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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과 두 번의 ‘만일’ (왕상 9: 1-9절)

09/26/15       김엘리야 목사

솔로몬과 두 번의 ‘만일’ (왕상 9: 1-9절)


사람들이 아쉬워하면서 사용하는 말 중에 ‘만일’과 ‘만약’이란 말이 있다. “만에 하나라도”란 뜻의 ‘만일’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털끝만큼의 가능성이라도 기대해보는 말이고, 같은 뜻이지만, “혹 그러한 경우라면”, “혹시 그렇게 된다면”이란 뜻의 ‘만약’은 실제는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되기를 가상해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만일(萬一)과 만약(萬若)은 ‘하나님의 언약적인 언어’로써 순종과 불순종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가 결정되는 축복비밀열쇠의 단어이다.

사람들은 ‘내가 만일 남자로 태어났다면, 팔등신미인으로 태어났다면, 억만장자 부자 집에 태어났다면,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과학자로 태어났다면, 운동선수로 태어났다면, 100년 전에 태어났다면, 50년 후에 태어났다면, 대법관부인 장관부인 대학교수부인 목사부인이 됐다면, 20년 전에 미국에 왔다면...’등등 실존적인 만약을 말하기도하고, ‘고구려 광개토왕시대에 드넓은 중국 땅을 소유했던 대로 대한민국영토가 지금까지 그대로 있다면, 삼국시대에 나당연합으로 신라가 통일하지 않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 일제압제에서 해방될 때 남북이 분단되지 않고 통일한국이 됐었다면, 6. 25전쟁이 없었다면, 군사정권이 없었다면, IMF가 없었다면, 할아버지 아버지가 그 많은 땅 팔지 않고 내게 유산으로 상속했더라면, 10년 전에 그 가게 그 집 사놓았더라면...’등등의 생존적인 만일을 말하기도 한다.

성경엔 만일(萬一), 만약(萬若)이란 뜻의 “If”란 단어가 무려 1522번이나 기록됐다. 성경에서의 If, 만일은 사람들이 가정해서 자조적으로 말하는 실존적인 만일과 생존적인 만일(萬一)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삶의 길을 제시한 말씀이 훨씬 더 많다. 하나님이 하신 만일과 만약의 If는 사람이 살기도하고 죽을 수도 있는 생사생존 갈림길의 방향제시와 축복을 받거나 저주를 받는 양자택일 갈림길의 방향을 제시한 ‘만일’과 ‘만약’이다.

성경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 If (만일, 만약)는 눅 5: 36에서는 “그렇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Otherwise)란 뜻으로 사용됐고, 딤후 2: 25에서는 “혹시”(아마, 어쩌면, 우연히; Peradventure)란 뜻으로, 마 18: 13에선 “그래서”(If so)로, 수 14: 12, 호 8: 7에서는 “설혹”(If so be)이란 뜻으로 사용됐다. 그리고 창 43; 14에서는 “만약,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하더라도”(According as, when) 창 4: 24에선 “그렇다는(그런) 이유로”(That, because) 시 124: 1, 2에서는 “만약 그렇지 않다면”(If not, unless)으로 신 7: 12에서는 “그 이유로”, “일의 되어가는 형편으로”(Consequence, because)란 의미로, 갈 3; 4, 엡 3: 2, 골 1; 23에선 “참으로, 과연”(If indeed)이란 뜻으로, 눅 11: 18, 고전 4; 7, 7: 21, 갈 6: 1, 빌 3; 12에서는 “만일 그렇다면”(If also, even if)이란 뜻으로, 마 16: 24에서는 “만일 누가 무엇을 하려면”(If any man aught)이란 의미로, 롬 1: 10에서는 “어떠하든지”(If any how)란 의미로 사용됐다. 이렇게 만일과 만약은 성경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됐다.        

