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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어머니

09/28/15       장현숙 목사

비둘기 어머니


안녕하세요. 장 현숙목사 문안드립니다.
시(詩) ‘비둘기 어머니’ 의 제목을 가진 ‘시가 있는 갤러리’ 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저는 최근 ‘어머니’ 의 의미를 생각하며... 지냅니다. ‘어머니’ 란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추억 속 어머니의 얼굴이 그리워집니다. 어머니는 대학입시를 앞두고 화실에 있는 저를 보기 위해 눈이 몹시도 많이 내리던 겨울 집을 나섰다고 합니다. 생일을 맞은 저를 위해 온갖 음식을 가지고 오시다 주안의 사거리 신호등에서 심한 충돌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위급하게 뇌수술을 받아야 한다.” 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수술실 앞에는 어머니가 즐겨하시던 스카프가 피에 흥건히 젖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스카프를 가슴에 안고 세상이 텅 빈 것 같은 슬픔 속에서 한참을 울었던 것 같습니다. 의사들이 수없이 오갔지만 긴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도 안도할만한 말 한마디 없어 가슴이 타들어가던 순간이었습니다. 후에 어머니가 탔던 차는 폐차시킬 만큼 훼손이 심했습니다.

다행히 어머니가 무의식에서 깨어나 첫 마디를 하셨는데 “ 막내야! ” 라며 저를 찾으셨습니다. 그 때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어머니도 저도 말을 잃은 체 한참을 울었습니다. 회복실에 있던 가족들은 물론 회복실 전체가 눈시울이 뜨거워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약 30년이 지났지만 선명합니다. 당신께서 그 눈 속을 딸을 보기위해 오시다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기셨음에도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저를 찾는 어머니의 사랑은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하나님 다음으로 보상을 바라지 않는 숭고한 아가페 사랑을 하는 이 땅의 유일한 존재 ” 인 듯합니다. 어머니는 그 이후 여자로서는 가장 중요한 얼굴에 수술자국을 갖게 되셨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의 얼굴에 대해 제 앞에서 거론하신 적이 없습니다. 케네디대통령은 국가가 국민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 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국가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을 바라기에 앞서,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케네디-

저는 오래전 케네디의 명언을 보며 아래와 같은 메모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나라의 기둥이 될 자녀를 위해 자녀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 것을 바라기에 앞서 자녀가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다.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위임받은 사람이 바로 ‘어머니’ 이다.”

한국의 ‘국보(國寶)’로 지칭되는 고인(故人) 양 주동박사는 어머니날이 되면 즐겨 부르는 ‘어머니의 마음’ 이라는 곡조에 감동어린 작사를 하신 분입니다. 한국정서에 맞게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희생과 헌신을 감동적으로 잘 묘사하여 저는 어머니날이 되면 이 노래를 끝까지 부를 수 없습니다. 고국에 계신 어머니의 셀 수 없는 희생을 생각하면 끝까지 부르기 전에 목이 메어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깍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

