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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자손 (소유와 존재의 기로)

08/07/18       주진경 목사

아브라함의 자손 (소유와 존재의 기로)


여리고는 요단강 계곡의 서쪽 끝 에 위치한 도성으로 종려의 성읍이 란 뜻의 이름이지만 여리고의 거민 들이 신봉하는 주신(主神)이 달의 신(月神)이었기 때문에 달의 성읍 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여리고는 400년간 애급에 노예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 나님으로부터 받은 가나안땅에 돌 아 올 때에 가나안의 문턱을 가로 막고 있는 최초의 걸림돌이었던 성 읍으로, 하나님이 무너뜨리시고 이 성의 재건을 금지한 도성이었고(수 6:26, 왕상16:34), 예수님 당시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한 나그네가 그 여리고 성읍 인근 길에서 강도를 만난, 죄성이 강한 도성으로도 인상 지워진 곳이다.이 러한 여리고에 삭개오라는 세리장 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나라에 로 마정권이 세운 세리(稅吏)라 하면 우리 한국으로 말하면 악질 친일파 헌병이나 경찰, 고등계 형사와 같 은 민족 반역자로 여겨지는 동족을 수탈하는 악랄한 자였으니 삭개오 는 악병 높은 사람이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당시 이스라엘의 세 리들은 오늘날과 같은 과세 기준에 따라 세금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그저 최대한으로 거두어서 그 일부 를 로마 정부에 바치고 오히려 많 은 부분을 자기가 착복하는 그러한 관행으로 살았다. 아마도 삭개오는 이러한 식으로 많은 부를 축적했 을 것이다. 그리하여 먹고 입을 것 이 많았을 것이며 좋은 잠자리, 좋 은 옷과 음식 그리고 날마다 호화 로이 열락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나 호화로운 생활과 세리장이라는 권 세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마음의 평강이 없었으며 심령에 심한 번뇌 가 있었다.“그에게 물질은 있었으 나 진정한 기쁨이 없었으며, 육체 는 있었으나 생명은 없었고, 만족 은 있었으나 평안은 없었으며, 소 유는 있었으나 존재는 없었다”. 누 가복음 12:15에서 예수님은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말씀 하셨다. 삭개오는 비록 법적으로는 합법적인 신분과 방법으로 재물을 모아 소유는 풍족하여 호화롭게 살 고는 있었지만 심령에 번뇌가 있었 고 자기 스스로 양심의 고발을 당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등 뒤에 서 민족 반역자라고 비난하는 소리 와 증오의 손가락질을 따갑게 느끼 며 심령의 고뇌를 이기지 못했다. 삭개오라는 이름은 순결하다는 뜻이다. 그의 이름은 좋았으나 그 의 삶은 그의 이름과 같이 깨끗하 지 못했다. 이러한 그에게 예수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다.

 

그는 회개 하면 천국이 있다고 가르치며, 가 난한 병자를 고쳐주며, 벳세다 광 야에서 굶주린 무리들을 먹이시고 귀신을 내쫓으며 간음하다가 들킨 여자도 돌로 치지 않고 용서해 주 었으며 여덟가지 복되게 사는 법 을 가르쳐 준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것이다. 그는 “회개가 무엇인 지 알 수 없으나, 나 같은 겉으로 는 부자나 속으로는 죄책감으로 고 통받는 사람도 회개하고 예수께로 가면 이 모든 지옥과 같은 삶이 천 국으로 바뀌고, 견디기 어려운 번 민도 해결될수 있다는 것일까? 민 족을 반역했던 죄도 용서해 주고, 동족으로부터 부당하고 잔인스럽게 세금을 수탈한 것에 대해서도 용서 를 받으며, 설령 내가 가진 재물 이 다 없어진다 한지라도 양식 걱 정은 없을 것이며, 병에 걸려도 그 분이 고쳐 주지 않겠는가? 나도 예 수를 만나 보자”. 삭개오는 예수를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불현 듯 간 절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이 여리 고를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예수가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세리장 삭 개오도 예수를 만나러 거리에 나갔 다. 아마 세리장인 만큼 의젓한 옷 차림과 자세로 나갔는지 모를 일이 다. 그러나 거리에는 이미 예수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서 삭개오는 예수에게 가까이 나갈 수 도 없었으며 특히 키가 작은 삭개 오는 먼 발치에서도 예수를 볼 수 가 없었다. 누구 한 사람 여리고성 의 세리장인 삭개오를 알아보고 그 에게 자리를 양보하거나, 길을 열 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죄인이 메 시야를 만나 보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죄인 삭개 오와 메시야이신 예수와의 사이에 는 두껍고 높은 장애물이 있는 것 이었다. 예수는 “예수는 내가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이러고서야 내가 어떻게 그를 만나겠느가? 가 자, 집으로 돌아가자” 하고 의젓한 옷차림과 자태를 갖추고 거리에 나 온 삭개오는 그대로 길을 돌이켜 집으로 가버릴 법도 했다. 그러나 그는 체면을 불구하고 “내가 뽕나 무에 올라가서라도 예수를 만나리 라” 하며 특단의 결단을 내리고 뽕 나무에 올라갔다. 상상력을 동원해 서 이 상황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 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무리들이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를 보고 외 쳐 댔을 만하다.