                         솔로몬과 두 번의 ‘만일’

사람의 만일은 자기 자신의 과거에 대한 후회나 회한을 의미하거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소원과 바램, 갈망과 소망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만일은 이미 결정된 운명에서 이것이냐 저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양자택일하라는 명령의 의미가 있다. 본문과 평행구절인 대하 7: 11-22에서도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두 번이나 “만일”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솔로몬에게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축복의 길과 저주의 길, 둘 중에 하나를 양자택일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 말씀은 3000여 년 전 솔로몬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오늘 21세기 종말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하신 말씀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두 번의 만일 중에서 올바른 ‘만일’을 선택하여 순종하므로 땅 위에 축복과 영생의 삶을 살아가길 축원한다.

   1. 솔로몬에게 두 번 나타나신 야훼하나님

솔로몬은 꿈을 통하여 두 번이나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체험을 했다. 첫 번째는 일천번제를 드린 후에 있었던 체험이고, 두 번째는 성전봉헌식을 하고 난 후에 있었던 체험이다. 아버지 다윗은 어렸을 때부터 돈독한 신앙이 있었고 수많은 죽음의 위기를 겪으면서 절박한 기도의 신앙훈련을 많이 했었기에 수시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신비체험이 많았지만, 솔로몬은 부족한 것이 없는 부유한 왕자로 태어나 온실 안의 화초처럼 고난 없이 자란 사람이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 쉽지 않았지만 특별축복으로 두 번이나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체험을 한 것이다.  

비록 꿈을 통하여 하나님을 두 번이나 만났지만, 솔로몬은 그 만남들을 통해 하나님께 지혜를 받아 지구촌의 지혜지존이 되는 축복과 지상최고의 부귀영화까지 누리는 물질축복을 받았고, 자기가 건축하여 봉헌한 성전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축복, 그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영영히 두시는 축복, 야훼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성전에 항상 있겠다는 축복을 받았다(3절) 솔로몬 이후 수백 년 동안 이스라엘 역사에 그리고 2000년 기독교역사에 하나님을 직접 만나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왕이나 선지자나 제사장과 목사들이 몇 사람이고 누구며, 수백억 수천억, 수조 억의 많은 돈을 들이고 수십 년 심지어 수백 년에 걸쳐 Architecture History(건축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정도의 기념비적인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을 건축하고, 성전봉헌식 때에 하나님이 임재한 교회나 봉헌 후 하나님이 그 성전에 임재해 계시는 축복을 받은 교회와 목사들이 교회사와 오늘날에 과연 몇 교회와 몇 사람의 목사들이 되는가?
시 11: 4와 합 2: 20절 말씀대로, “야훼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다”(The Lord is in His holy temple)고 했는데, 오늘 지구촌교회 성전봉헌식에 하나님이 친히 권능으로 임재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영광을 나타내신 예배당이 과연 몇 교회나 되겠는가? 건물은 웅장화려하고 장엄한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예배당보단 하나님이 임재 해 계신 초라하고 누추한 천막교회 지하실교회 트레일러교회가 더 낫지 않을까? 우리 주기도문교회가 하나님이 계신 교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영광을 나타내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한다.

놀랍게도 솔로몬이 꿈에 하나님을 만난 신비체험은 황소 1000마리로 일천 번제를 드렸을 때였고, 성전봉헌식에서 황소 2만 2천 마리와 양 12만 마리를 제물로 드렸을 때였다(왕상 8: 63, 대하 7: 4-5) 레 1: 3-9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소로 번제(燔祭)를 드릴 때 ① 흠이 없는 황소를 드려야 하고 ②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황소머리에 안수를 해야 하며 ③ 황소를 잡은 후 제사장들은 황소의 피를 회막문 앞 제단 사면에 뿌려야 하고 ④ 희생제물의 가죽을 벗긴 후 각을 뜰 것이며 ⑤ 제사장들은 제단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놓고, 소의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놓아야 하며 ⑥ 소의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깨끗하게 씻은 후 고기 전부를 불살라 번제를 드려야 했다.

