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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멍청해지자

05/10/19       한준희 목사

좀 멍청해지자


좀 멍청해지자

 

내 주위에 어느 목사님은 참 특이 분이 계시다. 이분과 대화를 나누면 내가 할 말을 못 한다.

대화를 나누다보면 너무 박식하다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홍삼을 먹으면서 겪게 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아직 말이 끝나지도 전에 중간에 말을 가로채면서 홍삼에 대해서 1절부터 6, 7, 9절까지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주제가 그게 아니데 말을 가로채고는 내 말과 전혀 상관이 없는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내 말을 중단하고 그분의 말을 들어주는 격이 된 것이었다. 거의 1-2시간을 혼자 이야기 한다. 들어주는 데도 한계가 있는데 그렇다고 나도 중간에 말을 가로채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의 고문에 가까운 들어주기가 계속될 때가 많다.

  왜 이렇게 하실까 그 이유가 바로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많이 알다 보니 남의 말이나 충고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회도 할 만큼 했고, 자녀도 잘 교육시켜 출가도 시켰고, 공부도 할 만큼 했기에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내세울 만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분 때문에 상대방이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너무 자기 말만 앞세우다 보니 강하다고나 할까, 자기 고집대로 사는 것 때문에 다른 분들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말에 동조하지 않으면 상당히 분노하고 오히려 동조하지 않는다고 교만하다고 한다. 본인이 교만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 말을 수용하지 않는다고 그걸 교만이라고 한다.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왜 그럴까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이 안다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단 인격이 덜 형성된 사람이 많이 알게 되면 여지없이 자기 아집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런 분들을 심리학에서는 나르시스트(narcissist)잘난 체 하거나 자기도취에 빠져 강한 이미지를 만들려는 사람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자신이 상대방 보다 뛰어나다고 여기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경향의 사람에게는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늘 말을 인정해주고 공감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냉정해지고 적으로 간주할 때가 많다.

문제는 이런 관계의 부부들이 많다는 것이다. 거의가 남자가 부인을 억압하고 여자를 열등하다고 여기고 자기 말에 동조하지 않으면 큰소리를 친다거나 폭력적인 언행까지 불사한다는 것이다. 더더욱 문제는 이런 분들이 목회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사모님을 자기 종으로 여기고 힘으로 억압해 버리고 자기주장대로 이끌어가려는 목사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가 또 있다. 이런 분들이 나이가 들수록 강해져서 부부 관계를 파괴하고 목회를 자기 수단으로 여기면서 하나님의 교회를 자기 것인 양, 만들어 놓고 자기만이 의로운 목사라고 하는 쪽으로 성도들을 몰아간다는데 문제가 있다.

어쩌면 너무 똑똑해서 생기는 인격적인 문제인 것이다.

목회자는 절대 똑똑한 체 하면 안 된다. 똑똑한 체 하면 할수록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질을 받기가 쉽다.

어쩌면 목회자는 경우에 따라 넥타이가 좀 삐딱하게 매고 다니고, 옷에 뭐가 묻어도 그냥 놔두도록 해야 한다, 성도들이 에그 우리 목사님 넥타이 좀 봐! 칠칠치 못하게...” 이런 말이 나오도록해야지 넥타이 비딱하게 맺다고 성도가 지적하면 그게 아니라고, 변명을 늘어놓는다거나 이유를 가져다 대면 빵점이다. 너무 목사라고 권위를 세워 자기주장을 강하게 어필하면 성도들이 가까이 안한다. “우리 목사님 너무 똑똑해 말을 못 걸겠어!” 이러면 시험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알아도 모르는 척 해야 한다. 그게 훈련되어져야 한다.

내가 아는 또 한분의 목사님은 도무지 말이 없다. 왜 말이 없는지 나는 잘 안다, 말을 안 하는 이유는 신학공부도 제대로 못했고, 말을 조리 있게 못하고, 머리에 든 지식이 많지 않다는 것을 난 잘 안다. 그래서 우리 앞에서는 말을 안 한다. 그런데 이분의 교회는 날로 부흥이 된다, 이유는 말이 없기 때문에 늘 우리 목사님 묵직 하시다고, 위엄이 있으시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성도들이 다 좋아한다, 성도들의 눈에 멍청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어수룩하게 전하는 말씀이 은혜가 된 단다.

오늘날 이런 목사가 필요하다, 너무 똑똑한 목사가 많다,

좀 바보처럼 살자, 좀 빼앗기면서 살고, 좀 져주면서 살고, 좀 손해 보면서 살자. 도대체 목사들이 단돈 1불 손해 안 보려고 언성을 높이고 짜증을 내고 말 한마다 지지 않으려고 자기주장을 내세우고... 그런 모습에서 이제는 변화되어 그저 알고 있어도 모르는 체, 가지고 있어도 없는 체 그렇게 바보처럼 살자.

멍청하게 살아도, 바보처럼 살아도 우리 주님이 인정하시면 그게 똑똑한 목사 아닌가,

목사들뿐만 아니라 모두 멍청해져서 우리 주위에 내 멍청함 때문에 이익을 보는 사람이 많아지는 한인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은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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