미국의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링컨은 낡은 성경책 한 권을 유산으로 남기신 기도하는 어머니에 대해 “내가 성공을 했다면, 오직 천사와 같은 어머니의 덕이다.” 라는 고백을 합니다. 링컨의 생애는 행복하고 평탄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미국에서 존경받는 대통령이 된 것은 위기와 고난 속에서 어머니가 물려준 성경속의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 자녀에게 천사를 보내시는데 그 천사가 바로 ‘어머니’ 인 듯합니다. 항상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하는 어머니를 통해 링컨대통령처럼 어머니의 하나님을 만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하나님과 자녀를 연결하는 다리와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어머니는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성직과도 같은 소명이라고까지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따르며 우는 이들에게 자녀를 위해 울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 28)
‘어머니’ 는 단순히 자녀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빨래해서 입히고 잠자리를 제공하는... 이상의 의미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어머니에게 자녀의 영혼을 위탁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전통은 자녀의 신앙을 논할 때 모계의 신앙에 따라 자녀의 신앙을 정합니다. 이런 문화는 결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23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저의 결혼을 앞두고 혼수를 장만하셨습니다. 지금 지난날을 반추해보니 참으로 저는 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불 파는 곳과 그릇 상점 등을 함께 다니며 가는 곳마다 좋은 것을 보면 어머니의 마음을 흔드는 말을 해서 결국은 어머니는 당신이 써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한 것까지 다 사 주셨습니다. 이불을 고를 때는 맘에 드는 이불의 고은 색을 보며 “마치 이불 위에 사탕을 뿌려놓은 듯 너무 예뻐서 이것만 덮으면 잠이 잘 올 것 같다.” 고 했으니 ...참 철이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저를 향해 큰언니는 “어머니도 이런 이불을 덮으신 적이 없는데... 자식 중 막내딸의 마지막 결혼이라 뭐든 다 해 주시네.” 하곤 했던 말이 왜 지금에서야 들리는지... 어머니가 되서야 자식의 결혼을 앞 둔 나이가 되니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많은 직업 중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의 첫 번째 직업은 ‘어머니’ 라고 설문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일은 위선이나 가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한 지붕 아래서 적나라하게 자녀는 어머니의 실체를 보며 자랍니다. 자녀가 어머니의 댓가 없는 희생을 보고 예수님 희생도 쉽게 믿게 됩니다. 어머니의 용서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도 구하게 됩니다. 부모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존경을 받는 어머니라면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 일 것입니다.

저는 대학에 낙방하여 재수를 하게 되었을 때 자녀의 실수를 재기의 기회로 믿어주는 부모님을 통해 용기를 얻었습니다. 대학합격자 명단 발표가 있던 날 저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던 저는 밤 늦도록 집 주위를 돌면서 차마 집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집안에는 훤하게 불이 켜 있었지만 가족들 보기가 민망하여 대문을 활짝 열고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겨울밤의 강풍 속에서 12시가 다 되어 문을 미는 문소리를 듣고 아버지께서 뛰어 나오셨습니다.

거실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고개를 들지 못한 체 서있는 저에게 “ 아버지는 키도 작고 얼굴도 새까맣지만 다 이해한다.” 고 하셨습니다. 그 때 하셨던 말을 저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새 양복을 입으실 때마다 “ 막내야! 어떠냐! 아버지가 표준형이라 멋있지!” 하던 분이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배우의 권유를 받을 만큼 인물이 한국인으로 드물게 서구적인 분이셨습니다. 눈도 크시고 코까지 조각처럼 오똑하시고 이목구비가 수려한데다 유학까지 다녀오신 엘리트이십니다. 그런 분이 자신을 낮추고 낮춰 저를 편하게 해 주시고자 하신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아버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미 천국에 계신 아버지의 귀감을 생각하며 자녀들이 나의 십대처럼 실수할 때 아버지의 흉내라도 내는 딸이 되려고 다짐하곤 합니다.   

부모의 진정한 희생을 보고 자란 자녀는 자신의 이기심을 깨뜨리는 훈련을 넘어 자연스럽게 성화의 문으로 들어가게 되는 듯합니다. 부모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자녀에게 혈육의 유전을 넘는 지혜를 부으셔서 거룩의 문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하시는 듯합니다. 이런 점에서 부모님은 ‘최초의 학교’ 요, ‘첫 교사’ 요, ‘영원한 교과서’ 인 듯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 : 6)

시편기자는 자녀가 여호와가 주신 기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식들은 여호와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시편 127:3)

모세의 어머니인 요게벳도 모세에게 히브리인의 뿌리가 되는 정체성을 심어준 어머니로 인하여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었듯이 자녀의 정체성을 찾아가도록 돕는 것이 어머니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눈물의 기도를 통해 아들을 하나님께 되돌아오도록 목자의 역할을 했지 않습니까!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의 아내, 수잔나는 열 명의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훈련한 후 당대에 자녀들을 감리교의 기둥 목사들로 배출했습니다.

