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 October 23, 2020    전자신문보기
자기를 못 보는 사람들

08/15/18       한준희 목사

자기를 못 보는 사람들


자기를 못 보는 사람들
40여년쯤 되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영화가 있다, 제목이 빠삐용이다, 더스틴 호프만, 스티브 매퀸이 열연한 영화이다, 그 영화에서 기억나는 것은 빠삐용이 감옥에 갇힌 어느날 죄수들이 얼굴만 내밀 수 있는 조그만 구멍으로 머리를 내밀고 옆에 있는 다른 죄수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묻는다. “내 얼굴 어때요?” “예 괜찮습니다.”옆사람이 그 사람의 얼굴 상태를 이야기해주는 정면이다. 자기 얼굴을 자기가 볼 수 없으니 남이 이야기 해주는 것으로 자기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 기억이 난다. 즉 자신이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그 장면 속에 있었다는 것을 세월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목회를 하면서 정말 많은 세월 난 나 자신을 보지 못하고 살아 왔었다. 늘 내가 하는 일이 옳고 내가 판단한 것이 정상이라는 자부심을 잃지 않고 살아왔었다. 그런데 목회가 어려워지고 경제적 삶이 힘들어지면서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이제 늦게나마 노년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목회 초년시절 옆에서 목회하는 후배를 보면서 늘 부러움에 대상이 되었다. 그 후배목사의 교회는 날로날로 부흥이 되는 것이 아닌가, 어느날 그 후배목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존심이 상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후배목사의 말, “목사님 교회는 왜 일을 안 벌리십니까, 교회는요 바자회도 하고, 철야기도회도 하고, 부흥회도 하고, 그냥 막 일을 저지르면 성도들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부흥이 되지요“ 지극히 타당한 말을 하였는데 내 마음에는 편하지 않는 분노가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이유는 그걸 몰라서 안 하는가, 할만한 여건이 조성되지 못하는 현실에 몸부림치고 있는 나에게 교회가 좀 부흥이 되었다고, 자기가 말한대로 해야 부흥이 된다는 그 소리가 거슬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10여년이 흘렀다, 우리교회는 그동안 어느 정도 자립할 수 있을 정도의 교회로 성장하였고 상대적으로 후배교회는 미자립교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때 난 그가 10여년전에 했던 말을 해 주었다. “교회가 부흥되려면 일을 막 저질러야 하네 바자회도 하고, 부흥회도 하고, 철야도 하고.... ” 그리고 또 10여년이 흘렀다. 20여년이 흐른 것이었다. 지금 또다시 그 후배목사 교회는 성장을 했고 우리교회는 다시 미자립교회로 남게 되었다. 
 
이 묘한 현상을 난 서로가 자기 모습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자화상이
아닌가 본다. 부흥된 교회가 미래의 내 교회 모습이고, 미자립된 교회가 또 다시 내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 즉 상대를 보고 나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시각이
없었던 것이다. 정말 인간을 자신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모양이다.
오래전 세미나 참석차 필라에 간일이 있었다. 호텔에 낯익은 목사님과 함께 한주일을 묵게 되었다. 첫날 난 한잠을 자지 못했다. 이유는 그 목사님의 코고는 소리 때문이었다. 얼마나 심하게 코를 고는지 마치 탱크가 지나가는 소리로 들려질 정도로 심한 소리였다, 정
말 한잠을 못잤다, 그 목사님이 일어난 시간이 6시30분쯤 되었을까, 그 시간부터 난 잠이 들게 되었다, 한시간 정도 잠들었을까 나를 깨우는 소리에 일어났다, 그 한시간이 어제밤 내가 잔 시간 전부였다 그런데 그 코를 곤 목사님께서 나에게 하는 말에 난 까무러칠 뻔하였다. “야 한목사 코 되게 골던데...”
 
자기가 코를 골아 잠을 한잠 못자게 만들어 놓고 새벽에 잠깐 자면서 코를 곤 나에게 코를 곤다고 나무란다, 정말 이게 인간인가 보다. 자기를 못 봐도 어느 정도 못 봐야지... 참 그래서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느껴진다.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다. 함께 차를 타면 늘 입냄새가 나는 목사님이 계신다, 상 당히 역겹지만 입냄새가 난다고 말해 주기가 좀 그렇다. 괜히 무안해 할 것같아 참고 지나간다. 하지만 늘 그 냄새는 함께 차를 탈 때마다 당해야 하는 고통이었다. 어느날 이 입냄새 나는 목사님이 나에게 “한목사님 입에서 냄새가 나네요,” 서슴없이 말을 하는데 놀랐다. 물론 나에게도 냄새가 나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마치 자기는 냄새가 안나는 것같이 말하는 그 모습이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를 못 보는 사람들, 자기가 하는 말, 행동, 판단은 의로운 것이고 남이 하는 말, 행동, 판단은 늘 틀렸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늘 까칠하게 말하고 꼬치꼬치 따지고 나이 좀 들었다고 후배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적하는 까질한 목사가 목사안수를 받는 후배들에게 목사는 둥실둥실 해야 한다고 까칠하면 목회가 안 된다고 교훈하는 그 목사는 정말 자기를 못 봐도 너무 못 보는 목사인 것같다. 문제는 이렇게 까칠하게 구는 목사님 교회는 부흥이 되었기에 그의 말이 진짜인 것처럼 들려진다는 것이 우리를 헷갈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교회만 부흥되어 있으면 목사가 어떤 행동을 해도 면죄부가 되고 당연하다고 본다. 그래서 자기를 못 보는 목사가 많은 것같다. 성령이 충만한 모습은 남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보는 눈이 생긴다는 말이다. 나를 볼 수 있기에 더 주님 앞에 엎드리고, 더 용서를 구하고, 더 겸손해 지는 것 그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민 사회가 하나님 나라로 변화될 수 있으리라 본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
라(눅23:34)
 
 
  

페이팔로 후원하기

댓글달기 (100자이내)

내용:

0 자   

댓글(0개)

 ...  
인기 기사
최신 댓글

204 -39 45th Rd. #2Fl. Bayside, NY 11361
Tel: 718-414-4848 Email: kidoknewsny@gmail.com

Copyright © 2011-2015 기독뉴스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Intonet Solu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