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 June 25, 2024   
“여호와께 감사”

04/17/19       김금옥 목사

“여호와께 감사”


“여호와께 감사”

 

사순절 막바지를 지나고 내일은 부활주일이다. 최근 강원도에서 산불이 일어났다. 산불을 진압하기 위해 전국에서 소방관들이 소방차를 가지고 모여들었다. 축구장 800여개 사이즈의 넓이가 진압되었다. 그들 소방관들의 희생적인 수고로 화재는 수그러들었다. 한 소방관이 나무 밑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사진이 있었다. 얼마나 피곤했을까? 큰 재난이 발생하면 타 지역에서도 도우려고 온다. 뉴욕에서는 911이 발생했을 때 미 전역에서 소방관들이 모였다. 미국 남부에 카트리나 큰 홍수가 있었을 때 뉴욕의 소방관들이 그때의 고마움을 생각하고 떠났었다. 이번 한국 소방관들의 진화작업을 보면서 뉴욕의 911을 생각했다. 그때 소방관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건물 밖으로 내보내려고 그들은 무너져내리는 빌딩 계단을 올라갔었다.

지금 우리는 가장 어두운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다. 주를 따르는 사람들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주님에게 겉옷으로, 야자수 나뭇가지로 주님의 가시는 길에 깔고 ‘메시야’, ‘왕’이라고 큰 소리로 선포했다. 우리는 성찬 예식을 드릴 때 늘 주님이 누구신지 말한다. 필자는 이번 사순절 동안에 십자가 상에서 “주여 주여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말하신 주님을 생각했다. 그때 외치신 말씀이 내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았는데 주님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와 같이 사셨던 분이지만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의 배반으로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 분은 인간의 기쁨과 슬픔을 아시는 분이고 우리들 때문에 슬퍼하셨다. 흠이 없으신 분이지만 우리들의 죄 때문에 기꺼이 말로도 설명이 안되는 온갖 모욕과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온전히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다. 우리는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주의 부활의 승리를 찬양한다. 우리들 그리스천들은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며 그의 부활을 감사하고 기뻐한다. 우리의 기쁨은 우리를 죄에서 구해주신 그분의 부활로 인하여서인데 그래서 영원히 그의 부활을 찬양한다. 이 고백을 이번에도 큰소리로 주님에게 고백한다. 왜냐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나 신체 상의 고통의 순간을 경험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배반이나. 실패, 좌절, 모욕, 차별이나 분노 같은, 도저히 감당 못할 마음의 통증은 온 가슴의 세포가 찢어지는 것 같은 무엇으로도 어떻게 설명이 되지않는 고통을 말한다. 지극하고 오래된 분노는 마음이 근원이지만 통증은 실질적인 몸의 통증의 형태로 나타난다. 과거 많은 조선의 여성들이 이유없이 가슴을 쥐어 뜯게하는 통증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 이 통증이 한(恨)덩어리, 두통, 소화장애 등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마음의 갈등이 이유였지만 겉으로는 신체증상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body talks(몸이 말한다)’ 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이 캄캄하고 암울한 세상에 마치 자신 혼자만 세상에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은 사람들에게 십자가 상에서 주님이 그랬던 것 같은 절망과 암담함, 하나님마저 떠나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당연히 있어야 할 하나님도 관계의 줄을 끊어 버리고 떠나간, ‘버림받은 것’ 같은 가장 최악의 시기에도 그러나 여호와하나님은 그를 붙들고 계실 것이다.

어느 청년이 오래 전에 필자에게 전화를 했는데 세상이 자신을 버린 것 같다고 말했는데 사흘 동안 침대에 먹지도 않고 누워만 있었다. 그리고 필자에게 전화했는데 당신의 정신이 몽롱한 순간에도 너는 혼자가 아니었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여호와는 그 순간에도 아마 본인은 몰랐을 것이나 그와 함께 있었을 것이다. 그 분이 우리의 창조주 여호와, 우리들의 죄를 대신해서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한 순간도 우리에게서 떠난 적이 없는데도 떠났다고 생각하고, 안 계시다고 화를 내고, 버림받아 외롭다고 울기도 한다. 그러나 이 생각은 우리 인간이 틀렸다. 주님과 단절됐다고 생각한 경험을 우리들 크리스천은 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과의 단절의 시간을 그것이 몸 밖에서 표현이 될 때는 주님이 ‘나를 버린 주여 왜 나를 버렸나이까’의 버림받은 표현이 되겠으나 내면에서는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진 것 같은 우주안에 홀로 된 느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사사입다가 자신이 어떤 죄를 짓고 있는지도 모르는 믿음 없는 자의 상태에서 딸을 여호와께 번제물로 , 희생 제물로 드리겠다고 말했을 때 딸은 어떤 마음으로 지냈을지 생각해야 한다. 모든 관계가 무너진 절망의 상태에서 그녀는 불꽃 속에서 ‘주여 왜 나를 버렸나이까’를 외쳤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사사기에 나오는 레위인의 첩의 죽음의 과정에서도 그녀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가장 최악의 시에 그녀의 외침은 주님의 외침과 같은 ‘여호와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였는지 모른다. 이 외에도 많은 남녀들, 약자들이 버림받고 내쳐졌다는 절망의 상태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어디선가 부르짖고 있을지 모른다.

수많은 한인 여성들의 절망과 눈물을 흘리게 한 많은 다른 이유들이, 또 다른 민족과 종족의 남녀 약자들의 마음을 절망시키고 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 상에 있는 동안 어두운 밖을 향했던 “여호와가 우리를 버렸다, 주님이 어디 계시냐?”는 약자들의 외침의 소리는 예수님의 부활과 동시에 사라져 버린 것을 우리는 깨우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주님과 다른 많은 사람들의 외침의 소리를 생각했는데 ‘왜 나를 버리셨느냐’는 그들의 외침의 소리가 사라진 것도, 여호와께서 듣지 않은 것도 아닌, 그들의 소리가 이 세상에서 외쳐지고 여호와께서 ‘내가 여기 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라고 말하시는 여호와의 음성을 들을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가 그런 분임을 알고 우리가 문제이고 그분은 아닌 것을 깨달아야 한다. 화재로 인한 모든 복구가 차질없이 잘 되기를 바라고 다시 생업에 속히 돌아가기를 주님께서 축복해주실 것을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찬양하고 기뻐하며 나의 힘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이것이 필자의 고백임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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