 

“여리고의 거민들 아,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가 있 다. 우리를 수탈해간 저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헐벗고 굶주리며 고 통당했는가? 저 민족 반역자를 돌 로 치자!” 누구 하나가 돌을 던지 기만 하면 수없이 많은 돌들이 삭 개오를 향하여 날아들 것이며 삭개 오는 돌에 맞아 죽고 말 것이란 생 각이 든다. 이러한 일촉즉발의 상 황에서 예수님은 삭개오를 보자마 자 “삭개오야, 속히 나무에서 내려 오라. 내가 오늘밤 너의 집에 유하 여햐 하겠다” 고 말씀하시며 누구 보다도 먼져 그를 만나주시는 것이 었다. 의(義)의 메시아이신 예수님 이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증오하는 삭개오를 보호 하시며 간절히 그를 먼저 만나주시는 것이었다. 삭게오 는 몸의 병을 고치려는 것도 아니 요, 재물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도 아니며, 기적을 베푸는 것을 구 경하려고 나온 것도 아니고 다만 신령상의 문제인 그의 가난한 심 령에 평안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을 간절히 찾고 전심으로 노력한 것이 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자를 회당 이나 거리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 뽕나무 위에서 만나주신 것이었다.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며 나를 전심으로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잠 8:17, 렘29:13). 그러나 삭개오는 아직 그의 심령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며 구원이 선포된 것이 아니 다. 오늘날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 하여 고회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많 다. 그들이 간절히 예수님을 사모 하고 구원의 소원을 가지고 교회 의 문안에 들어는 왔지만, 그렇다 고 그가 죄 사함을 받고 의인이 된 것은 아직 아니다. 교회의 문안에 들어와 예수님 앞에서 해야 할 일 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본다.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여 교회에 나오기는 했지만 이런 사람들은 아직 고백과 죄 사 함이 없이 복 받기를 바라고 교회 만 드나드는 사람들이다. 예수님 이 만나 주시어서 예수님을 집에 모산 삭개오가 어떻게 하였느가를 보기 바란다. 삭개오는 앉지도 못 하고 서서, “주여, 보소서, 내 소유 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 오며 만일 쥐 것을 토색한 일이 있 으면 4배나 갚겠나이다”라고 말한 다. 삭개오는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삭개오의 소유는 세리로써 그 나름 의 노력은 했었을 터이지만 의로운 소유가 아니었다. 그는 그 의롭지 못한 불의한 소유를 조건 없이 가 난한 자들에게 내어 주겠다는 것이 다. 4배는 출22:1의 말씀이다. 성 경적인 고백이다. 누가복음 16장 9 절에 보면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삼으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 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를 영접하리 라”고 했다. 삭개오는 불의하게 소 유한 재물을 가난한 자들, 과중한 세금 수탈로 인하여 가난하게 되 어 원수 되었던 사람들에게 다 나 누어 줌으로 그런 사람들과 이제는 친구가 되겠다는 고백이다. 화평을 도모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마 5:9)되겠다는 것이다. 세상의 재물을 가난한 자에게 나 누어 주는 것은 곧 땅위에서 썩어 져 없어질 재물을 하늘에 쌓고(마 6;20), 하늘에서 돌려받는 것이다. (마 19:21), 토색한 것을 4배로 갚 겠다는 것은 그 불의한 재물까닭에 원수 되었던 이웃에게 다시 돌려줌 으로써 원수되었던 사이를 친구로 화평을 이루겠다는 고백이다. 