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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모이고 싶고, 사랑하면 방법을 찾는다

08/15/18       고 훈 목사

사랑하면 모이고 싶고, 사랑하면 방법을 찾는다


옛날 목사님들은 성도와 콩은 볶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 은 여러분을 좀 볶아보려고 합니다. 일주일에 최소한 4번의 공 적인 모임을 갖는 것은 이미 4차 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 들에게 맞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신앙적 이유로는 교회에 모여 예배하는 것보다 세상 속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내는 영적 예배를 드리 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일견 굉장히 합당하고 사려 깊으며 고급스러운 견해라고 느 껴집니다. 마치 교회의 고집을 내려놓고 현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의 삶의 무게에 공감하며 그들을 위해 깊이 숙고된 견해 인 것처럼 들립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오늘을 살며 너무 많은 예배에 고민하는 우 리에게 무어라 말씀하실까요? 먼저 히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 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했습니다. 원래 성도의 모 임은 몇 번을 모일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모 일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말씀의 본래의 뜻입니다.

어떻게 하면 모일 수 있을까? 이것이 교회의 당연한 고민이 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들이며, 교 회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 하는 사람이, 일주일에 몇 번을 볼까를 고민할까요? 어떻게 하 면 볼 수 있을까를 고민할까요? 초대교회가 날마다 모였던 것은 당시가 오늘날보다 할 일이 없고 덜 바빴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목숨을 내놓고 모 이기를 힘썼습니다. 모임을 위해 순교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았 단 말입니다.

공적 예배보다 삶 속의 영적 예배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며 공적 예배를 나오지 않는다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144 시간 중에 교회에 나와 예배하는 2시간 그리고 이동 시간까지 넉넉잡아 4시간을 떼어놓지 못하는 사람이 정말 그들에게 주 어진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기꺼이 자 신의 존재를 내어드리는, 즉 자신의 몸을 거룩한 산 재물로 드 리는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예배는 의무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만나고 싶고, 사 랑하면 방법을 찾습니다. 세상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면 세상 속에 살다가 어떻게 하면 주님을 더 예배할까를 고민할 수밖 에 없습니다. 세상 속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의 고민은 몇 번을 모여야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모일 수 있을까가 되 어야 합니다.

지난 수요일 선교사님 부부의 간증을 놓친 분들이 너무 많아 안타까워 드린 말씀입니다. 공적 예배에 너무 소홀히 하는 것 같습니다.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가 중요합니다. 이것 명심해 주십시오. 잘 볶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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