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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자유 선택할 자유

01/30/19       한준희 목사

정해진 자유 선택할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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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젊은 시절 모 국영기업체에서 오래 근무를 하였다.특이한 것은 한번 출근하여 회사에 출근하면 퇴근시간까지는 업무상 공적인 외출 외에는 밖으로 나갈 일은 거의 없었다. 점심 식사를 비롯해서 모든 것이 사내에 다 비치되어 있어서 늘 편리함으로 직장생활을 하였다.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무료로 제공되었는데, 식사 수준이 일반 식당보다 월등하여 점심 식사시간은 늘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다. 비록 메뉴는 일률적으로 단 한가지로 통일되어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정해진 식단으로만 식사를 10년 넘게 하였다. 나는 그 오랜 기간 동안 식사에 대해 단 한 번도 불평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다. 점심시간이 되면 의례히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은 것은 정해진 하루 일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또 식단 메뉴에 불평을 해 본 일도 없다. 어쩌다 불만족스런 메뉴가 나와도 선택의 여지없이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10년을 넘게 그런 식단에 젖어있던 나는 생각지 않게 다른 직장으로 일터를 옮기게 되었다. 그런데 새 직장은 점심시간이 되면 일제히 밖으로 나가 식사를 하는 그런 풍토가 깔려있는 직장이었다. 매일 밖으로 나가 식사를 한다. 오늘은 감자탕, 어제는 곱창찌개, 그저께는 순두부를 먹었다. 날마다 점심시간만 되면 뭘 먹을까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에 자유가 있고 또 내가 선택한 음식을 다양하게 먹는 재미가 전 직장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즐거움이었다.

 오랫동안 해온 전 직장에서의 점심식사는 선택에 자유가 없었다. 그저 정해진 식단으로 식사를 해야 한다. 맛있건 맛이 없건, 좋아하는 반찬이든, 싫어하는 반찬이든 뭘 먹을까 고민할 필요 없이 이미 정해진 으로 식사를 하는 것으로 익숙해져 있던 나는 매일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자 점심 한 끼를 먹기 위해 서울 변두리까지 다녀오는 등, 자유를 만끽하게 되었다. 그 자유가 주어지자 전 직장에서 물들어 있던 내가 얼마나 우물 안에 개구리였나를 깨닫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사의 자유로운 선택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선택해야 하는 일이 서서히‘오늘은 또 뭘 먹나’ 하는 고민 때문에 피곤해진 것이다. 어느 날은 밖에 나가고 싶지도 않고 그냥 구내식당이 있으면 그 곳에서 간단하게 먹고 싶은 그런 생각도 들 때가 있다. 그런 때는 전 직장이 생각난다. 먹는 것에 고민하지 않고 주는 대로 먹었던 그때가 오히려 그리울 때도 있다. 그렇다고 이제 자유로운 선택의 식사를 경험한 내가 전 직장처럼 정해진 메뉴에 따라 식사하는 것에 다시 메이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런 모순을 목회에 비교해 보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목사가 되기까지 거의 한 교회를 섬겼다. 30년 가까운 세월이다. 그 교회는 내 고향 교회이고 내 옛 동무들이 함께 성장했던 교회다, 한 분의 목사님, 늘 함께 했던 성가대, 늘 보는 주일학교 교사, 늘 하는 여름성경학교, 이런 모든 것이 내 신앙생활에 중심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세상에 교회는 우리 교회 뿐 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랜 세월 섬겼다.

그런데 목사안수 문제로 잠시 교회를 옮겨 내 교단 교회로 옮겨 섬기게 되었는데, 그 교회에서 처음으로 보게 된 100명이 넘는 웅장한 성가대 찬양 하나만으로 내 마음은 사로잡혔다, 이렇게 성가대 하나만으로도 은혜가 넘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은 최첨단 앰프라서인지 스피커를 통해 나와서 인지 그 말씀을 전하는 목소리만으로도 이미 가슴이 뛰는 경험을 했다. 이렇게도 예배를 드리는 구나,... 촌놈이 서울 와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그 모습이라 할까? 그 후에 몇몇 교회를 더 다니게 되면서 내가 완전히 우물 안에 개구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목사가 된 후에 나는 다시 고향 교회로 돌아왔다.

교회가 초라한 모습으로 내 눈에 들어온다, 목사님의 설교는 별로 은혜가 안 된다, 성가대 10여명이 부르는 찬양은 자꾸 그 큰 교회의 웅장한 성가대와 비교가 된다. 나는 심한 갈등을 했다, ‘이런 작은 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느니 큰 교회로 가자’그런 생각이 들자 정말 큰 교회로 청빙을 받게 되었다.

이것이 믿음 없는 내 개인의 솔직한 고백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작은 교회라 할까? 그런 우리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 마음은 어떨까? 아마 큰 교회로 가고 싶은 마음이 매우 클 것이다, 그리고 이미 여러 성도들이 큰 교회로 갔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고향교회, 내 교회, 그 교회만이 교회라고 여겼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얼마든지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해 교회를 선택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성도들은 마음껏 교회를 옮겨 다닌다. 지금 다니는 이 교회만이 내 교회라고 여기면서 섬기는 성도가 옳은 것인지, 오늘도 은혜가 있는 교회, 내 적성에 맞는 교회를 선택해서 옮겨 다니는 성도가 옳은 것인지, 이미 정해진 이 곳이냐, 선택할 저 곳이냐, 선택한 사람은 선택한 만큼 그 책임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도서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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