마 5:9 화평케 하는 자의 복을 찾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만일 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로 갚겠다고 했다. 여기 “만일”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만일”이라는 말의 헬라어 원어 의 뜻은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부정적인 가정이 아니라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긍정적인 가정이 다. 토색한 것이 있기는 있으나 얼 마인지 모르는 것을 4배로 갚겠다 는 것이다. 그렇다면 삭개오는 이 미 절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 고 절반밖에 남지 않은 그의 재산 에서 얼마일지도 모르는 토색한 것 의 4배를 갚겠다는 것이다. 그것을 다 갚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 는 형편에서, 그의 남은 절반의 재 산에서 사배를 갚고 남는 것이 있 다면 다행이겠지만, 4배를 갚고 나 면 그는 무일푼의 알거지가 되는 신세가 될 수도 있고 또는 사배로 갚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빚 쟁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데 그는 알거지가 되더라도 4배를 갚겠다고 예수님 앞에서 고백한다. 4배로 갚는 다는 것은 성경의 말씀 에 따른 것이다. 출애굽기 22장 1절 에 보면 남의 소(牛)를 취하여 가 면 소로 5배로 갚고, 양(羊)을 취하 여 가면 양으로 4배를 갚게 되어있 다. 삭개오가 토색한 것에 대하여 사배를 갚겠다고 한 것을 보면, 아 마도 세금을 거둘 때에 세금을 바 치지 못하는 사람에게서는 양이나 소를 강탈한 것 같다. 참으로 진정 한 회개요 철저한 회개이다. 누가복음 16장 9절의 하 반절을 보면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 다가 그 불의한 재물이 다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가 가진 불의한 재물이 친구를 삼 는 일로 다 없어지게 되면 그들이 그를 영원한 처소로 데려가겠다는 것이다. 영원한 처소....! 삭개오 라는 이름의 뜻은 “순결하다, 깨 끗하다”라는 뜻이었으나, 이제까지 깨끗하지 못하게 살던 사람이 깨끗 한 이름의 처소로 돌아가는 순간에 있다. 소유의 사람이 존재의 사람 으로 돌아가는 순간에 있으며, 육 의 사람이 신령한 영적인 사람으로 돌아가는 순간에 있는 것이다.

 

“저 가 다 없질 때에 무엇을 먹으며 무 엇을 입을까(눅 16:9) 염려하던 육 체의 길에서 영원한 처소인 예수 님의 나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 다. 우리 또한 행여 지니고 있을지 도 모르는 불의의 소유나 옛날의 습관, 생각, 행동, 의롭지 못한 지 식 등등을 모두 깨끗이 주 앞에 내 놓고 예수님의 앞에 섰으면 한다. 이 세상에는 존재와 소유의 기 로에서 방황하는 사람이 많이 있 다. 그러나 삭개오는 무엇을 먹을 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육체 의 길에서 예수님이 가르치는 그 나라와 의의 길로 돌아섰다. 그 나 라와 의를 구하다가 벌거숭이 거지 가 되어도 주께서 그의 모든 필요 를 더하여 주실 것(마 6:33)을 믿고 불의 한 소유의 늪에서 허우적거리 던 사람이, 존재의 평안한 품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같은 삭개오를 보 시고 “이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고 선언하신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면 소유가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의 백성들인 것이다. 오늘 이 하나님 의 말씀을 읽는 모두에게 이 같은 신령한 복이 임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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