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 November 26, 2022    전자신문보기
나의 피난민(避難民) 경험

11/06/15       김금옥 목사

나의 피난민(避難民) 경험

DownloadFile: 0,,16704319_303,00.jpg



온 세계가 난민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사방에 난민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요새는 한, 두사람이 아니라 수백, 수천만이 인구가 생존을 위해 본국을 떠난다. 테러, 내란, 전쟁, 기근, 빈곤 등의 문제로 나라를 떠나고 이들은 난민이 된다. 피난민, 난민이 된다는 의미는 죽음과 절망의 장소에서 생명을 보존할 수있는 곳으로 떠난다는 의미에서 필자도 피난의 경험이 있다. 필자도 공산주의로 변한 고향을 떠나 서울로 피난온 난민 즉 피난민 이었기 때문이다.

1945년 8월15일 제2차 세계대전(WWII)이 끝나면서 한국은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이 됐다. 그러나 곧 대한민국이 38도 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뉘어졌고 얼마 안되어 터진 6.25 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아직도 세계에 하나 밖에 없는 분단국으로서의 비극을 유지하고 있다. 반세기가 넘게 남과 북한의 가족들이 헤어진채 만나지 못함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후유증이 너무나 크다.

필자의 고향이 공산주의로 바뀌면서 북한의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찾아 남쪽으로 떠났다. 온갖 고생을 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38도 선을 넘었다. 그때 피난민들의 대부분이 기독교 신자였는데 잡히면 죽임을 당했다. 아버지의 친척들은 후에 만났으나 어머니의 친척은 한명도 피난하지 못했다. 피난 내려오는 도중 인사차 만나고 헤어진 것이 전부 였다.  

서울에 정착한지 몇 년이 되지 않아서 6.25사변이 일어나고 필자와 우리 가족은 공산화 된 서울을 피하여 타지로 피난가서 살았다. 몇 달 후 1,4후퇴 때는 온 식구가 대구까지 기차를 탔다. 다행히도 기차칸을 얻을 수있었으나 많은 사람들은 기차 꼭대기를 타고가기도 했다. 피난민들은 무조건 대구에 내렸는데 마음씨 좋은 경상도 사람들이 정착해 살수있도록 도와주었다. 8년을 살았다. 고등학교로 전학하면서 온 가족이 서울로 올라왔다.   

나의 피난민으로서의 난민생활은 황해도 해주에서, 해주 앞바다를 통하여 38선을 넘은 후에 조치원이라는 곳에서 서울에 오기까지 다른 피난민들과 같이 생활했다. 그곳에서 서울가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친척을 만나 정착했다.

성경은 유대민족의 힘들었던 삶을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애굽에서, 바벨론, 페르시아등 여러 나라에 노예로 끌려가고 그리스, 로마 등 외국의 통치를 받으면서 고단한 삶을 살았다. 세계 제 2차 대전 때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에 의하여 박해를 받고 수백만의 유대인들이 강제수용소에 기차로 실려가서 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했다. 이때 많은 유대인들이 박해를 피해 남미나 북미 등으로 피신했다.

유럽과 아프리카 난민에 대한 뉴스가 하루도 걸르지 않는다. 시리아 내전으로 수많은 시리아 인과 어린이들이 피난길에 오르고 하루에도 수천명이 국경을 넘어 레바논으로, 터키로, 요르단, 그리스로 살길을 찾아 흩어지고 있다. 내전과 가난으로 아프리카의 소말리아, 에리트레아 난민들이 이태리 남부로 몰려들고 있는데 배를 타고 건너다가 익사 하기도 했다는 뉴스다.

오래전 베트남 멸망 때 수많은 베트남 난민들이 공산정권을 피하여 보트로 피난길에 나섰는데 이들을 보트피플이라고 불렀다. 미국에서 잘 적응하여 그들의 공동체를 만들었는데 미국 정부가 정착할 수있도록 도와 주었기 때문이다.

난민에 대한 도움이 절실하다. 신문은 아프리카의 한 나라가 정착할 수있도록 물질로, 머물 장소를 주어 이웃 난민을 도운 소식을 전했다. 필자는 물빠진 바닷길을 건넜다. 바다를 다 건넌 마지막에 밀물이 들어 오기 시작해서 남쪽의 사람들이 던져주는 줄을 잡고 살아났다. 정부가 마련해준 조치원의 난민수용소에서 수많은 다른 피난민들과 같이 머물었다.

난민은 이들 뿐이 아니다. 네팔에서는 지진으로 산사태가 나서 이재민이 생겼다. 목사인 질녀가 네팔에 의약과 물품이 필요하다고 도움을 청해서 의료구호금을 보냈다. 지진과 태풍으로 피해가 생겨나고 전세계가 금전으로, 물품으로, 의료진 등으로 돕는 것을 보며 인간의 양심을 본다.

신명기에 여호와께서 백성들에게 하신 말이 있다.15장 7-11절로 “땅에는 구제받을 사람들이 있다. 곤란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에게 아끼지 말고 네 손을 펼쳐서 구제하라” 다. 주님께서 이런 일을 한 사람에게 그들의 범사와 손으로 하는 일에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까지 하셨다. 주님은 한번도 아프거나 없는 사람에게 눈길을 피한 적이 없다. 아픈 사람은 고쳐주고, 배고픈 사람들은 먹게하셨다.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도 당연히 위로해 주셨다. 이런 마음으로 난민이 있는 곳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아픈 마음을 접는다.    

미국은 수많은 언어와 서로 다른 피부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연합하여 한 나라를 이루었다. 미국의 10전짜리 동전에 글자가 있다. “우리는 한분이신 하나님을 믿는다. One God we trust”. 이것이 미국의 민낯이다. 미국의 장점은 전쟁같은 문제가 일어나고 나라가 시끄러워지면 어느 순간 미국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싫던 사람도 좋던 사람도 다같이 모두가 하나로 뭉친다. 그러다가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와글와글 시끄럽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나라의 특징이다.

미국은 수많은 나라에 선교사를 보낸다. 우리 한국에도 130년 전에 선교사가 와서 대한민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미국은 도움이 필요한 나라에 제일 먼저 구호금과 구호물품, 의료진을 보내는 나라이고 불행이나 재난에서 일어서도록 도와준다. 주님의 백성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위로가 필요한 분들에게 위로의 손을 펼치고 눈물을 닦아준다. .

이제는 이사갔지만 이웃사촌 같던 부부가 있었다. 이들 가족은 길에서 주운 고양이와 폭력 당하고 버림받은 개와 같이 살았는데 그 개는 폭죽 소리를 무서워하고 두려워 했다. 부인은 그때마다 품에 안아 안정될 때까지 숨이 막힐 만큼 꼭 안아주곤 했다. 이것이 사랑이다. (끝)

김금옥 목사(에버그린 장로교회)

  

페이팔로 후원하기

인기 기사
최신 댓글

170-04 Northern Blvd. #2Fl. Flushing, NY 11358
Tel: 718-414-4848 Email: kidoknewsny@gmail.com

Copyright © 2011-2015 기독뉴스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Intonet Solution