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세례, 성령세례, 피 세례 한편으로는 좀 생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좀 섬뜩하기도 이런 세례 명칭들은 소위 재세례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사용한 것입니다. 재세례파에 대해서는 들어 본적은 있지만, 자세히 아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재세례파는 종교개혁의 흑 역사 혹은 어두운 과거 정도로 취급해서 신학교에서도 잘 가르치지 않습니다. 특별히 한국선교는 주로 미국, 캐나다, 호주 장로교회가 주도했고, 재세례파가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이 거의 없어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 생소합니다.
재세례파 사람들은 세례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상징이기 때문에 유아세례는 세례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종교개혁 당시 유아세례는 세례이면서 국가적으로는 일종의 출생신고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유아세례를 통해 교회의 지체가 되고 국가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재세례파 사람들이 유아세례를 부정하는 것은 1,000년 이상 유지해 온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가톨릭은 물론이고 루터파나 칼빈파와 같은 개혁교회에서도 받아 들이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재세례파 사람들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공공의 적이 되어 엄청나게 박해를 받게 됩니다.
유럽 전역에 걸친 대대적인 박해로 인해 재세레파 사람들은 한 때는 시한부 종말론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로인해 이상한 집단으로 매도되고 더 가혹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펜실베니아에 식민지가 개척되면서 박해를 피해 재세례파 사람들이 펜실베니아와 캐나다 지역으로 이주합니다. 그 재 세레파의 일부가 랭카스터에 살고 있는 아미쉬들입니다. 재세례파 사람들은 교회에서 받는 물세례, 그리고 성령의 임함을 통해 받는 성령세례,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다가 순교하며 받는 피 세례등 세 개의 세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재세례파 사람들은 집총을 거부하고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철저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제자로 살려고 노력했던 그들의 삶을 종교개혁주일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 꼭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