그렇다면 솔로몬이 드렸던 1천 번제와 성전낙성식 화목제제사는 결코 간단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취약도 없이 살아서 길길이 뛰는 황소 2만 3천 마리를 잡는 일, 14만 3천 마리의 양과 소에 한 마리씩 일일이 안수를 하는 일, 전기톱도 없이 칼이나 도끼로 소와 양의 뼈를 자르고 각을 뜨며 내장을 씻는 일, 짐승의 똥을 처리하는 일과 그 모든 고기를 일일이 불태우는 일이 결코 며칠에 끝나는 쉽고 간단하거나 만만하게 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여러 날이 걸려야 했고, 몸의 진액을 빼야하는 일이며, 육체를 지치게 하고 탈진시키며 힘들게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체험은 결코 쉽고 간단하거나 값싼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체험, 남들이 경험할 수 없는 신비경험도 결단코 쉽거나 간단하지 않다. 우연하게 오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며칠 전, 본문을 읽다가 깨달은 은혜는, 부족하지만 김목사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몇 번의 신비체험을 돌아보면서 한 번 한 번, 그때마다 엄청난 대가를 지불했던 것을 발견한 것이다. 오늘 그 동안에 꿈과 환상과 계시로 그리고 체험을 통해서 받은 나의 몇 가지 신비경험을 간증하는 것은 결코 내 자랑이나 내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님(영광을 탐할 나이가 아님)을 밝히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신비체험도 등가교환이다’, ‘공짜가 없다’는 것과, 은혜의 귀중함을 나누기 위해서임을 밝힌다.

대상 17: 16-27에서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네가 전쟁으로 피를 심히 많이 흘렸으니 나의 성전을 지을 수 없다(You have shed much blood, and have waged great wars, you shall not build a house to My name) 대신 네 아들 솔로몬이 나를 위해 성전을 건축할 것이며, 나는 그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겠다. 나는 그의 아비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내가 영영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 왕위가 영영히 견고하리라”(I will settle him in My house and in My kingdom forever, and his throne shall be established forever)는 말씀을 듣는다. 당시 다윗은 성전건축을 위해 수년 동안 금과 은과 동철과 많은 보물을 준비해 언제라도 건축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한 마디로 하나님께 거절당한 것이다.

그러자 다윗은 하나님 앞에 들어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며 내 집은 무엇인데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작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대하여 먼 장래까지 말씀하셨으니 야훼하나님이여, 주께서 나를 존귀한 자같이 여기셨나이다(Thou has regarded me according to the estate of a man of high degree;17절)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종을 위하여 집을 세우실 것을 이미 듣게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주 앞에서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For Thou, O my God, has revealed to Thy servant that Thou will build for him a house, therefore Thy servant has found courage to pray before Thee; 25절)라고 감사기도를 드린다. 비록 성전건축은 거절하셨지만 피를 많이 흘린 죄인인 나와 내 아들 솔로몬과 나의 후손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으니 감사하여 ‘종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다’는 기도였다.

오늘 김목사가 간증하려는 신비체험 몇 가지는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다”는 다윗의 감사심정으로 하는 간증이고, 나의 신비체험은 공짜가 아니었음을 고백하려는 것으로 결코 자랑하거나 나를 내세우려는 간증이 아님을 다시 말씀드린다.
 
