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 June 22, 2024   
사람이 산다는 것은

07/17/19       김명욱목사

사람이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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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산다는 건 무얼 의미할까. 산다는 그 자체는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숨. 호흡이다. 호흡은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이 있다. 호흡이 정지되면 사람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다. 죽은 사람이 된다. 사람의 살아있는 모습은 이 호흡 속에서 찾아진다. 그런데 우리는 숨 쉬는 자체를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숨 쉬는 것.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런 인체의 운동이기에 그럴 것이다. 거의 잊고 산다. 하지만 실험을 한 번 해 보라. 숨을 들이쉬지 않고 1분만 지내보면 금방 나타난다. 얼굴이 벌개지고 심장이 크게 박동 친다. 1분 참기도 힘들다. 온 몸이 야단이다. 숨 쉬는 것은 공기, 즉 산소를 들여 마시는 것. 몸이 산소부족으로 요동을 치는 거다. 

  

뇌사상태란 말이 있다. 뇌사(腦死). 말 그대로 뇌가 죽은 상태다. 뇌를 죽이는 건 아주 간단하다. 숨을 3분에서 5분 정도만 들이 마시지 않으면 된다. 사람이 목을 매달아 목숨을 끊는 경우. 어떻게 죽을까. 목을 조여 산소가 있는 공기를 들이 마시지 못하기에 뇌가 산소부족으로 운동을 정지해 죽게 되는 거다. 시간이 아주 짧다. 그러니 살고 죽는 것이 우리의 호흡, 즉 숨 쉬는 것에 달려 있다. 호흡지간에 삶과 죽음이 넘나든다. 호흡에 삶이 달려있다. 제 아무리 호화롭고 부요하게 사는 사람이라도 호흡 끊어지면 끝이다. 그 다음 세계는 그 다음에 달려 있다. 너무 잘난 체 하지 말아야 한다. 사는 것과 살지 않는 것.  호흡의 이어짐과 끊어짐에 전적 의존돼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 인간과 동식물도 창조하셨다. 인간의 들숨과 날숨도 창조하셨다. 그러니 사람의 날숨과 들숨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인간의 삶과 죽음은 달려있다. 무신론자들은 이런 주장을 믿지 않을 거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자녀들은 믿을 거다. 아니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된다. 

제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사람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야 한다. 부르심이 뭔가. 숨을 멈추게 하는 것. 그럼 간다. 어디로 가나. 성서에 의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으로 간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천국으로 간다. 성서의 가르침 중 하나다.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있다는 게 핵심이다. 

  

사람이 산다는 건 어쩌면 숨쉬기 운동이다. 누가 숨을 주어서 마시는 것 아니다. 누가 숨을 끊어서 내쉬는 것 아니다. 몸이 스스로 알아서 한다. 심장박동도 마찬가지. 자가 발전기 같은 원리로 숨 쉬는 것과 심장 박동은 이루어진다. 그 운동을 하게하는 분. 자가발전을 시켜 주시는 원동력. 몸이 스스로 하게 하는 그분이 하나님이시다. 그 분이 하나님이라면, 믿겠는가. 믿음의 차이가 이런데서 나타난다. 내가 있기 전에 있는 그 분. 내 안에 있는 모든 장기가 다 그 분의 인도대로 작동되고 있다는 것. 이것을 믿는 자는 믿음이 있는 자요. 못 믿는 자는 믿음이 없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믿는 그런 믿음 이전에 들어있는 신비함을 믿는 믿음 말이다. 

  

아무리 천체 과학이 발달했어도 아직도 풀리지 않는 우주의 사는 모양이 있다. 우주 과학이 말하는 건 우주는 빅뱅(Big Bang)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풀지 못하는 것이 있다. 빅뱅 이전의 모습이다. 빅뱅은 작은 입자가 폭발하여 우주가 되었다는 이론이다. 그럼 그 작은 입자 이전의 우주 모습은 없었을까. 인간이 태어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착상이 되어 인간이라고 하는 생명이 탄생되는 최초의 수순이 시작된다. 그 찰나 같은 순간의 착상 때에 그저 전자 현미경으로 보아야 볼 수 있는 세포만이 존재해 있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 거기에 함께 있지 않았을까. 가령 영적인 그 무엇 같은 거. 신비의 착상이다.

  

수많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 간다. 사는 동안엔 숨을 내쉬고 들이쉬며 산다. 그러다 죽음이 다가오면 숨은 가늘어진다. 심장이 멈추어도 죽는 거지만 숨을 멈추어도 죽는 거다. 사람의 죽음을 확인할 때 코 앞에 깃털을 갔다 대는 건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보려고 하는 행위다. 숨이 끊어진 사람은 깃털이 움직이질 않는다.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숨만 들이쉬고 내쉰다고 사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그런 건 다른 동식물도 마찬가지로 숨을 들 내쉬며 살아간다. 인간에게 사는 것의 의미는 다른 데 있지를 않을까. 존재의 의미 같은 거. 왜 사느냐 같은 거. 누굴 위해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등등. 그러니 숨만 쉰다고 사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가끔, 세상을 먼저 떠난 후배 기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무슨 의미일까. 정말로 열심히 뛰며 살았던 후배인데. 목사요 언론인이었던 그. 그와 마주쳤던 마지막 만남이 선연히 떠오른다. 정말 사람이 산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그는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들숨과 날숨을 쉬며 또 열심히들 살아가고 있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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