았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현대사회의 특성 때문이란다. 즉 현대사회는 과거에 비해 예측이 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에 미래가 불투명했던 과거보다 훨씬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다보니 삶이 단조로워지고, 반복되어지는 생활 속에서 뭔가 예측 불가능한 영역에 몰입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이것이 스포츠를 통해 우리를 열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상당히 의미있는 말이다. 나도 젊은시절 축구를 많이 좋아했고 지금도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축구장으로 가서 축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끔 흥분하기도 한다. 지고 이기고를 떠나서 축구는 말 그대로 각본없는 드라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모습으로 상황이 전개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순간의 동작이 골을 만들어 낸다, 참 순수한 모습이 축구 안에 들어 있다. 어떤 속임수도 통하지 않는다, 그냥 열심히 뛰다보면 연속되는 실수 속에 절묘한 찬스를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참 순수한 스포츠라고 보여 진다. 그렇다고 다들 축구를 좋아하는 것만이 아니다. 뭔가 교회에서 느끼지 못하는 뭔가가 축구 안에 있다. 그게 도대체 뭘까?
오늘날 교회는 신앙을 공식화 시켜놓았다고 본다. 성수주일, 십일조, 기도생활, 전도열심, 교회봉사 등 그렇게 해야 만이 참 신앙을 가지게 된다는 보이지 않는 율법이 형성되어 있다. 반면 축구는 공식이 없다. 그냥 누가 골대안에 공을 더 많이 넣느냐 하는 단순한 싸움이다. 그 골대 안으로 공을 넣기 위해 11명의 선수들이 일심단결하여 서로 힘을 나누면서 뛰고 또 뛴다. (물론 작전이야 있지만 그라운드 안에서 그 작전이 작전대로 진행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순간순간 변화하는 골을 내 팀이 차지하도록 협력하는 것 외에 어떤 공식도 없다. 그래서 공식화된 신앙생활보다 순수한 축구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또한 성경은 모든 스토리가 역전의 스토리다. 예수님도 죽음이라는 십자가에서 대역전의 부활을 만들어 내셨다. 제자들도 동일하다 다 흩어진 제자들이 다시 뭉쳐 초대교회를 형성하였다. 모세도, 요셉도, 다니엘도, 다윗도 모두 역전의 주인공들이다, 그런데 현대사회에 와서 신앙으로 역전된 간증이 사라졌다. 불치병을 신앙으로 고쳤다는 이야기가 사라졌고, 절망의 순간에 대기업을 이룬 역전의 간증들은 사라지고 모두 성경
속 기적을 바라보는 기다림의 신앙으로 바뀐듯하다. 그래서 성경을 보고 미래를 예측해 둔 사람들이 교회를 묵묵히 다닌다. 반면 축구는 대한민국이 역전의 드라마를 만들어 내었다. 많은 게임이 마지막 1분을 남기고 기사회생하는 극적인 드라마같은 현장이 목격되면서 내 삶도 그런 역전의 삶이 되어지길 소망해본다, 한마디로 성경말씀보다 눈에 보이는 축구의 역전이 더 나를 짜릿하게 흥분시킨다. 그래서 축구를 더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뿐인가, 신앙은 예수님께서 내 안에 오셔서 일하심에 대한 만족이 있어야 한다. 대리만족이다. 나는 할 수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하셨기에 그 대리만족이 신앙의 핵심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함께 하셔서 승리하는 만족이 나를 그렇게 흥분시키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하셨다기 보다 내가 노력해서 얻어졌다는 현실적 사고가 신앙으로 나를 만족스럽게 못하는 것 같다. 반면 축구는 내가 응원한 팀이 승리하면 내가 승리한 것같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대학에 다닐 때 우리팀이 이기면 일부러 그날은 학교 뺏지를 달고 나간다. 우리가 이겼다는 대리만족감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이기니까 이유없이 그냥 기분이 좋다 다 세상적인 대리만족이다.
예측이 불가능한 축구에 열광한다는 것은 세상적 가치에 나도 동조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 가치가 모든 사람을 열광시킨다고 교회도 함께 열광한다면 우리는 모두 시대적 사조에 휩쓸려가는 죽은 물고가가 아닐는지 생각이 된다. 대한민국을 응원하고 박수를 보내는 것, 당연히 우리가 할 일이다 그러나 신앙인은 그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축구로 인해 잠시 기뻐진 마음이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으로 대치하면 안 된다. 어떤 것이든 나를 열광하게 만드는 것이 신앙을 넘어서면 우리는 구별되게 살라는 말씀, 거룩하게 살라는 말씀을 무너뜨릴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축구에 열광하기보다 예수님에게 열광해 보는 것이 어떨는지....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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