1963-4년인 고등학교 2, 3학년의 1년 8개월 동안, 내가 산에 올라가 산기도와 설교를 연습할 때, 하나님은 세 번이나 나에게 뜨거운 불로 임하셔서 기이한 환상을 보게 하셨다. 입으로는 산 아래와 맞은 편 산의 수백만 구루 나무들을 보며 설교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성령께서 뜨거운 불로 임하셔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불덩어리가 된 채 설교를 하는데, 수백만 구루나무들이 내게로 몰려오는 환상이었다. 그런 신비체험이 1년 8개월 동안에 세 번이나 있었는데, 어린 소년시절의 나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당시 새벽이고 밤이고 시간만 나면 산에 올라가 설교연습으로 고함을 지르자, 동네 어른들이 ‘미친 아들을 조심시키라’는 말을 부모에게 하자, 나를 산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려고 학교를 다녀오면 소꼴을 베 오라고 들로 보내서, 지게에 풀을 진 채, 소를 몰면서 설교연습을 하다가 소가 뛰므로 곤두박질해 남의 논에 빠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동네 뒷산의 정상은 산등이 반쯤 잘려져 나간 병풍 같은 절벽상태였고, 돌로 된 평지는 40-50평쯤 됐는데, 거기에 여름과 초가을에는 독사들이 여러 번 나타나 위험을 겪었고, 겨울에는 바람에 불려 모인 눈이 무릎을 덮을 정도여서 설교연습을 하고나면 무릎과 발은 얼어버렸었다. 그래서 그곳에서의 나의 Teenager 1년 8개월의 산기도와 설교연습은 어렵고 힘든 싸움이었다. 어린 나이에 그만한 노력은 주님의 도움이었고, 세 번이나 ‘불 속에서 환상을 본 신비체험’은 주님의 특별선물이었다.

1969년 말에서 70년 초까지, 시골교회 전도사 2-3년차 시절 어느 날, 대략 3개월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연속해서 세 번을 하나님이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이 황금 검은 한국교회에, 마지막 열 번째 검으로 네게 준다”고 반복해 말씀하신 신비체험이다. 그 첫 번째 환상 때엔 충격과 넘치는 기쁨에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이었고, 두 번째는 ‘나 같은 죄인이요 보잘 것 없는 시골 전도사에게 이런 환상을 주시다니’ 하는 기쁨과 두려움이었으며, 세 번째 때엔 태산 같은 믿음과 확신으로 ‘요셉의 꿈을 마음에 두었던 야곱’(His brothers were jeal;ous of him, but his father kept the saying in mind; 창 37: 11)처럼 그 환상을 내 것으로 마음에 간직하게 됐다.

그때는 고독단신으로 청운의 꿈을 안고 소백산 골짜기 깊은 산골 교회에서 20대 초반의 젊음을 불태우던 때였는데, 앞에는 남한강 상류가 흐르고 강 건너편에는 하늘을 찌르는 소백산이 버티고 있었고, 뒤에도 기암절벽의 산과 울울창창한 나무숲이 둘러있어 1년 365일 산속에 갇혀 사는 답답한 생활이었는데, 그때 나는 평균 2일에 한 번씩 성경을 통독했었고, 낮에는 들 노루처럼 산을 휘 젖고 뛰어다니며 체력을 연마했으며, 매일 새벽이나 밤에는 산에 들어가 바위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그곳에서 산 기도는 보통의 담력으로는 할 수 없는 지역으로 당시, 동네 사람들은 밤이면 귀신들의 역사와 야생동물의 출몰 때문에 화장실도 다니질 못했다) 밤마다 강단에서 철야(7년을 철야함)를 했으며, 뼈를 깎고 피를 말리는 금식과 영어공부로 고독지옥의 삶을 살았던 때였다. 그래서 그때 ‘하나님이 황금 검을 주신 환상’은 목숨을 건 도전에 대한 등가교환의 상급이라 생각한다.

1980년 가을, North Carolina, Spring Lake의 Fort Bragg 군인부대 근처에서 국제결혼자매들을 목회하던 변두리시골교회에서 주님이 세 번을 나타나셔서 “너는 계시록과 종말론을 연구해 그것을 가르치라”는 음성을 들려주신 신비체험은, 내가 미국생활 5-6년 동안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백만 분지 일이라도 갚겠다며 남들이 가지 않는 군인부대지역으로 가서 교회를 세우고, 외롭고 소외된 국제결혼여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성전구입을 위해 내 모든 소유를 다 바친 후에도 건축헌금이 부족해, 5-6개월 동안 매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성도들과 함께 미군부대로 달려가 군부대쓰레기통(군인부대 쓰레기통은 대형 트레일러보다 더 큰 것도 있다. 넝마주이가 따로 없을 정도로 매일 냄새나고 더러웠다)에 들어가 안을 뒤져서 알루미늄 깡통을 찾아 모아 팔아서 성전을 구입한 것을 귀하게 보셨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그때 날마다 쓰레기통을 뒤져 넝마주이처럼 보이니 이웃 교회 목사들이 ‘신학교도 안 나온 가짜목사, 돈 주고 박사학위를 산 목사’라며 비웃었지만 개척 8개월 만에 교회건물을 구입케 하신 것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감사간증이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때부터 종말론과 계시록을 열어주어 깨닫게 하신 은혜와 축복을 감사한다.

