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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써의 예배

07/17/19       한준희 목사

삶으로써의 예배


* 이럴 때 전화하세요!

1. 보일러가 고장이 났을 때

2. TV가 잘 안 나올 때

3. 냉장고가 고장이 났을 때

4. 휴대전화가 잘 안될 때

5. 무거운 짐을 옮기기 어려울 때

6. 집안에 일손이 부족할 때

7. 마음이 슬프거나 우울할 때

8. 몸이 아플 때

9. 갑자기 병원에 갈 때 보호자가 필요할 때

10.경로당에서 고스톱 칠 때 짝이 안 맞을 때

 

충북 영동의 어느 작은 시골마을에 돌아다니는 전단지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 올라 있는 이 글을 읽고 참 공감이 되고 마음에 와 닿았다. 어느 시골 교회에서 만든 것이라는데 교회 나오라는 말이 하나도 없다. 기도하자는 전단지도 아니다. 구원 받으라는 전도지도 아니다. 그냥 돕겠다는 광고지이다.

 

동네 사람들이 그가 목사인 줄은 다 아는데 목사가 도대체 말이 없단다. 그냥 말 없이 와서 말없이 돕고 간다고 한다. 전화를 해서만 오는 것도 아니란다. 수시로 방범 초소를 돌 듯 매일 정해진 시간에 동네를 돌면서 굳은 일을 자청해서 하고 말없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동네 주민들에게 다가가 그들과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고 식구가 되었단다. 이제 그 목사는 동네 심부름꾼이 되었고 동네를 섬기는 머슴이 되었단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렇게 동네 주민들을 위해 수고하면서도 한 번 교회 나오라는 말을 안 한단다. 예수 믿으라고 전도 안하고 교회 나오라고 전도 안했는데 교회에는 성도들로 가득하단다. 더욱이 주일학교 학생들이 넘쳐나는데 예배시간은 고작 10여분-. 나머지 시간은 온통, 다같이 산으로 올라가 꽃을 따고 잡풀을 제거하고 열매를 줍고 다람쥐 쫓아다니면서 노는 게 전부란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목사는 놀아주는 게 설교하는 것보다 더 힘들단다.

 

아이들이 모여 별난 토론을 한다. 예수님과 하나님과 싸우면 누가 이기나요? 모세와 손오공이 싸우면 누가 이기나요? 참 특이한 목회를 한다고 생각된다. 그 분의 말이 또 특이하다. 헌금을 많이 낸다고 축복받는 것 아니고, 십일조 낸다고 구원이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를 삶으로 보이지 않으면 다 바리새인이요, 거짓 예배라는 것이다. 나는 이 분의 생각을 100%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날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목회의 본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닌가 여겨진다.

 

수 십만불을 들여 대형 집회를 한다, 무슨 치유집회다, 영성집회다. 무슨 세미나다 부흥회다 목사님들을 위해, 성도들을 위해 교회마다 교단마다 예배를 드린다. 그런데 그 수많은 예배와 말씀은 차고 넘치는데 정작 예수님처럼 사는 사람은 없다. 

 

다 교회 안에서는 거룩하다. 목사님께서 강대상 위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말씀 그대로 진리이 다 맞는 말씀이다. 그런데 그 맞는 말씀이 교회 안에서 끝나 버린다. 목사님도 성도님들도 다 교회 안에서의 예배가 한 이벤트로 끝나고 다시 세상에서는 목사나 성도나 다 언제 예배를 드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달라진다.  이민 교회도 똑같다, 새벽기도다, 수요예배다, 철야 기도회다, 주일예배다, 주일오후예배다, 심방예배다, 예배! 예배! 모두 모여 예배를 드리라고 외친다, 그런데 그 예배가 삶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그 많은 예배가 다 형식적인 예배임에 틀림없는 것 아닌가?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분명히 형태가 있는 예배이다. 묵도, 기원, 성시낭독,신앙고백, 찬양, 헌금, 축도가 다 형태를 만든 예배이다. 이 형태적 예배 속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찬양한 것처럼, 이렇게 기도한 것처럼, 이렇게 신앙고백을 한 것처럼, 이렇게 헌금한 것처럼 내 몸과 마음과 정성과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려놓고 하루하루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문제가 생겼을 때 기도하지 않고, 이웃을 위해 내 몸을 희생하지 않으면 우리가 드린 예배는 다 형식적인 예배요, 예배 자체를 우상화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단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 아니겠는가?   

 

삶이 없는 예배로 인해 오늘날 기독교가 개독교로 불려지는 부끄러움을 깨닫고 속히 사람들 속에서 나타나는 살아있는 삶의 예배가 보여지는 그런 성령의 바람이 몰아치기를 기도해 본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합당한(영적)예배니라(롬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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