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 June 20, 2024   
살아계신 나의 중재자

08/13/18       김금옥 목사

살아계신 나의 중재자


살아계신 나의 중재자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두번 억울한 누명을 쓴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해명의 말을 하지만 들을려고 하지 않거나 그것이 확실한 사실이라고 믿고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변명의 여지가 없어 분하고 화가 나게된다.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당시 떠돌았던 소문이 가짜였고 모모한 사람들의 모함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는 이미 피해자가 치유가 안될 정도로 상처를 입은 후였을지 모른다. 즉 손상된 상처가 치유가 되고 아물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받은바 상처가 너무 깊고 아프기 때문이다. 성경 속의 욥의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아는 충격적인 이야기 이다. 세상의 누구보다 행복하고 신망있고 여호와까지도 자랑했던 신앙인 욥은 그러함에도 어느날 갑자기 발생한 재난으로 자녀들과 재산, 자신의 건강등 모든 것을 잃는다. 아내는 남편을 저주하며 떠나가고 친구들에게서 비웃음과 비난을 받은 욥은 피부병으로 형편없는 몰골을 하고 잿더미에 앉아있게 된다. 가장 친했던 친구들이 와서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는 인과 응보의 결과라고 말을 한다. 자기보다 어린 한 청년이 와서는 다른 말로 자신을 괴롭힌다.


욥은 진실로 누군가가 자기를, 자기가 잘못이 없다는 것을 방어해주고 대변해줄 분을 원했지만 비난하는 사람은 있어도 방어해줄 대변자가 주위에 없는 것을 발견한다. 욥기 19장 25에 보면 자기를 지켜보고 대신해줄 분이 있음을 발견한다. 법정에서 처럼 욥은 그가 변호석에서 일어나 자신을 위해 변호해줄 증인, 대변자임을 안다. 그 분이 하나님인 것으로 욥은 나의 대변자, 중재자는 살아 계신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본문은 그를 고엘 이라고 부른다. 마치 법정에서 변호인이 피해자를 변호해주는 것가 같은 의미를 가졌는데 그 대변자는 여호와이심을 알게된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참으로 주를 뵈었다라고 말하면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을 본다. 우리에게 주님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욥에게 그랬던 것같이 여호와이시고 고엘 go’ el 이다. 해방, 대속,속죄를 뜻하는 고엘은 가까운 친척이나 소유, 자유 혹은 생명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해있는 가족 구성원을 도와주는 의무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구원자를 고엘이라고 부른다. 고엘이신 하나님은 불의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보호자, 친척이기도 하고 구해주시고 복수도 해주시는 분이다. 가장 힘들고 괴로웠을 때 나를 방어하는 얼굴 대신 나 외에는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우리는 나를
쳐다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처음부터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이유로 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무고를 당하고 억울한 말을 듣고 아무도 듣기를 거부하는 설명이 안되는 이유 때문에 분하고 괴로울 때 거기에는 이미 우리를 변호하려고 서있는 변호자가 있다.


필자가 어려서 대구로 피난갔을 때 달성공원 안의 판자촌 가교에서 공부를 했다. 어느날 같은 학교에 다니던 남동생이 울면서 누나인 나를 찾아왔다.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해결이 안되니 누나를 찾아왔던 것이었다. 그때 나는 그에게 해결자였고 대변자였고 동생을 위해 변호할 수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제는 나이를 한참 먹고 손녀까지 본 동생이 기억할까 모르지만 그때 나는 그에게 자기의 억울함을 해결해줄 힘있는 누나였다. 눈물을 그치고 교실로 돌아갔으니까 말이다. 그 동생은 누구와 다투기를 싫어했는데 그때 해결이 안되니 상급생인 누나를 찾은 것이었다. 국민학교에서 누나나 형이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자기 친구들에게는 절대적인 부러움이자 힘이고 배경이다. 억울한 일은 발생해서도 안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실을 비방하는 말이나 행동은 말도 할 수없는 악한
일로 피해자에게 큰 상처를 준다. 훗날 모든 것이 거짓으로 밝혀지거나 피해자의 주장이 맞았다고 밝혀졌을 때 욥의 친구들 같이 하나님에게서 꾸중을 듣는다. 그들의 용서는 여호와께서 친구들에게 말한 것 같이 욥에게 용서를 빌고 욥이 그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을 때였다. 세상에 억울한 일들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더구나 그런 말이나 행동으로 누군가를 엮어서 억울한 피해자로 만들 수 없다.


주님은 우리의 억울한 것을 아시고 우리를 위하여 법정에 서시고 증명해주신 분이고 우리를 대신하여 빚을 갚아주시고 대신 죽기까지 하셨다. 이러한 주님이 내 주님인 것을 안다는 것이 복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만일 욥처럼 전에는 귀로 들었는데 이제는 눈으로 뵈었다라고 고백할 수있다면 더욱 좋은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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