1983년부터 1998년까지 15-6년 동안에 “김목사, 너는 종말 때에 지구촌 마지막 복음의 주자 세 사람 중 한 사람이다”라며 20여 번 이상을 말씀해주신 신비체험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1981년 12월 26일부터 40일 금식을 시키신 이후부터, 93년에서 98년까지 나의 4-5년 불순종생활을 청산케 하고 한국에서 미국으로 데려오시면서 하셨던 말씀까지 들이다. 98년 가을에 하셨던 같은 계시말씀은 호세아가 가출해 음부(淫婦)가 돼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아내 고멜을 집으로 데려오면서 위로하던 것처럼(호 3: 1-3) 불순종과 거역으로 영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나를 미국으로 데려오면서 격려하셨던 말씀으로, 또 다른 계시말씀이 있자마자 더 이상 그 말씀은 없어졌는데, 그 동안의 15-6년은 애틀랜타에서 워싱턴으로, 워싱턴에서 캘리포니아와 한국으로 동분서주하며 꿈의 날개를 펼치고 웅비하려던 세월들이었다. 살던 집을 팔아 건축헌금으로 드려 4. 5에이커의 부지와 성전을 구입케 하셨고, 설교 한편 준비하는데 40시간에서 50시간을 바치며, 성경을 연구하는데 하루 평균 8시간에서 10시간을 바쳤고, 아무리 뛰어다녀도 피곤을 느끼지 않아 무엇이든지 할 것 같았던 세월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혈기방장(血氣方壯)한 나를 눌러 앉히시고 ‘지금은 네 때가 아니다. 때를 기다려라. 너를 지구촌 마지막 복음의 주자 세 사람 중 한 사람으로 택했다’라고만 말씀하셨다.

그 외에도 여러 신비체험이 있지만, 2000년 1월 1일에 “너는 세계 10대 신학자 중 한 사람”이라는 계시와 같은 해 6월 30일 새벽기도 중에 ‘하나님의 보좌’를 본 신비체험(그 은혜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과 2005년 6월에 워싱턴의 동료목사 한 사람의 손이 은빛 찬란한 1마일 정도의 큰 손으로 변하는 환상 보는 것을 전후하여 “그 날에 지구촌의 반(유색인종)의 영혼을 네게 맡길 것이라”는 계시의 신비체험은 지금도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천기누설 같은 이 엄청난 계시들과 신비체험은 장차 실제로 응답돼 나에게 일어날 하나님의 약속일지, 아니면 나로 약함과 좌절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나를 위로하기 위해 주신 말씀인지 아직도 나는 모른다. 다만 너무 귀한 계시와 신비체험들이어서 야곱이 요셉의 꿈을 마음에 간직한 것처럼 내 마음에 간직하고 기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러한 신비체험들은 어김없이 내가 생명을 하나님 제단 앞에 바치며 헌신했을 때 있었던 계시와 하나님의 응답이었다는 것이다. 어떤 계시는 두 번째 40일 연속금식이 끝나는 80일 금식이 끝난 다음날에 주신 계시였고, 어떤 신비체험은 나 혼자 새벽마다 6개월을 마귀와의 피 말리는 영적혈투를 끝낼 때(그 기간 중, 실제로 거구의 흑인 정신병자가 새벽에 나 혼자 기도하는 교회에 들어온 위헌한 때도 있었다) 주신 계시였다. 이렇게 영적인 특별축복이나 신비체험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했을 때 하나님이 주셨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구원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받을 수 있는 무조건의 은혜이지만 말씀의 은혜와 성령의 은사와 신비체험과 능력은 등가교환의 대가를 지불한 사람만이 받는 축복이란 것이다. 솔로몬이 1천 마리 황소를 드린 일천번제와 황소 2만 2천과 12만 마리의 양을 성전봉헌예물로 드렸을 때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셨던 것처럼, 그리고 도미티안 황제의 박해로 펄펄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졌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 만신창이의 연약한 몸으로 독충과 뱀과 짐승만이 사는 고해절도(苦海絶島) 밧모섬에 유배됐던 사도요한에게 인류역사의 마지막 파노라마를 보여주시고 요한묵시록을 기록케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 몸을 드리고 마음을 드리며 물질까지 아낌없이 드림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체험과 신비계시를 받는 신령한 성도들이 되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한다.