한국의 고전인 ‘명심보감’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오직 두 분 뿐인데도
늘 형과 동생이 못 모시겠다고 다투고,
자식 기르는 것은 열 명이라도 모두 혼자서 맡느니라.
자식이 배부르고 따뜻한 것은 항상 물어보면서도
부모가 배고프고 추운 것은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대에게 권하노니, 부모를 받들고 섬기기에 힘을 다하여라.
그대를 기를 때 입는 것과 먹는 것을 그대에게 빼앗기셨다네.   

모든 어머니는 자식에게 빼앗겼다기보다 늘 더 많이 못 해 준 것만이 가슴 속에 아쉬움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내릿 사랑만 하느랴 늘 부모님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살아온 듯합니다. 제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아버지는 중절모자에 마비스 독일 안경을 쓰시고 양복 위에 바바리 코트를 입으시고 마치 영국신사처럼 멋을 한껏 내시고 외출하시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까운 곳을 가실 때도 꼭 정장을 주로 하시는 것이 불편하실 것 같아 “ 아버지! 편하게 케쥬얼하게 입고 나가시지요.” 라고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 나이 들수록 격 없이 입고 다니면 자식 욕 먹이는 일이 된다. 자식들 불효자라는 말 안 듣게 하려면 나이 들수록 단장해야 한다.” 는 말씀이 지금까지 오래 오래 저의 마음에 남습니다. 아버지의 깊은 뜻을 알고 마음이 얼마나 짠했는지 모릅니다.

사랑은 원래 ‘내릿 사랑’ 이다 보니 아이들의 이모는 막내 동생인 저를 아직도 자녀를 둔 한 가정의 어머니로 보기보다 동생으로 보는 듯합니다. 아이들의 이모는 막내로 사랑을 내리 받기만 하고 자란 제가 자식을 위해 당연히 희생하는 것에 대해 측은하고 안스러운 얼굴을 할 때가 많습니다. 저의 아들에게 “ 너의 엄마가 비둘기 같은 소녀였는데 딸도 아닌 아들 둘을 키우며...너희들을 위해 숲을 만들었다.” 고 저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합니다. 이미 장성하여 결혼한 큰 아들과 막내아들은 이모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마치 둥지의 작고 어린 새처럼 이모 앞에 앉아 지난 이야기를 들으며 웃기도하고 눈가가 붉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비둘기 어머니’ 시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모든 어머니들은 오늘도 촛불이 초를 태워 주위를 밝히듯 자신을 태워 자녀의 삶을 밝히고 계실 것입니다. 모든 어머니와 어머니의 사랑을 고향처럼 그리워하는 모든 분들을 위하여 “비둘기 어머니”의 시를 보냅니다.
‘비둘기 어머니’ 시는 여린  비둘기 같은 소녀였던 어머니들이 자녀를 위해 숲을 만드는 모든 어머니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세월이 지나 저들도 자신을 촛불처럼 태워 자녀를 밝히는 삶을 살 것입니다. 가끔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는 중년의 문턲에서 어머니의 기억을 떠올릴 것입니다. 문득 문득 자신을 태워 밝히신 어머니의 그림자를 더듬을 것입니다. 어머니! 비둘기 어머니를...




비둘기 어머니
             
                      장 현숙

어머니는
비둘기 같은 소녀였다고
이모는 내게 말했지요.

그 작은 비둘기가 여린 입술로
거친 가지를 수없이 물어 날라
너의 숲을 만들었다고 이모는 말 했지요.

숲속에서 무서운 동물도 만났지만
언젠가 내가 날아다닐 숲을 준비하는 꿈이 있어
멈출 수 없었다고 말 했지요.

이제 내 나이 마흔 둘을 넘고 나서야
내 삶을 세웠던 땅을
어머니의 작은 몸 안에서 봅니다.

어머니의 땅을 무심코 밟고 다녔지만
그때는 어머니의 눈물이
비둘기의 눈물인 줄 몰랐습니다.

철없이 들었던 이모 이야기가
내 새끼 둥지를 만들게 되서야
비둘기 어머니 그 삶을 되짚어 봅니다.

내 삶의 영원한 한편의 소설이신
어머니의 숨겼던 비둘기 눈물모아
이제라도 내 허리춤에 매달아 놓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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