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저지 빵굼터 앞에서 뉴욕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탔습니다. 한국에서 막 돌아 온 그리웠던 친우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50대 후반쯤, 같은 연배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함께 앉았습니다. 초행길이기도 해서 어색함을 덜어보려고 말을 붙였습니다.
처음엔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 불편한 표정이 역력했는데, 주변에 사람도 별로 없고 해서인지 조금 지나자 마치 오래된 친구를 길거리에서 만난 듯 살아오며 겪은 이야기를 주섬주섬 풀어 놓았습니다. 미국 온 지 20여년이 지났다는 그녀는 언제부터 인지 마음에 돌덩어리가 하나 얹혀 있는 것처럼 소화가 안 되고, 사는 게 밋밋하고 재미없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이민 초기에 사기당하고 부도 맞은 황당한 이야기를 마치 세상을 관조한 듯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이야기했습니다. “무척 힘든 시간을 잘 견뎌 내셨네요. 용하십니다.” 하며, 끄덕끄덕 마음으로 거들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르는, 아주머니와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우리들이 나눈 이야기가 고통의 경중은 다르지만 한 개인의 삶의 이야기가 아니고, 고향을 떠나 2억 만 리 타향에서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이 드니 저만치 앞서 분주히 걸어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짠 해졌습니다. 물론, 이제 다 지나간 과거여서 고난을 거쳐 온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이야기 했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지금 여기서의 삶인데, “밥하는 것도 재미없고, 돈 버는 것도 재미 없고.” 라고 하며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듯한 모
습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슬픈 일은 슬프게, 기쁜 일은 기쁘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어야 고난을 이겨낸 자로서 맞을 행복도, 기쁨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까닭입니다.여기에서 진짜 문제는 자신만이 피해자라고 느끼는 피해 의식입니다. 지금은 피해자 자리에 있지만 상황이 바뀌면 피해자가 곧 가해자가 됩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표현되는 감정이 자꾸 상충하게 되면, 어느 순간 자기 자신도 모르게, 아무 죄의식 없이 가해자가 되어버립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감출 수 없는 화가 나는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찾아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피해자를 만들고, 또 그렇게 가해자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참으면 참을수록더 감정적이 되고 공격적이 됩니다. 무시하고 외면한다고 해서 상처 난 감정이 어딘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의식 어디인가에 숨어 있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얼굴을 하고서 밖으로 나옵니다. 이때는 이미 통제 불능 상태가 됩니다. 그렇게 까지 자라나지 않도록 억눌린 감정을 시시때때로 잘 풀어주어야 합니다. 보통 분노 뒤에 상처가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분노는 ‘상처를 감추는 가면’이라고 합니다. 매번 같은 상황에서 화가 난다면, 화 뒤에 숨어있는 상처의 뿌리를 찾아 토닥거려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잘 살아줘서 고맙다” 고 보듬어 주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부모세대인, 우리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느낄 기회도, 배울 기회도 별로 없었습니다. 아니, 때때로 자기안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죄악시여기도록 배웠습니다. 하라는 대로해야 착한 아이이고, 시키는 대로해야 칭찬을 받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달라지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인간관계의 대부분은 정중하고 솔직하게, 원하는것을 요구하며, 타협해서 맞춰가는
것입니다. 내 것이 중요하면, 남의것도 중요하게 여겨주고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이는 생각을 바꾸면가능합니다. 상담학에서 REBT 요법이라고 부르는데, ‘합리적 정서행동치료’라고 합니다. 그동안 자신의 신념으로 자리 잡고 있는 비합리적인 요소들을 합리적으로 바꾸어 생각하고, 행동하는방법입니다. 누구도 상대에게 상처주는 삶을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자기만의 사정을 가지고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사랑해야 선물처럼 행복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누구나 마음에 돌덩어리 몇 개는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땐 자신의 돌덩이가 제일 큰 것 같아 억울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삶의 무게가 있었기에 그것이 힘이 되어먼 길도 쉽게 달려 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세상은 아직 살만하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이제 보니 주어진 환경을 누리고, 감사하는 마음이 마음의 돌덩어리를 하나씩 내려놓는 지혜인 것 같습니다.
소식을 전할 수는 없지만, 얼마전에 버스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마음의 돌덩어리를 내려놓고, 가까운친지와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추석을 맞는다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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