   2. 솔로몬과 두 가지 ‘만일’

본문에서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두 가지 만일’을 말씀하셨다. 첫 번째 ‘만일’은 4절과 5절이고, 두 번째 ‘만일’은 6-9절까지의 말씀이다. 첫 번째 만일은 긍정적인 면에서의 ‘만일’이고 두 번째의 만일은 부정적인 면에서의 ‘만일’이다. 첫 번째의 만일은 축복을 받고 살리기 위한 만일이고, 두 번째의 만일은 불순종과 파멸을 경고한 만일이다.

   ⑴ 첫 번째 ‘만일’이다.

솔로몬아,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같이 ①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 행하면”이다. ‘너는 이스라엘 열왕의 표준이 됐던 네 아비 다윗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며 내 앞에 행하라’는 말씀이다.

다윗은 복수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원수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 다윗은 여호와의 법궤 앞에서 기쁨과 감격으로 춤을 추는 열정을 백성들 앞에서 보여주었다. 밧세바 사건에서는 뼈를 깎는 처절한 회개가 있었다. 그렇다.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마음을 온전히 한 사람이다. ‘온전히’란 히브리어 톰은 “완전무결함”과 “성실”이란 의미 외에 “강함”이란 뜻도 있다. 그의 삶을 볼 때,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완전무결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윗은 죄악에 빠졌을 때, 철저하게 회개하고 강하게 하나님을 붙잡는 신앙원리에 변함이 없었다. 인간적인 실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여호와 신앙의 도리를 부여잡았다. 하나님을 향한 꾸준한 성실과 야무진 집중이 다윗의 장점이다. 여러분도 실수 한 번에 낙심해 교회를 빠지고 죄를 범했다고 신앙을 등지지 말라는 말이다.
② ‘내가 네게 명한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라’이다. 솔로몬과 그 후손들이 하나님께 충성하고 율법에 순종할 때에만 왕위가 계속될 것이란 말씀이다. 여러분의 축복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지켜, 주일을 성수하고 십일조를 성수하며 구제에 최선을 다하고 기도와 금식을 게을리 하지 않을 때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들이 말씀 순종을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킴으로 점점 더 커지고, 오래오래 계속되며, 자손들까지 누리는 역사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⑵ 두 번째 만일이다(6-9절)

4, 5절에서 ‘네 아비 다윗과 너 솔로몬’이 6, 7절에서 ‘너희나 너희 자손, 이스라엘’로 바뀐 것은 ‘두 번째 만일’이 솔로몬 개인뿐 아니라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신약성도 전체를 의미한다. ① ‘만일 네가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않으면’(If you turn away from following Me)은 “네가 만일 소극적으로 하나님을 좇지 않거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않거나 적극적으로 다른 신을 좇아 선기고 숭배한다면” 이란 뜻이다. ②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다(I will cut off Israel from the land which I have given them; 7상)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질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도 단절된다는 말씀이다.

③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릴것이다(The house which I have consecrated for My name. I will cast out of My sight; 7중) ’던져 버리다‘(Cast out)의 쉴라흐는 “관계를 끊어 버리다”, “해고하다”는 뜻으로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버려 이혼하듯, 하나님께서 모든 관계를 끊으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수십억 수백억 수천억을 드려 지은 성전으로, 한 때 수십만 성도가 모여 예배를 드렸던 성전이라도 하나님이 관계를 끊고 버리므로 보통건물과 다를 바가 없게 하겠다는 경고다. 2000년 1000년 구라파 유럽교회가 그렇게 됐고, 300, 400년 된 미국교회가 그렇게 돼가고 있으며,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로버트 슐러의 수정교회(Crystal Church)가 그렇게 됐고, 오늘 100년 50년 30년 된 한국교회가 그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다.

④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다(Israel shall be a proverb and a byword among all people; 7하) 속담거리(Proverb)의 마솰은 “격언”, “풍자” 외에 “교훈”이란 뜻도 있는데, 이스라엘이 경멸거리 조롱거리가 될 것이며 모든 민족에게 하나의 본보기가 되고 객관적 교훈이 될 것이란 말이고, 이야기 거리(Byword)의 쉐니나는 “신랄하게 조롱하는 말”이란 뜻으로 이스라엘이 세계 민족에게 조롱거리가 될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했던 이스라엘은 BC 586년에 바벨론포로가 된 이후에 세계의 조롱거리가 된 후부터 지금까지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갖 고초와 조롱을 다 겪었고 2차 세계대전에서는 600만이 학살을 당했으며, 지금도 조롱거리가 되고 있고, 장차 7년 대환난 때는 지구촌 유대인 ⅔가 학살을 당하여 세계인들에게 조롱과 비웃음을 당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비극은 오늘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돈과 쾌락과 음란에 빠지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당할 비극의 예표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을 버리고 신앙생활을 게을리 한 자들은 은혜시대에도 사람들에게 비웃음과 조롱거리가 되지만 환난시대엔 하나님과 천사들과 성도들과 지옥에 빠질 자들에게까지 그리고 사단마귀와 귀신들에게까지 조롱거리 비웃음거리 속담거리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다. 축복과 은혜의 이야기 거리는 되어도 비웃음과 조롱의 속담거리는 되지 않기를 축원한다.  

8-9절은 황폐를 당한 성전과 이스라엘이 세계인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조롱당하는 말을 기록한 말씀이다. 그렇다. 그 나라에서 하나님을 몰아낸 이스라엘은 파멸과 포로와 학대를 당해 세계인들에게 조소와 비웃음거리가 됐다. 당신이 지금 사업이 잘 돼, 바쁘다고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버리고, 주일을 지키지 않고 성전을 멀리하며 돈 버는 일에 정신이 없지만 그것이 오래가지 않는다. 당신의 일거리가 한 달, 석 달, 일 년치가 밀려있어도 한 순간에 일이 꼬여 일거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 당신의 건강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큰 소리 칠 수 있어도, 당신의 행복이 탄탄대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아무 문제가 없고 막힘이 없는 것 같아도, 찰나순간에 칠흑의 밤으로 곤두박질할 수도 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Do not boast about tomorrow. But you do not know what a day may bring forth; 잠 27:1)고 했다.

일찍이 하나님을 두 번씩이나 만나는 신비체험으로 성경에 기록된 솔로몬이었지만 이방나라의 팔등신 미녀공주 부인들의 꼬임에 빠져 우상숭배를 따라 하다가 성전이 파괴되고 역사 앞에서 조롱거리 비웃음거리가 됐다. 부인의 꼬임에 빠지고 남편의 꼬임에 빠지며 이웃에 꼬임에 빠져, 땅을 치며 통곡하는 비극의 사람들이 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온전했던 다윗의 길을 걷는 성도, 비록 실수하고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고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다른 성도들과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서 의롭고 거룩한 성도로 칭송을 받는 축복들이 있기를 축원한다. 지금도 계속되는 하나님의 신비체험의 주인공이 되도록 도전하는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많이 나오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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